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_ 우린 중기인
아프고 힘들고 지친 ‘마음’ 또한 운동이 필요하다
명상으로 ‘마음근육’을 키워라…마음챙김 명상앱 ‘마보’ 유정은 대표
“굳이 뭘 사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와서 놀다 가요. 오래 머문다고 눈치 볼 필요도 없거든요.”|
슬라이딩하듯 멋들어진 솜씨로 능숙하게 자전거를 세운 한 초등학생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시크한 표정으로 문방구로 들어가며 말했다. 같이 따라 들어가 보니, 이미 안에는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자신들의 최신 아이템을 공유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어두컴컴했던 과거의 문방구 실내와는 전혀 다른 밝고 환한 조명과 적당한 온도 조절시스템이 쾌적함을 안겨준다. 종류별로 깔끔하게 진열돼 있는 매장 안에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기분을 한껏 올려준다.
영유아에게 ‘키즈카페’가 있다면, 초등학생에게는 문방구가 있다. 이들에게 문방구란 또래문화의 시작이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감성’을 키우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문구야 놀자’는 이러한 초등학생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었고, 사업 시작 2년 만에 초등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신개념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나 스스로 구매한다…문방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당연한 풍경이었다. 학용품 구비부터 친구 생일선물 등 초등학생 쇼핑의 메카가 바로 문방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방구는 사양길로 접어들며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문구야 놀자’ 황선금 대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옛날에는 문방구의 기본 역할이 학교 준비물을 미리 준비하는 공간이었잖아요? 하지만, 5~6년 전부터 필수 준비물과 문구류는 학교에서 다 나눠주고 있어요. 교육은 모든 아이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개념 아래 저소득층 아이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즉, 이젠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살 필요가 없어진 거죠. 문구점이 사양길로 접어든 또 다른 이유는 가격 면에서 인터넷을 이길 수 없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사무용품만 보더라도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것이 더 저렴하니까요.”
그래서일까. 문구야 놀자는 기존의 문방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한 포인트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우선 이곳에는 ‘어른’이 없다. 문구야 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5~7세 유아들의 소비는 엄마에게서 나온다.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고, 구매의 전권은 엄마에게 있다. 중학교 이상의 청소년들은 쇼핑할 때 온·오프라인을 통해 스스로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유아기와 청소년기 사이에 있는 8~13세 초등학생들의 소비행태는 어떨까. 황 대표는 이 시기야말로 자의식이 팽배해지는 때라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구매는 대부분 집으로부터 500m~1km 사이에서 이뤄질 만큼 행동반경은 그리 넓지 않아요. 대부분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이뤄집니다. 대신에 자의식이 투철해요. 스스로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시기죠.”
아이들의 특성과 사회적인 여건이 맞물려 문방구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황 대표는 새로운 형태의 문방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즈음, 워킹맘으로서 아이 케어에 고충을 느꼈던 황 대표의 상황도 문구야 놀자 창업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IT 회사를 운영하며 소프트웨어 개발기획자로 일했던 황 대표는 업계 특성상 밤 10~11시에 퇴근하는 일이 잦아 초등학생인 딸아이의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특성을 살려 시스템적인 부분을 보완해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문구점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여기에 황 대표의 딸이 직접 지어준 ‘문구야 놀자’라는 네이밍이 초등학생 심리를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아 황 대표의 마음에 쏙 들어왔다고 한다.
즉각 실행에 옮긴 황 대표는 요즘 초등학생의 특성을 고려해 어른이 없는 무인시스템으로 문구점을 디자인했다. 아이들끼리 와서 구경하고, 판단한 다음, 결정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한 것이다.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살 것인지 물어보는 주인이 없다는 점은 초등학생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아이쇼핑’을 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톡톡히 냈다.
쇼핑경향 분석…점주와 ‘소통’ 강조한 무인시스템
문구야 놀자는 주 고객층인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점주와의 소통에도 힘썼다. 무인시스템에서 소통의 주체는 AI 기술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문구야 놀자는 키오스크를 직접 개발했다.
“대부분의 키오스크는 소비자가 계산하기 편리한 기계로서의 기능성을 부각하는 면이 큽니다. 하지만, 저희 키오스크는 매출 비교부터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렸는지 분석한 후, 이 데이터를 잘 축적해서 다시 코디네이팅해 소비자나 점주에게 재가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가 하교 후 매일 문구점에 들르는 패턴을 보인다면, AI를 통해 그 아이가 오는 시간대를 체크해 특정 시간대에는 그 물건을 더 들여놔야 한다고 알려주는 식이어서 아이들의 쇼핑 경향을 쉽게 알 수 있다.
황 대표는 이런 식으로 축적한 데이터는 유의미한 결과를 가진다고 강조한다. 기존에는 아이들 소비에 부모를 비롯한 어른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지만, 문구야 놀자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결재한 소비가 데이터로 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주 입장에서는 빅데이터와 AI 신기술을 활용해 실질적인 매출 증대에 도움을 받고, 소비자인 아이들의 재방문율을 높여 보다 효율적으로 매장관리를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모바일앱을 통해 점주와 본사간에 실시간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에 계속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이뤄지고, 소비자도 구매 리스트 정보를 계속 제공받을 수 있다.
문구야 놀자가 입점한 위치도 꽤 전략적이다. 초등학생의 특성을 고려해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 집을 오가는 동선에 자리하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들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재작년 11월 오픈한 문구야 놀자는 작년 3월 가맹점 모집을 시작했는데, 현재 전국에 120여개의 점포를 두고 있는 기업으로 덩치가 커졌다. 학교가 상대적으로 많이 밀집한 수도권에 60%의 점포가 입점해 있고, 세종·대전, 부산시 순으로 들어서 있다. 1명이던 본사 직원은 현재 20여명이 됐고, 매출도 작년보다 200~300% 정도 올랐다. 주에 보통 2~3개의 신규 점포를 계속 오픈하고 있어 앞으로도 문구야 놀자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건 팔기보단 아이들이 잘 놀수 있는 공간 만들다
일부에서는 문구야 놀자가 빠른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장의 바람을 타고 상승세를 탔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황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문구야 놀자를 찾는 소비자들은 코로나 시기여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이 갈 만한’ 문구점이 없어서인 이유가 더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구야 놀자를 찾은 5살과 7살 아이를 둔 주부 A씨는 “일반 문방구와 달리 무인시스템으로 운영이 돼 어른이 없어 아이들끼리 편하게 시간을 두고 쇼핑할 수 있어 애들이 좋아한다”고 중기이코노미에 말했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학령인구 감소로 초등학생 수는 줄었지만, 아이를 타깃으로 한 소비구조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부모, 양가 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까지 한 아이를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는 ‘에잇 포켓(eight pocket)’ 현상으로 아이들은 자신이 사고자 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소비 씀씀이는 오히려 더 커졌다.
또 어제와 오늘의 유행이 다를 정도로 수시로 바뀌는 아이템과 콘텐츠의 홍수 속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트렌드를 얼마나 잘 습득하는지에 따라 ‘인싸력’이 갈리기 때문에 유행을 잘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굳이 사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아이쇼핑하기 위해 꾸준히 방문할 수 있는 아이들의 쇼핑 공간은 PC방 놀이문화만큼이나 중요한 셈이다.
▲문구류 ▲완구류 ▲팬시류 ▲아이스크림 ▲음료 ▲스낵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는 문구야 놀자의 최근 인기 아이템은 단연코 ‘포켓몬 카드’다. 여기에 꾸준히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문구야 놀자의 캐릭터를 PB 상품으로 만들 계획도 있어서 앞으로 ‘인싸’ 초등학생들의 성지로 거듭날 것이라 자신하는 황 대표다.
그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을 위한 온·오프라인 통합 버티컬서비스(수요 맞춤 특화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점주와는 상생을 도모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지속해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위한 서비스다 보니 정직하고, 솔직하고, 진솔하게 회사를 경영해서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물건을 팔겠어’가 아닌, 그간의 데이터를 모아 잘 가공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는 공간을 계속 생산해내고 싶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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