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정이 넘친다.’
전통시장 하면 떠올랐던 이미지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대형마트의 초저가 마케팅과 각종 인프라는 전통시장으로 향했던 서민들의 발길을 대형마트로 향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온라인에 밀려 대형마트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전통시장 상황은 대형마트가 마주한 어려움보다 더 심각하다.
그래서 최근 들어 각계에서 전통시장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전통시장 내부적으로도 시대적 흐름에 맞추기 위해 변화하려고 한다. 그중 한 곳이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포방터 시장’이다. 디지털 사업화에 대한 정부 지원사업을 받기 위해 시장의 상인들이 의기투합해 포방터시장 상인협동조합을 만든 만큼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조윤식 이사는 “포방터 시장은 재작년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디지털 전통시장 육성사업으로 선정된 이후,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며, “우리 시장은 먹거리 점포가 유명하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다른 상품도 판매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밀키트를 개발하고, 다양한 채널의 온라인 판매 입점을 시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업시간 ‘한계’를 없애고, 시장만의 ‘품질’을 앞세우다
현재 서울시에만 370여곳의 전통시장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점포만 5만7000여곳이다. 하지만, 광장시장이나 동대문종합시장처럼 해외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장은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에 뒤처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포방터 시장처럼 지하철역에 내려 30분간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등 교통편이 불편하고,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은 더욱 그렇다. 이런 이유로 1960년에 탄생한 포방터 시장은 2014년 3월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았지만, 동네주민 외에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골목형 시장일 뿐이었다. 그러다 2018년 TV 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막창, 주꾸미, 홍탁 등의 식당이 솔루션을 받으며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지금의 ‘전국구 맛집’이 있는 시장으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이에 맞춰 포방터 시장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디지털 시장으로 확장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다.
조윤식 이사는 “전통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신선한 식품을 당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시간에 한계가 있어 일부 식당을 제외하고는 시장 영업은 거의 오후 5~6시면 마무리된다”며, “그렇게 되면 재고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온라인 판매를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먼저 포방터 시장 자체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장의 밀키트 브랜드인 포유포밀(for you for meal)을 만들었다. 이 밀키트에는 기존의 밀키트 형태에 국한하지 않고 시장만의 특색있는 제품을 개발해, 고객이 좀 더 쉽게 시장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비롯해 오픈마켓, 현대 이지웰 복지몰 등 온라인 스토어에도 입점했다.
시장 디지털화…“주변 상권 변하는 만큼 시장도 변화해야”
조윤식 이사에 따르면, 처음 디지털화를 시도했을 때 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고 한다. ‘이게 과연 될까?’, ‘그냥 하는 거 아니야’라고 의구심을 보이던 상인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총 96곳의 점포 중 온라인에 입점한 점포는 세 곳뿐이다. 작년 중순에 ‘포방터 쭈꾸미’가 먼저 시작했고, 이번 여름에 쌀, 야채 전문점이 합세했다고 한다. 참여율은 높지 않지만, 반응은 좋아서 쌀 전문판매점의 경우 제품 소분업을 받아 보리와 여러 잡곡류를 섞는 방식으로 잡곡류 세트를 만들어 판매해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기존에는 없던 매출이 추가로 생기니, 시장 상인들의 반응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오는 10월 말에는 카레 전문점과 상회 등 두 군데가 더 합류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이 온라인 판매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 의구심 때문만은 아니다. 법적인 문제에 가로막힌 탓도 있다.
조 이사는 “인터넷 판매를 하려면 음식점의 경우 즉석식품 제조가공업을 받아야 한다. 즉, 매장에 주방시설이 구분돼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을 갖춘 곳이 전통시장에는 별로 없다”며, “이런 이유로 온라인 판매를 위해 상인들이 매장 개선에 나서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판매 외에 시장 밀키트 브랜드에 대한 반응도 좋다. 전통시장만의 차별성과 계절성을 반영해 식료품 개발을 진행해 내놓기 때문이다.
조 이사는 “보통 밀키트 전문점에 가면 2~3인분에 1만원~1만5000원에 판매한다. 우리 브랜드는 ‘포방터 쭈꾸미’ 를 제외하고는 1인 가구 위주로 메뉴를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최근 포방터 시장 주변의 상권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포방터 시장 주변에는 어르신이 많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신혼부부들이 많이 생겼고, 주변에 서울여자간호대, 상명대 등 대학교가 밀집해 있어 자취하는 학생들도 많다. 이런 이유로 1인 가구에 맞춘 제품들을 많이 내놨고, 다른 밀키트 전문점 대비 가격은 20~30% 낮췄다”고 했다. 게다가 “시장에서 바로 만들어 판매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높고, 시장이 쉬는 날에도 쉽게 구매할 수 있어 편리성을 높였다”고 덧붙였다.
밀키트 브랜드인 포유포밀 자체 매출은 오프라인과 비교해서 10%도 채 되지 않지만, 소비자 반응은 뜨겁다. 대표적으로 과일 도시락의 경우 과일의 당도와 신선도를 검수한 후, 주문과 동시에 시장 내에 있는 공용주방에서 바로 만든다. 이런 맛은 소비자들이 더 잘 알아서 주민센터나 구청 등에서 꾸준히 배달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방송을 탄 후 맛집으로 등극한 ‘포방터 쭈꾸미’ 역시 밀키트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다. ‘토실토실하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여느 밀키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양념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기존 밀키트의 편견을 깼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마케터로서의 경험 살려 전통시장 살리는 데 일조할 것”
포방터 시장에서 ‘포방터 쭈꾸미’를 형과 함께 운영하는 조윤식 이사는 MD로 2년 정도 근무하며 홍익대에서 마케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피자나라치킨공주’ 등 외식업체에서 4년간 마케팅 업무를 했다. 그의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현재 포방터 시장 상인의 마케팅을 소소하게 도와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한다.
조 이사는 “온라인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상인들이 많이 물어오는데, 마케팅 전문가로서 그들에게 방향성을 보여주거나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포방터 시장이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런 변화를 고객에게 알리면서 전통시장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우선, 교통편이 좋지 않아 외부인의 유입이 어려워 단골 위주의 상권으로 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좀 더 많은 고객이 시장을 찾을 수 있도록 포방터 시장 전용 주차장을 만들고, 아케이드 사업을 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도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다채로운 먹거리 행사도 열고 있다. 2017년 5월부터 시작한 ‘토요일앤(&)포방터’ 행사가 대표적이다. 토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먹거리 행사로, 체험행사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얼마 전에는 온라인 플랫폼 입점을 앞두고 나온 제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품평회 행사도 먹거리 행사와 함께 열어 고객으로부터 열띤 반응도 얻었다.
조 이사는 “행사할 때는 60대 이상의 어르신부터 신혼부부, 청년들까지 남녀노소 많이 찾아올 정도로 고객 유입수가 증가했는데, 평소 대비 5배 이상”이라고 했다.
조윤식 이사는 포방터 시장의 다양하고, 좋은 먹거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유통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 일환 중 하나가 식품제조업으로의 변화다.
그는 “얼마 전에 김밥 프랜차이즈에서 숍인숍 형태로 판매하고 싶다는 의뢰가 왔었는데, 법적인 부분이 걸려 하지 못했다. 즉석식품 제조가공업의 경우 무조건 B2C만 가능하고 유통은 하지 못한다”며, “식품제조업은 B2B로 납품이 가능하다. 그래서 ‘포방터 쭈꾸미’의 경우 공장화를 해서 프랜차이즈 혹은 수출하는 등 좀 더 폭넓은 유통망을 구축하기 위해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얼마 전에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주최로 열린 전통시장 청년상인 간담회에 참가했는데, 청년몰의 경우 투자를 많이 했음에도 오래 버틴 청년들이 적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드러났다”며, “라이프스타일&로컬 분야를 혁신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라이콘 기업을 발굴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런 걸 보니 나부터 기업가형으로 발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말에 공장설립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포방터 쭈꾸미’뿐만 아니라 다른 상인의 제품들도 함께 돕고 싶다. 기타수산물가공업으로 공장이 허가를 받으면 수산물과 관련한 상인들에게도 방향성을 알려주는 등 여러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으로써 포방터 시장이 좀 더 관광시장으로 활성화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다.
그는 “골목식당이라는 솔루션 TV 프로그램으로 몇 먹거리가 전국 단위로 떴고, 이런 파급력은 시장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는 시장의 자생력을 좀 더 키워 포방터 시장이 하나의 브랜드로서 가치를 높이고, 디지털 전통시장으로서 더욱 도약해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시장 내 브랜드를 먹어보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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