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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보 오작동…인명피해 부르는 ‘비화재보’ 막는다
“안전이 우선”…소방시설 관리전문업체 미리방재㈜ 장필준 대표 



비화재보…“자발적 피해자”를 양산하는 안전불감증

미리방재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플래카드 ‘비화재보를 줄여 생명을 살린다’는 문구다. 비화재보(非火災報)란, 말 그대로 화재가 아닌 상황에서 알림이 울리는 것을 뜻한다. 소방안전관리플랫폼 기업인 미리방재는 건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비화재보를 줄이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비화재보는 화재감지기 자체의 결함이나 오작동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경보음이 울려도 ‘오작동’으로 자체 판단하고 대피를 하지 않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즉, 소방시설을 믿지 못해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작년 6월 발생한 쿠팡 물류창고 화재사고다. 화재 경보음을 오작동으로 판단한 작업관리자들이 경보음을 중지시키고, 또 울리는 경보음을 중지시키는 행동을 6번 이상 반복하는 동안 걷잡을 수 없는 큰 사고로 번져 결국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던 것이다.

장필준 대표는 이렇게 발생한 사고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경험에 의해 확신이 있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맞는 행위를 합니다. 하지만, 화재경보를 듣고 대피를 했더니 오작동이었던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면, 이러한 일들이 학습이 되어 결국 경보음이 울려도 대피를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대피하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안전불감증’이라고 하는데, 전 이런 용어조차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자발적 피해자’라는 용어가 맞다고 봅니다.”

화재경보기들이 오작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소방시설 검증제도에 따라 수많은 품질기준을 통과해야만 시중에 출시되는 제품들에 하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대부분 화재경보기가 오작동을 하는 이유는 제품의 기계적 결함이나 오류로 인한 문제일 때가 많다. 따라서 비화재보를 줄이기 위해서는 화재경보의 신뢰성을 높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소방설비의 품질기준을 높여 성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법적으로 최소한의 요구 조건만 맞춘 감지기 혹은 값싼 외국산 제품의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소방 관련 법 기준은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를 계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는 기술력과 생산시설들이 미약하다 보니 법적인 기준 자체가 상대적으로 강력한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수준이 올라갈수록 관련 기준도 높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이제는 현행법이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죠.”

이는 인명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통계를 보면, 2016년 대비 2020년 화재현장에 소방차가 도착하는 시간은 짧아졌고 화재건수 역시 줄었다. 하지만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13%, 화재 1000건당 인명피해는 27% 증가했다. 2020년 소방차 출동건수 3만2000건 중 99.8%가 화재경보음 오작동이었던 것을 보면, 소방력 낭비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쳐 인명피해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은 셈이라 할 수 있다.

관리하는 건물 1000곳 중 화재로 인한 피해 ‘제로’

‘화재경보 즉시 대피하는 사회’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장 대표의 책상 위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화재경보기들이 각각 분해된 채 놓여 있다. 미리방재가 제품 생산업체는 아니지만, 소방시설 관리전문업체로서 기계 오작동이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찾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소방시설 유지관리·보수공사를 하는 업체이지 화재를 예방할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계의 오작동이 일어나는 문제를 찾아 개선하고, 인명피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책무이자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리방재가 관리하는 건물의 수는 1000여 곳으로 주로 서울과 수도권에 분포돼 있다. 이 중 매월 관리하는 건물은 500여 곳이다. 현행법상 모든 건물은 소방안전관리 전담조직을 둬야 하고, 건물의 규모에 따라 적어도 일 년에 1~2번 이상 점검을 해야 한다. 문제는 점검을 매번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소방시설이 고장이 나거나 훼손이 되더라도 관리자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훗날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건물 화재점검은 정해진 법적 기준보다 자주 하는 것이 좋고, 보완·점검·보수·유지 역시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형 건물의 경우, 소방안전관리자들이 메인 업무를 다른 업무와 동시에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방재가 이러한 건물의 점검을 의뢰 받아 매월 진행하는 것이다.

미리방재가 10여 년간 이 수많은 건물을 관리하면서 큰 화재로 인명피해가 난 곳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화재가 나더라도 화재경보가 잘 작동해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 금방 소화기로 진압하거나 스프링쿨러가 제대로 작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리가 잘 되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한데, 문제는 공공기관과 공동주택이다. 공동주택의 경우, 관리사무소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서울시 조례에 의해 모든 계약은 최저가로 하도록 정해져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에도 예산을 아끼는 것에만 급급한 나머지 생명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파트인 안전에 대한 예산을 깎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 대표는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가 고소득 선진사회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은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며, 안전이 경제적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0’으로 만들 수 있도록 스마트한 소방시설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감지기 회로 전압시설을 통해 화재경보의 작동 여부와 오작동 여부를 분석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는데, 이 시스템을 더 보완해 개발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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