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_ 우린 중기인
IT 강국인데 ‘원격의료시대’ 왜 요원한 것일까
환자·의료진 불안감 해소 관건…원격의료산업협의회 오수환 회장
#. 애플리케이션에서 병원을 선택한 후 진료 접수를 신청하면 해당 병원으로 알림이 간다. “00분 후에 진료가 시작됩니다”라는 문구가 뜨고, 곧이어 화상이나 보이스콜로 전화가 오면 상담이 진행된다. 시간은 5분 전후로 대면 진료 때보다 2~3분 더 길다. 진료비는 자동으로 결제되고, 발급된 처방전은 자동으로 약국으로 전송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산업 전반에 걸쳐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의료계 역시 마찬가지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오수환 회장은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자리에서, 미래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비대면 진료와 대면 진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상부상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병원 방문 어려운 현대인 적합…비대면 진료는 보완재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비대면 진료 산업에 뛰어든 15개 기업이 함께 만든 협의체다. 규제와 제약이 많은 보수적인 의료계에서 국민의 편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판단에, 관련 업체들이 모여 정부와 국회에 정책을 제안한다. 또, 각종 설문조사와 간담회 및 토론회를 열며, 비대면 진료의 현 상황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오수환 회장을 비롯해 회원사가 바라는 비대면 진료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는 ‘의료의 접근성’을 높여 ‘국민건강’에 일조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대면 진료는 도서 산간에 있는 사람을 위한 의료행위로 바라보는 경향이 컸지만, 진료의 연속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도시민에게도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야근으로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직장인 ▲일과 육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워킹맘·워킹대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경우, 아무리 병원이 집 가까이에 있다 하더라도 병원 방문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때 비대면 진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의료진과의 접촉이 원활해지고, 치료의 적기를 놓쳐 병을 키우는 일이 없게 된다. 병원까지 가는 이동 시간과 대기해야 하는 수고로움, 이에 따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사회적 손실도 예방할 수 있다. 병원 입장에서도 급하지 않은 환자 때문에 예약이 지연되는 일을 막을 수 있어 긍정적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질환이 반드시 의사를 직접 만날 정도로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오 회장은 말한다. 단, 여기에는 단순 감기, 복통, 소화불량처럼 심각한 상황으로 악화할 개연성이 낮은 ‘경증질환자’ 혹은 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약을 타는 일이 많은 ‘만성질환자’라는 단서가 붙는다. 비대면 진료는 병의 특성을 알아내기에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의 개념이다. 중증질환이나 정확한 병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질환은 상급의료기관에서, 비대면 진료는 1차 의료기관에서 맡는다면 대면 진료와 비대면 진료가 서로 호환되면서 병원마다 역할 분배가 자연스럽게 이뤄져 체계적인 의료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개업의 생존권과 관련…소명의식에 일부 의료인 반대”
비대면 진료의 여러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내에서 제도화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의사단체와 의료인의 반대 때문이었다. 사실 2000년대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는 원격의료에 대한 찬반 토론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관련 서비스에 대한 경험들이 축적되지 않았고,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분야이다 보니 보수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컸다.
가장 큰 이슈는 개업의의 ‘생존권’과 관련돼 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 출시됐던 원격진료 사이트를 통해 이틀 만에 이메일로 13만건의 진료가 이뤄졌고, 7만건에 달하는 처방전이 발급돼 의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는 서울의 특정 병원 사이트에만 몰리는 병원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국민건강 때문이다. 한 사이트에서 하루에 5~7만건의 진료가 이뤄졌다는 것은 상식에 위배된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의료사고 ▲오진 ▲국민피해 등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에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의료인의 직업적 소명의식에 불을 지펴 반대를 불러왔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 회장은 ▲환자의 지역 기반에 근거한 병원 노출 ▲개인맞춤형 병원 노출 ▲특정 의료기관에 환자들이 몰리지 않도록 제한을 두는 방법 ▲안정성이 담보된 상태에서의 진료 행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T와 의료 접목 어려운가…원격의료 시장 개방된다면”
오수환 회장은 치과교정과 전문의면서, 2016년도에 ㈜엠디스퀘어라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회사를 창업한 CEO다.
“전 전자공학과 출신의 치과의사입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치과대학 본과에 들어가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가 된 케이스죠. 그러다 보니 융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IT 기술도 뛰어나고 의료수준도 높은데, 왜 이 두 개 분야가 접목된 분야에서는 힘을 못 쓰는 걸까 항상 의아해했죠.”
그는 의료산업과 ICT(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은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7개국 중 32개국이 이미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2월 원격의료 중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상태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경험과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원격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역시 커지고 있지만, 오 회장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한다
“비대면 진료가 코로나19 위기 경보단계에서 진행이 됐고, 감염병예방법 개정으로 인해 법제화가 됐습니다. 감염병이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위기 경보가 심각단계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법 제34조가 개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의료법 제34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 즉, 의료인 간에 협의 진료만 허용이 되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가 원격으로 만나는 진정한 의미의 원격의료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비대면 진료를 포괄하는 원격의료의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입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갑자기 원격의료 시장이 개방됐을 때 우리만의 자체적인 원격의료 기업이 없다면, 소중한 환자 데이터와 각종 의료정보가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구글에서 만든 원격의료 회사가 와서 우리나라 시장을 장악한다면 이것만큼 나라의 큰 손실이 어디 있을까요?”
의료계에서 우려하던 병원 쏠림현상과 오진 문제도 없었다. 지금까지 비대면 진료 진행 건수만 350만건이 훌쩍 넘었고, 비보험 건까지 합하면 500만건 이상이 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인 엠디스퀘어 회원 수도 나날이 늘고 있다. 엠디스퀘어 앱인 엠디톡 다운로드 수만 45만건을 넘어섰고, 가맹 병의원 수는 200곳이 넘는다. 우려와 달리 70% 이상이 동네 병원에서 이뤄졌고, 오진에 대한 보고 역시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앞으로 원격의료가 더욱 활성화되려면, 의료진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적인 안정성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특히 통신에 대한 문제 등으로 인한 오진의 책임 소재, 제한된 상황에서 진료하는 만큼 고민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수가를 보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약사들에게도 비대면 조제에 따른 정책적인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의료도 ‘K-컬처’처럼 충분히 입지를 쌓을 수 있다고 오 회장은 예상했다.
“서비스를 만들면서 의사들과 환자 모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정책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격의료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정부, 의료인, 환자, 산업계 모두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의료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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