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당겼을 뿐인데 ‘드르륵~ 착’하고 금세 나무계단이 펼쳐진다. 100kg의 거구가 올라가도 문제없다는 나무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자, 다양한 종류의 원목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마치 어린이가 살고 있는 가정집에 쏙 들어온 기분이다. 원목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에 감동하고, ‘이런 것도 나무로 만들 수 있어?’라는 놀라움에 한 번 더 감동한다. 특히 ‘목공’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에코메이커스(EcoMakers) 장상철 대표는 취미로 하던 공방을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목공 교육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접이식 계단과 비슷한 2단으로 된 계단을 만들어 특허신청도 했다. 부속을 달아 걸어 놓으면 어디든지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안전하게 꺼내도록 설계했다.
장상철 대표는 “탈플라스틱 대체제로서 목재 활용방안을 연구하면서 친환경 제품 제작과 인테리어 시공에 주력하고 있다”며, “물론, 업사이클링·친환경제품을 만드는 것이 기업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거나 플러스적인 요인이 되진 않지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모델을 계속 발굴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쇼카’ 만들던 기술력으로 아이 침대 만들며 ‘목수’로 변신
장 대표는 원래 자동차 모델 만드는 일을 전문적으로 했던 기술자였다. 1990년대 후반 기아자동차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장 대표는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시제품 만드는 일을 했다. 자동차 기업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실물을 미리 보면서 개선해야 할 점을 가늠하기 위한 콘셉트카나 양산과정에서 디자인 변경 여부나 부품을 살펴보기 위한 쇼카 제작이 그것이다. 이때 목공예 기술이 필요한데, 나무 소재를 깎아 자동차와 똑같은 크기의 외형과 디자인, 내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자영업으로 진로를 바꾼 장 대표가 본격적으로 공방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되고 나서부터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뭔가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2층 침대 등 아이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 주면서 다시 목공에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쪽 업계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가구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제조시설에서 나온 제품들과 경쟁해야 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7~8년 정도 아이의 제품을 직접 만들면서 작업실 개념으로 개인 공방을 차린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던 것을 만들며 주변에 선물하는 등 그야말로 취미로서만 목수로 활동했다.
장 대표는 “당시에는 내가 쓰고 싶은 나무로 만들고 싶던 것을 원 없이 만들었다”며, “가공하기에 어렵지만, 재질이 단단하면서 고급진 하드우드로 테이블, 의자, 장롱 등 짜맞춤 가구 위주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가 상업 공방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2018년 7월 파주시 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에서 우수 팀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사회적기업가였던 지인이 장상철 대표를 추천해 교육받으면서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됐던 상업 공방이 사회적기업으로서는 틈새시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젊은 목수들’이라는 기업명으로 목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등 환경 관련 교육사업을 했다. 같은 해에는 경기도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인 ‘따복공동체’에 선정돼 900만원의 예산을 받으면서 업사이클링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장 대표는 목재 업사이클링을 시작한 이유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가구를 한번 사면 평생 쓰는 개념이었지만, 요즘에는 유행처럼 저렴한 가구들이 많다 보니 잠시 쓰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 버리는 가구들의 70~80%가 소각장으로 가 태워진다.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는 목재가 태워지면 그게 다 대기 중으로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버려지는 가구의 사용기한을 연장시키면 그만큼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며, “가구를 수리하거나 업사이클링 하고, 취약계층이나 고용자들을 교육시켜 비즈니스모델에 투입시키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성과들이 쌓여 2020년 사회적가치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팀에 선정됐고,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관한 메이커스페이스 운영기관으로 지정돼, 2020년 8월 M6 메이커스페이스를 개소하며 지금의 에코메이커스로 법인 전환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친환경 나무제품…“한국의 ‘프라이탁’ 될 것”
에코메이커스의 서비스는 크게 제조, 교육, 인테리어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제조부분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브랜딩이다. 현재 예비사회적기업인 에코메이커스는 사회적기업 인증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사회에서 뭔가 가치 있는 역할을 하는 기업도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장 대표는 그 대표적인 브랜드 모델의 예로 스위스 친환경 기업인 프라이탁(FREIGAG)을 들었다. 프라이탁은 쓰고 버려진 화물트럭의 방수천을 재활용한 가방을 만드는데, 공장에서 찍어내는 대량 생산제품이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장 대표는 “에코메이커스가 하려는 게 이런 것”이라며, “청장년 시기에 도래한 나무는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지만, 나이가 들면 임목의 탄소 흡수율이 낮아지는 시기가 온다. 그런 나무들을 벌목해 얻은 목재로 제품을 만들어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방안 중 하나로 에코메이커스는 최근 친환경 어린이가구, 생활가구, 캠핑용품 등을 제작하는 오뉴(O.NEW)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오뉴의 강점은 ‘세상에 하나뿐인 친환경 나무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점이다. 친환경 도료와 원목을 사용했기 때문에 환경 호르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2021년 4월에는 KC 인증도 획득했다.
오뉴의 제품 중 아이들의 수납장, 수틀, 책꽂이 등을 멸종위기 동물의 캐릭터를 형상화해 디자인한 제품이 대표적이다. 이 제품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와 협업해 만든 4장짜리 스토리북을 함께 넣어준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가구를 조립하면서, 왜 이 동물들이 멸종위기의 동물들인지 설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캠핑 시리즈도 있다. 올해 안에 정식으로 출시 예정인 오뉴 캠퍼는 ‘캠핑용 양념통 박스’를 시작으로 캠핑 시리즈를 계속 개발 중이다. 이와 함께 강도가 높고 내충성·방부성이 우수한 멀바우(Merbau) 나무로 만든 에코메이커스의 생활가구 시리즈를 통해 ▲거실장 ▲반려견 하우스 ▲서랍장 ▲스툴 ▲책장 ▲침대틀 등 다양한 가구류도 만나볼 수 있다. 이외에 주문생산도 하고 있다. 캠핑용품 업체, 필라테스용품 업체, 교구재를 비롯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기능이 탑재된 책의 책장을 만들어 납품도 한다.
목재를 활용한 간판, 액자틀, 명패, 이름표 등 사인물도 제작한다. 특히 명패와 이름표는 기업에서 관심을 두고 많이 문의하는 제품이다. 국민은행 홍보 행사장에서 사용됐고, 한 게임 회사의 대표는 인터넷에서 직접 보고 400~500개의 이름표를 주문하기도 했다.
장 대표는 “일반적으로 3만원대인 이름표가 목재로 만들면 1만원대 초반”이라며,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면서 저렴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예산도 아낄 수 있고 동시에 사회적 가치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일반인 목공 교육을 통해 ‘친환경 인식 개선’에도 힘쓰다
환경을 고려하고, 목공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공방’에 대한 꿈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에코메이커스의 작업장은 이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에코메이커스는 200평 규모의 공방인 ‘M6 Maker Space’를 운영하며 개인 및 단체를 대상으로 가구제작 및 DIY 체험 교육을 진행한다. 캐드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을 설계한 후 컴퓨터에 넣으면 특정 틀이나 모양대로 기계가 알아서 잘라주는 ‘C&C 조각기’도 보유하고 있어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
특히 군부대가 몰려 있는 지역 특성을 고려해 군 장병 교육도 하고 있다. 장 대표는 “파주시에는 7~8만명의 군 장병이 모여 있고, 나이대도 20~50대 청장년층으로 다양하다. 특히 20대들은 18개월마다 계속 바뀐다. 메이커스페이스 사업 시에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며, “군과 MOU를 체결해 연간 500명씩 군 장병들에게 목공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장병 대상 목공 교육은 메이커 문화 확산에도 도움을 주지만, 군 복무 청년들이 자신의 역량을 강화할 기회는 물론, 심적인 안정감과 스트레스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장 대표는 “개성 강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보니 이런 취미활동을 통해 안정감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사관이나 장교들에게는 취미활동을 넘어 퇴직 후 제2의 인생 설계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번 교육에 20~30명의 군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교육했지만, 오는 3월 말부터는 다시 오프라인 교육을 재개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에코메이커스의 매출은 승승장구다. 법인설립 첫해에는 1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2021년도에는 2억5000만원, 작년에는 6억원으로 올랐다. 매출 비중은 제조 부분이 40%, 인테리어 부분이 30% 이상, 교육이 20% 정도를 차지한다.
장상철 대표는 인적 구성이 목수로 이뤄진 만큼 이 기술을 활용해 환경을 고려한 비즈니스모델을 계속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깊은 나무처럼 에코메이커스도 이런 나무를 닮은 기업이 될 것”이라며, “친환경 제품을 개발해 생활 환경 개선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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