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CGV에 가서 CG 처리가 멋지게 된 영화를 봤는데, 할리우드의 배우와… 와~ 컴퓨터의 조화가 멋졌습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소리를보는통로’(소보로, SOVORO) 윤지현 대표는 인터뷰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기자에게 주문하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말하는 그대로 문자로 변환돼 화면에 나타나는데, 일부 된 발음을 제외하고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포함해 90% 이상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윤지현 대표는 “대학 시절 청각장애인 작가가 쓴 웹툰을 보면서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힘든 상황과 외로움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청각장애인에게 지원되는 서비스에 인공지능만 잘 접목하면 동급 수준 이상의 혜택을 어디서든 받을 수 있을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소보로의 출발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지금은 여기서 더 발전해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까지 모두 활용 가능한 유니버셜(UNIVERSAL) 서비스 전략을 구사해 시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청각장애인이 편하게 살수 있게…기술로 ‘소통의 벽’ 허물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졸업하기 싫을 정도예요.”
라일라 작가의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에 나오는 이 대사는 모든 청각장애인이 공감하는 대목이라고 한다. 초중고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이 힘들게 학업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대필 지원, 문자 통역, 속기 통역, 수화 통역 등 각종 혜택이 지원되지만, 졸업하는 순간 마치 신기루처럼 모든 지원이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윤지현 대표 역시 대학교 시절 이 웹툰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한다.
포스텍(POSTECH) 창의IT융합공학과를 나온 윤 대표는 창업을 권유하는 학내 분위기상 실질적으로 창업을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 과목을 많이 접했다고 한다. 소보로 역시 윤 대표가 대학 시절 들었던 수업의 한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윤지현 대표는 “갯지렁이 로봇을 만드는 학우부터 펜을 허공에 휘두르면 핸드폰에 메모가 남겨지는 기술을 만드는 친구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나 역시 꾸준히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왔는데, 2학년 때는 사진을 찍으면 진짜 자기 얼굴과 웃는 표정으로 바꿔서 함께 보여주는 일명 ‘행복한 거울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지금의 미소 보정 기능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3학년 때 청각장애인 작가가 그린 웹툰을 보고 소리를 문자로 변환해 주는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그는 청각장애인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윤 대표는 “당시 대구대학교 장애인지원센터가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 돼 있었고, 청각장애인 재학생 비율도 꽤 높았다. 한 명씩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직접 따라다니며 초기 프로그램을 노트북에 세팅해 보여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윤 대표는 인공지능을 음성인식기술에 활용해 소리를 실시간 문자로 보여주는 이 서비스가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출시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 도전해 투자까지 받아 2017년 11월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실시간 자막 서비스는 온라인 강의, 교실 수업, 직장 내 회의 등 모든 소통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여러 장점으로 사용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었다. 일례로, 나의 자막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채널 기능이 있어 같은 이름의 소보로 채널로 접속해 각자의 기기에서 동시에 자막을 받아볼 수도 있다. 게다가 해당 분야와 주제에 맞게 전문용어와 사람 이름 등을 미리 등록하는 등 튜닝도 할 수 있어 정확도도 높였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도 실시간 자막을 지원하기 때문에 외국의 강의나 동영상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실시간 자막 서비스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외국어 사용이 필요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비장애인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보로는 매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기업체 등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소보로는 2018년도 2000만원대의 매출에서 그다음 해인 2019년에 4억원 이상의 매출을 냈고, 작년에는 7억5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비장애인까지 아우르는 ‘유니버셜’ 서비스로 규모를 키운다
소보로 윤지현 대표는 청각장애인 지원이라는 회사 창업 미션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비장애인까지 포괄하는 유니버셜 서비스로 시장 확장을 노리고 있다고 밝혔다. 즉, 스크립트(script)가 필요한 모든 이들이 소보로의 대상인 셈이다.
이를 겨냥해 2020년 여름에 론칭한 서비스가 타입X(type X)다. 음성이나 영상 파일을 업로드하면 자막으로 변환해 제작해 주는 서비스인데, 영상제작업체 등 B2B 의뢰가 많이 오는 편이다.
최근에는 실시간 자막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녹음까지 해주는 기능을 베타버전으로 출시했다. 여기에는 문자 기능만 사용할지, 문자와 녹음을 동시에 사용할지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녹음된 음성은 핸드폰이나 웹에서 재생하면서 텍스트를 수정할 수 있도록 편집 기능을 제공해 편리성을 강화했다. 현재 이 서비스는 행복나눔재단의 지원을 통해 청각장애인 초중고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고, 대학생은 소보로 자체에서 테스트 참가자를 모집해 무상 지원하고 있다.
윤 대표는 “녹음 기능까지 붙인 이유는 좀 더 유니버셜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내년 초에는 이 기능을 모든 사람이 다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자막 서비스 시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없다. 윤 대표는 “미국과 영국은 자막 서비스가 의무화된 나라다. 실제로 미국의 평범한 식당에서 TV를 볼 때 자막이 깔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보편화돼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7월에 OTT 콘텐츠에 폐쇄 자막 제공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막 서비스는 비장애인도 많이 이용한다. 미국에서는 자막을 켜고 보는 대다수의 사람이 비장애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나 역시 영상을 볼 때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자막을 켜고 본다”고 말했다.
소보로는 실시간 자막 서비스, AI 초안 자막 서비스, 영상 맞춤 자막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사용자는 이 세 가지 서비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년에 출시 예정인 AI 초안 자막 서비스는 실시간 자막 서비스와 영상 맞춤 자막 서비스의 중간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소보로의 영상 자막 서비스는 1급 속기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내부 정규직원과 프리랜서 인원들이 검수를 진행해 정확도가 높고, 시장가 대비 10~20% 저렴하도록 가격대를 세팅하고 있지만, 사람의 수고가 들어가기 때문에 나머지 서비스에 비해 가격대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저렴한 가격과 빠르게 AI가 해주는 자막 서비스를 원하는 사용자들에게는 AI 초안 자막 서비스가 제격이라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윤 대표는 “내년이면 웹사이트 내에 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며,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자막을 보편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자막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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