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각화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말 운도 좋은 사람입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브릴리언트 라임애드(BRILLIANT LIMEAD) 사옥에서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신혜정 대표가 한 첫 마디다. 18년간 ‘실력’ 하나만으로 치열한 디자인 업계에서 수많은 파도의 너울을 넘어온 브릴리언트 라임애드는 관성처럼 이뤄졌던 전자제품들의 디자인 작업물을 아이디어 하나로 180도 재편성하며, 글로벌 기업의 마음을 흔들었다.
신혜정 대표는 “왜 냉장고를 홍보하는데 제일 돋보여야 할 제품은 보이지 않고, 여성 모델이 앞에 나와 소구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며, “제품마다 콘셉트가 있고, 가장 돋보여야 할 부분들이 다르다. 우리 회사는 이런 제품의 강점을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브릴리언트 라임애드는 아이디어 뱅크이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잘 시각화하는 회사”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다고 뿌듯해했다.
다이아반지 대신 혼수로 받은 ‘매킨토시’가 사업 밑천
신혜정 대표의 창업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몸담고 있던 디자인 회사가 문을 닫은 것이 시초가 된 것이다. 여기에 결혼 당시 혼수로 받았던 매킨토시(Macintosh) 초기모델이 그의 사업역량을 이끄는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신 대표는 “디자인 회사에서 LG전자의 멕시코 담당자로 일했다. 이후 회사가 흩어지게 됐는데, 그때 멕시코측 담당자의 권유로 경쟁 PT를 나가게 됐다”며, “당시 작업을 혼수로 받았던 매킨토시 컴퓨터로 했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에게 다이아몬드반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받은 것인데, 덕분에 멕시코법인의 업체로 선정되는 첫 기쁨을 이 컴퓨터와 함께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직원 한 명과 함께 멕시코법인으로 넘어간 신 대표는 2년간 멕시코의 LG전자 매장에 있는 제품들을 홍보하기 위한 카탈로그, 리플렛, POP 등 각종 홍보물과 판촉물 등의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이 뿐만 아니라 LG전자 모바일 글로벌 월페이퍼 디자인 연간 업체로서 활동했고, LG전자 중남미 오디오 마케팅 패키지 및 중남미 NPI 패키지 등의 작업도 수행했다. 또, 삼성 LED 업체·중외제약 디자인 마케팅 업체·한화제약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고, 한라그룹 홍보물도 맡았다. 이후, 라임애드의 실력을 알아본 한국 본사에서 본사업체 선정을 위한 준비를 해볼 것을 제안했고, 2010년도에 LG전자 HA 글로벌 지정업체(해외 사업부)로 선정됐다.
“판에 박힌 디자인은 가라”…위기도 실력으로 넘기다
십수년간 꾸준히 LG전자의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브릴리언트 라임애드만이 가진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시각화할 수 있는 ‘실력’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라임애드’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것은 중남미 냉장고 MCP(Marketing Communication Package) 디자인이었다.
신 대표는 “제품이 지니고 있는 아이디어적인 면을 소비자가 알기 쉽도록 디자인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전에 이뤄졌던 디자인적인 관성들을 모두 뺐다. 2010년 당시만 하더라도 인물 하나 없이 카탈로그를 만든다는 것은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그랬더니 굳이 영업하지 않더라도 LG전자의 다른 글로벌 부서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며, 회사를 알리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오롯이 실력으로만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온 브릴리언트 라임애드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2016년도에 LG전자의 마케팅 부서에 관리자가 새로 들어오면서 내부적으로 업체 선정을 위한 작업이 다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큰 강당에 대표부터 200~300명의 마케터까지 다 모여 디자인 품평회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8곳의 디자인 업체 중 우리 회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1등을 했는데,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우리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기회였다”고 전했다.
당시 임원진들을 비롯해 직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아이디어는 ‘로고젝터(LogoJector)’였다. 노크하면 안쪽 조명이 켜지면서 안의 내용물을 밝게 비춰주는 인스타뷰(InstaView) 냉장고가 론칭되던 시기였는데, 제품을 놓는 공간 자체가 ‘돈’이기 때문에 POP물을 놓을 수 있는 스페이스를 잘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로고젝터였던 것이다. 제품이 놓여있는 바닥에 로고젝터를 쏘면 멀리서도 잘 보여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닥으로 쏜 ‘KNOCK KNOCK’이라는 글자는 멀리서도 사람들이 냉장고 앞까지 와서 제품을 두드려 보게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아이디어로 글로벌리 POP물을 생산하게 됐고, 브릴리언트 라임애드는 이 작업물로만 50억~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이드 포스터 EL 시트(Side Poster EL Sheet)라는 아이디어도 높은 점수를 받는 데 한몫했다. 특정 시트지에만 불이 들어오게 해 두드리면 밝아지는 인스타뷰 제품의 특징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 경계 없이 ‘디자인’ 강자로 우뚝 서다
이후 브릴리언트 라임애드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겨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자, 더 이상 오프라인 홍보물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성장의 지름길이다. 이에 3년전, 온라인사업부를 신설해 온라인 배너 등 작업을 꾸준히 하며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결과, 2021년에 LG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 온라인 배너업체로 선정돼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레인지, 청소기 등의 온라인 비주얼과 카피를 개발하는 등 온라인에 들어가는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다. LG 멤버 데이즈, 웨딩데이 등 각종 프로모션이 있을 때마다 비주얼을 개발하는 것은 당연하고, 날씨마케팅이라고 해서 날씨, 환경, 상황에 따라 이미지와 메시지가 자동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조합해 띄어지도록 하는 등 비주얼 작업도 진행했다.
얼마 전에는 곧 다가올 블랙프라이데이를 위해 만든 비주얼 작으로 업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빅세일을 앞두고 심장이 두근두근 설레는 사람들을 향해 ‘두근두근 다가올 거야’라고 알려주는 것을 시각화한 것으로 검은 바탕에 붉은 하트가 뛰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당시 쟁쟁한 글로벌 광고대행사와 대기업들이 LG의 PT에 참가했는데, 만장일치로 브릴리언트 라임애드가 선정됐다고 한다. 이처럼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온·오프라인 작업을 하다 보니 딤채, 필립스, 마이어(MEYER) 등 여러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에서 작업 의뢰도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
2005년 라임애드라는 개인사업자로 시작해, 2014년에 법인 전환하며 회사명도 눈부신, 멋진이라는 뜻의 영단어 Brilliant를 붙여 브릴리언트 라임애드라 명명했다. ‘앞으로 더 찬란하게 빛나서 톡톡 튀는 상큼한 광고를 하는 회사로 더욱 성장하면 좋겠다’는 신 대표의 바람이 녹아있다. 사옥도 사업 시작한 지 약 10년만에 마련할 수 있었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디자이너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창의적인 공간에서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19년에는 같은 자리에 사옥을 신축하며 직원의 공간 복지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신혜정 대표는 “단 한 명에게라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시각화가 천재인 회사로 만들고 싶다”며, “상상을 디자인으로 현실화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역량을 발휘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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