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든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K-웹툰 팬들 사이에서 눈물·콧물 바람을 일으켰던 로맨스 판타지 장르인 ‘황무지의 봄바람’ 중, 여자·남자 주인공이 대면할 때 나오는 내레이션 중 하나다. 만약, 이때 회색의 천장과 작은 창문만 덩그러니 있는 공간에서 두 주인공이 마주하고 있었다면, 이토록 수많은 팬이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당 씬에 어울리는 배경과 색채, 톤, 다양한 텍스트와 효과음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그 장면은 완성되고, 독자의 감정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일 오전’처럼 웹툰 배경을 전문으로 작업하는 스튜디오가 중요한 이유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최정은 대표는 “장르에 맞는 배경 모델링과 연출에 맞는 효과, 보정, 편집 작업은 웹툰의 퀄리티 전체를 좌우하는 중요한 작업 단계”라며, 배경이 웹툰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K-웹툰이 글로벌적으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배경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장기적으로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사업을 생각하고 있고, 중단기적으로 AI 기능이 들어간 툴 개발과 국내외 웹툰 인력을 매칭해주는 플랫폼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창작’에 목말랐던 웹디자이너, 웹툰에 빠져들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최정은 대표는 10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신문사의 편집디자이너부터 기업체와 디자인 에이전시의 디자이너, 웹사이트를 담당하는 웹디자이너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하지만, 그의 맘속은 언제나 ‘예술성’에 목말랐다고 한다.
최정은 대표는 “창의적인 것이 좋아서 디자이너가 됐지만, 막상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는 직종”이라며, “어떤 작업을 했을 때,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클라이언트가 요청하는 대로 A부터 Z까지 해줘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 그가 웹툰의 매력에 빠진 계기는 배경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부터였다.
최 대표는 “프로그램이 겹치기 때문에 디자인을 했던 사람이라면 금방 할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이미지 합성이나 이펙트 등 각 분위기에 맞는 연출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디자인했던 사람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다 보니 디자인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물론 담당 PD들이 피드백을 주긴 하고, 수정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디자인처럼 싹 다 갈아엎는 수준은 아니다”라며, “작가의 스타일이나 감성을 이해해 주는 분위기여서 좀 더 열려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웹툰 배경을 ‘예술’로 끌어올리다
최정은 대표는 웹툰 배경은 웹툰의 퀄리티 전체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웹툰 제작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웹툰을 제작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최 대표에 따르면, 웹툰 제작 과정은 이전과 달리 상당히 세세하게 분업화돼 있다.
먼저 글·그림 콘티 작가가 스토리를 짜면, 이를 토대로 그림 작가가 스케치를 러프하게 한다. 이후 펜터치로 좀 더 디테일하게 그림을 표현한 후, 채색이 들어간다. 이렇게 채색까지 마무리되면 배경이 빠진 채로 원고가 수요일오전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럼, 수요일오전에서 배경에 대한 모든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배경의 범위는 단순 배경 그림만을 뜻하지 않는다. 배경을 넣고, 배치하고, 톤 보정을 하는 것부터 식자라고 하는 말풍선, 텍스트, 내레이션, 효과음까지 넣어야 마무리가 된다. 특히 ‘샤샤샥~’, ‘쉬웅~’, ‘샤악~’과 같은 의성어부터 ‘덥석’, ‘둥실둥실’ 같은 의태어는 읽는 사람을 해당 씬에 긴장감 있게 빠져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배경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최 대표는 “배경은 웹툰에 있어 전체적인 종합 편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배경이 떨어지면 작품 전체의 퀄리티가 달라진다”며, “예전에는 마지막 단계에서 배경을 했다면, 요즘에는 배경을 선작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림 작가들이 배경이 있는 상태에서 그리는 게 더 편하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배경이 웹툰 작가의 아이디어 생성이나 작업 능률에 있어 중요하다는 뜻이다.
배경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출판만화 시대와 달리 요즘 웹툰 시장은 컴퓨터의 기술이 들어가기 때문에 개성 있고, 컷에 걸맞은 ‘소스’를 활용하는 능력도 경쟁력이 됐다.
일례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판타지물의 경우 장식이 많이 들어간 소품, 드레스, 장신구를 일일이 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3D 모델링인 소스를 추출해 다양하게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웹툰에서 같은 성이 등장하는 등의 헤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웹툰 배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작가들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수요일오전은 현재 투믹스, 블루픽 스튜디오, 웹툰코이콘텐츠, 문스튜디오, 메세나스튜디오 등 플랫폼 및 웹툰 제작사 5군데와 60여 작품을 함께 했다. 한 작품에 백회차 이상 넘어가는 작품도 있는 걸 감안하면 그 수가 상당하다 할 수 있다.
특히 사내 엄격한 퀄리티 검열 시스템을 통해 웹툰 제작사로부터 실력에 대한 검증과 신뢰를 얻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2021년 9월에 법인 설립한 수요일오전의 매출은 2022년 1억6000만원에서 2023년 4억2000만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올해는 10억원 이상 매출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인력 ‘부족’이 큰 문제…“국내외 웹툰 인력 연결할 것”
현재 K-웹툰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K-웹툰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최정은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도 계속 K-웹툰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력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점을 이전에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최정은 대표는 “지금처럼 분업화되기 전인 3~4년 전에는 그림작가가 하거나 제작사에서 직원을 고용해 배경 작업을 했다. 문제는 작가가 갑자기 잠수를 타버리거나 대형 플랫폼에 스카우트되는 경우”라며, “우리는 전문업체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퀄리티 있게 작업물을 공급해 준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배경만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는 많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배경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육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최 대표는 “웹툰 학원에서 메인 그림 작가 관련 교육은 많지만, 배경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육은 없다. 수업 중에 배경하는 방법, 스케치업 다루는 방법 등만 부수적으로 넣을 뿐”이라며, “대학교 자체도 디자인학과는 많지만, 웹툰학과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러니 웹툰 배경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인력 부족을 항상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이 웹툰 업계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대환영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이 분야가 색감, 구도, 투시 보는 법 등 기본적인 미적 감각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입시 미술을 했던 사람과 아닌 사람과의 차이가 크다. 생각보다 구도나 비율적인 면에서 틀리는 사람이 많다”며, “툴을 배우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기본적인 감각이 탑재돼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최 대표는 훗날 작가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사업을 펼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중단기적인 목표는 툴 개발이다. AI 기능이 들어간 툴을 개발하게 되면 배경 편집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이와 함께 웹툰 전문인력 매칭 플랫폼도 그의 목표다. 개인과 업체, 개인과 개인, 업체와 업체 간에 국내외 전문인력을 다양하게 연결해 주는 것이 밑그림이다.
최 대표는 “한류 콘텐츠 중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분야가 웹툰일 정도로 글로벌적으로 K-웹툰이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다. 동남아는 석권한 지 오래이고, 미국, 유럽에서도 시장점유율이 50~70%를 넘어간다”며, “웹툰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아침이라는 경쾌하고 맑은 느낌을 살린 회사명처럼 K-웹툰의 밝은 미래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회사도 스케일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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