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본연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화장품은 이런 아름다움을 좀 더 극대화해 주는 도구이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다. 나는 내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를 통해 ‘당신 참 사랑스럽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틴트전문 화장품기업 제일리의 진은주 대표는 뷰티 산업 종사자면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다.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고 꾸미는 아름다움보다 자신의 숨겨져 있던 매력을 화장품으로 발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시에 화장품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도 향상되길 원했다. 진 대표의 이런 바람은 그만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회사명은 진 대표 이름의 이니셜에서 따온 알파벳 J와 백합을 뜻하는 영단어 LILY를 합쳐 제일리(J.LILY)라 지었다. 진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백합이 시즌마다 나오는 꽃이 아니다. 그만큼 귀한 꽃이다. 또, 백합이 겉으로 보기에는 마냥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반전의 진한 향이 있다”며, “제일리 제품을 사용하면서 또다른 자신의 반전 매력을 느끼고, 경험하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이렇게 이름 지었다”고 설명했다.
무조건 특별하고 다르게?…고객이 원하는 욕구를 실패 통해 읽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진은주 대표는 좀더 사람을 이해하고 학문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심리학을 전공한 후, 3년여간 청소년 진로교육 강사로 일했다. 이유는 청소년이 진로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깊고 힘든지를 과거 자신의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삶의 변화를 맞은 것은 오히려 진 대표 본인이었다.
진은주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의 진로 교육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욱 꽂히게 됐다”며, “학생들에게 기업을 만들어보고 일상에서 불편한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고 미션을 내리고 토론하면서 내 안에 내재해 있던 것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바로 화장품에 대한 열망이 솟아올랐다. 평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화장품과 메이크업에 대한 열정은 많았지만, 화장품에 대해 초보였던 진 대표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품발명디자인학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18년 8월 사업자등록을 내고 첫 제품을 선보였다.
진은주 대표는 “도전과 실험을 즐기는 나지만, 제품 기획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품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은 안 된다는 생각에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국내 굴지의 화장품 기업에 있었던 전문가를 섭외해 브랜드부터 업체 컨택, 첫 제품 개발까지 함께 했다”고 말했다.
이때 출시한 제품이 물광 수분크림이라고 불렸던 ‘핑크크림’이다. 진은주 대표는 이 제품으로 인해 개발자와 고객과의 인식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고, 제일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진 대표는 “남다르고 싶다는 욕심에 용기 디자인도 자(jar) 타입으로 만들었다. 또, 보통 하얀색인 수분크림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천연색소를 넣어 핑크빛이 돌도록 했다”며, “오히려 이런 점이 고객들에게는 설명할 거리를 더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가령 물광톤업크림이라고 하는데 왜 바로 하얘지지 않나요? 라고 묻는 고객에게는, 여기서 말하는 톤업크림은 그런 톤업크림이 아닙니다 등 일일이 설명해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차별점을 두려고 했던 포인트가 오히려 고객들에게 의문점을 낳게 했고, 이는 판매율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3000개 물량 중 1500개 정도가 판매됐는데, 대부분 실제로 판매한 것이 아닌 영업용으로 뿌린 것이었다고 한다. 반응은 나중에야 왔다. 이 제품이 좋다며 재구매 문의를 하는 고객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진 대표는 그때야 제일리의 진정한 타깃층을 만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화장이 잘 먹는 크림이라며 좋아했다. 알고보니 핑크크림을 다시 찾은 고객들은 건조함이 고민인 사람들이었다. 처음 제품을 개발하고 내놨을 때 주력 소구점으로 잡았던 포인트와는 다른 부분을 고객들이 끄집어내준 셈” “제품 단종을 고민할 때도 더 좋게 리뉴얼해달라는 고객 요청도 이어졌다. 이에 코로나19로 위생이 큰 이슈가 되던 시기라 튜브형으로 용기를 바꿔 내놨다”고 말했다.
예쁘면서 불편함은 줄였다… ‘삶의 질’ 올리는 틴트
제일리의 방향성을 일깨워준 제품은 ‘핑크크림’이지만, 제일리에게 명성을 안겨준 제품은 틴트다. 화장품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리=틴트’로 알려지며, 틴트의 강자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진은주 대표는 “피부의 바탕이 완성된 후 다음 스텝은 색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입술이라고 생각한다. 바쁠 때 립만 발라도 얼굴이 확 살아나기 때문”이라며, “이런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립스틱, 립틴트 등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해 20년 넘게 립에만 5000만원 이상 쓸 정도로 립제품이 많고, 컬러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소 퀵메이크업을 좋아한다. 틴트는 립에만 바르는 게 아니라, 섀도, 블러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틴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틴트를 개발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진은주 대표가 틴트 개발 시 가장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제형이다. 4~5년전에 매트(matte)한 립 제품이 유행이었지만, 유명 글로벌사에서 나왔던 제품들조차 바르면 입술이 건조하기만 하고 촉촉함은 없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제품도 입술 각질이 올라올 정도였다고 한다.
진 대표는 “매트한데 부드러운 실크같은 감촉과 느낌을 원했다”며, “당시 시중에 나왔던 립 제품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싶었다. 입술에 각질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부드러워 립밤을 이중으로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틴트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일 년 이상 준비해 2020년 제품을 출시했지만 공교롭게도 코로나19가 터져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진 대표는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릴 순 없어 일단 내고 버텼다”며, “판매는 저조했지만, 리뷰들이 점점 쌓였고 사람들이 코로나19에 지치기 시작할 때쯤 소비가 늘기 시작하면서 제품 판매도 꾸준히 올랐다”고 했다.
고객의 뜨거운 반응에 지난 11월 7일에는 라떼벨벳틴트로 업그레이드해 출시하기도 했다. 업그레이드하면서 컬러도 4종에서 5종으로 늘려 각각의 퍼스널 컬러에 맞출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톤은 낮으면서 입술에 얹었을 때 자연스럽게 발색되는 뮤트립 컬러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데일리 메이크업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틴트 전문 화장품 기업으로 ‘제2의 스타일난다’ 목표
뷰티 시장에서 립틴트는 기존의 립스틱과 립밤에 비해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2015년도부터 급속히 커졌다. 다른 컬러를 레이어링해서 또다른 느낌을 부여할 수도 있고, 착용감이 편안해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틴트를 사용하면서 알게 모르게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비자도 많았다. 제일리는 이 점을 공략했다. 단점을 개선해 내놓자,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4월에는 플럼핑(plumping) 오버립 효과를 부여하는 뉴트럴벨벳틴트를 와이즈펀딩으로 내놓았다.
진은주 대표는 “목표설정액이 2000만원이었는데, 4000% 달성했다”며, “소비자가 1만7500원으로 객단가가 낮은데도 결과가 꽤 좋았다. 평소 촉촉한 글로시한 립 제품이 잘 지워지고 끈적여서 불편해, 밀착력과 고정력이 좋고 매트하면서도 플럼핑 효과를 부여하는 벨벳틴트를 개발했다”고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수분크림으로 시장에 제일리의 저력을 알리고, 틴트로 자리매김한 제일리의 매출은 기업 설립 초창기와 비교했을 때 70~80% 성장했고, 작년에 비해 30% 성장했다. 수출에 주력하고 있진 않지만, 왕홍 등 중국에서 반응이 좋고 SNS를 통해 해외의 인플루언서들이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진은주 대표는 “단순히 예쁘고 갖고 싶은 틴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틴트를 만들고 싶다”며, “화장품 회사에서 BM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아이디어나 센스를 잘 발휘한다. 이런 장점을 살려 ‘제2의 스타일난다’처럼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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