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유통·외식업계는 비대면 소비가 대세를 이루며, 배달플랫폼 업계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상공인과 플랫폼사 간 ‘중개수수료’ 논쟁이 불거지며, ‘파괴적 혁신’이라는 그늘도 존재했다. 세탁업계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모바일 세탁서비스 업체가 대규모 투자유치를 받으며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동네세탁소들은 젊은 고객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매일새옷 서동광 대표는 낙후된 세탁업계에 혁신은 필요하지만, 이 혁신은 골목상권과 함께여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탁업계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올드’하고, 3D 업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은 안 된다. 매일새옷은 세탁업을 하는 소상공인과 함께 혁신해 나갈 것”이라며, “동네세탁소가 새로운 고객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며 ‘세탁업 ERP’ 제공…장부→전산 ‘디지털 전환’
“나 이 손님 얼굴만 봐도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다 알아~. 옷 뭐 맡겼고, 어디에다가 걸어놨는지 다 내 머릿속에 있다니깐.”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동네사람끼리 서로 얼굴만 봐도 다 알던 때다 보니 동네세탁소는 주민들이 오가며 들르던 사랑방 같은 곳이었고, ‘세탁소 사장님’ 또한 주먹구구식으로 동네장사를 해도 잘 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세탁물 관련 사고도 흔하게 일어나곤 했다.
컴퓨터 하드웨어 관련 엔지니어였던 서동광 대표는 세탁소 업주와 고객 사이에 발생한 ‘페인 포인트’에 집중했다고 한다. “편의점 포스기가 대중화되던 시기였는데, 지인으로부터 세탁업계는 전산시스템이 전무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러다 보니 세탁물이 없다고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을 위해 일년 치 장부를 일일이 찾아야만 했고, 문제가 있던 세탁물을 인지하지 못한 채 세탁물을 처리해 분쟁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화번호 뒷자리만으로 세탁물 이력조회가 가능하고, 세탁물을 접수할 때 카메라로 문제 부위를 촬영한 후 고객에게 전송해 주는 등 고객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ERP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껴 개발했다”며, “최소 10년에 걸쳐 세탁업계에 이 프로그램을 공급해 나가면, 나중에 온라인 시대로 전환됐을 때 반려동물, 청소, 육아 도우미 등 가정과 관련한 분야로 확장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뛰어들었다”고 했다.
200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ERP 프로그램을 세탁소에 공급하기 시작한 서동광 대표는 처음에는 세탁소 사장에게 프로그램에 관해 설명을 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서 대표는 “노트북과 브로슈어 하나씩 들고 ‘오늘은 당산동을 돌아야지’ 하는 식으로 매일 세탁소를 찾아다녔다”며, “그때 사장님들에게 엄청 많이 깨졌다. 컴퓨터를 켜고, 끄는 방법조차 몰랐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100곳을 가면 99곳에서 화내면서 나가라고 했다. 그래도 그중에 한 군데는 아들뻘 되는 청년이 고생한다며 들어줬다”고 회상했다.
이어 “ERP 프로그램을 300군데에 공급하기까지 3~4년 정도 걸렸다. 월 생활비 대기도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저 친구 되게 열심히 한다’며 세탁업계의 몇몇 분들이 이끌어줘서, 2006년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며, “365일 동안 평균 300대의 프로그램을 설치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공급률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울릉도,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의 약 3000곳의 세탁소가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면받던 동네세탁소와의 ‘혁신’…“빠르게 보다는 바르게”
2018년도에 3만4000곳이었던 세탁소가 작년에 1만8000곳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세탁소 폐업률은 높은 편이다. 게다가 정장이 사라져가는 시대적 흐름과 건조기와 스타일러 등 가전제품의 등장으로 타격도 많이 입었다. 서동광 대표는 그런데도 여전히 시장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사양산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세탁시장의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예전에는 오는 손님만 받아도 잘 됐지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세탁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세탁소 경영주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2014년도에 시도했다가 활성화하기 힘들었던 서비스를 이참에 본격적으로 출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이에 세탁 O2O플랫폼인 매일새옷을 2022년 9월 출시했고,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매일새옷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골목상권’을 살리는 일이다. 먼저, ER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세탁소 중에서 1000곳과 일차적으로 제휴를 맺었다. 그리고, 서비스 출시 10개월 만에 전국으로 확장해 현재 약 1100곳과 함께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올해까지는 플랫폼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서동광 대표는 “매일새옷에 입점해서 새로운 거래가 생겨나고 매출이 발생하는 것을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중개수수료 역시 원래 10% 정도로 책정돼 있지만, 신용카드 결제수수료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주고 있다. 올해까지 이렇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매일새옷을 잘 활용하는 사장님의 경우 평균 약 270만원의 부가수익을 올리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2000곳의 업소가 제휴를 맺고, 세탁소 사장님들에게 최소 월평균 50만원의 새로운 수익 창출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프로그램 사용법도 간편화했다. 평균 연령 65세의 세탁소 경영주가 프로그램 사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해결이 되도록 설계했다. 카카오택시처럼 주문이 들어오는 현황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고, 세탁업 특성상 후불제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고려해 영수증을 출력하거나 컴퓨터로 입력한 가격표를 사진으로 찍어 접수 완료만 누르면 고객에게 접수증이 바로 첨부되도록 시스템화했다.
서동광 대표는 ‘신속함’만을 내세우는 최근의 세태에 반대하는 의견도 전했다. 서 대표는 “세탁은 빠른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바르게 세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매일새옷의 경우 보통 2박3일이 걸리지만, 올바르게 처리한다. 이것이 결국 소비자의 시간과 돈을 아껴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매일새옷은 오는 6월부터 세탁 장인들과 함께 명품 가방과 신발 등을 복원하는 특수 세탁시장에도 진출한다. 더불어 세탁소 창업에 뜻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술교육, 상권분석 등 창업에 대한 모든 것을 컨설팅하는 등 공생의 문도 열어놓고 있다. 2017년도부터는 사단법인 한국세탁업중앙회와 함께 세탁업 공동상생을 위한 MOU를 맺는 등 ‘같이의 가치’를 함께하고 있다.
서 대표는 “소상공인이 편리하게 쓸 수 있고, 고객의 니즈도 충족시킬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만들 것”이라며, “이를 통해 세탁업계가 좀 더 스마트한 시장으로 변화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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