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 2022년 대한민국은 ‘이태원 참사’라는 아픔을 또 겪어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재해와 각종 차 사고 등 현대인들은 매 순간 ‘재난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노스토리(Product Innovation Story) 이명원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뉴스를 보면 비슷비슷한 사고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만은 안전할 거라 믿는다”며, “이유는 자신은 안전사고에 잘 대비하고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살면서 크고, 작은 위험의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는 이 대표는 “사람이 당황하기 시작하면 생각 회로 자체가 멈춘다”며, “직간접적으로 여러 분야의 재난 상황을 겪으며 ‘안전’에 대한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고, 나와 주변의 안전을 위해 관련 제품 연구를 시작했다”고 제품을 개발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왜 이런 건 없을까?”…각종 사고 후 ‘안전 키트’ 필요성 절감
폭우, 지진, 화재, 교통사고 등 현대인은 다양한 위급상황에 노출되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런 재난 사고의 빈도는 다양한 형태로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이명원 대표를 가장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고는 ‘세월호 참사’였다.
이명원 대표는 “당시 딸아이 역시 수학여행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며, “자식 같은 아이들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게다가 지인들과 함께 갔던 고깃집에 불이 나면서 수많은 사람이 허둥대며 무조건 문 쪽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며 ‘골든타임’에 최적화된 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 대표는 “식사하는 중에 불이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봤다. 그나마 고깃집에서 잘 대응을 한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당황한 손님들이 이리저리 밀며 밝은 쪽만 보고 뛰어갔다”며, “나 역시 바깥으로 나갔는데, 그만 밀고, 당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붕 떴다가 떨어지기까지 했다”고 당시의 아찔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후 재난 관련 제품들을 찾아봤다는 이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LG전자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지능형 가전 그룹장을 지낸 이명원 대표는 재료공학과 전자재료를 전공한 경력을 살려 안방 화장실에서 제품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골든타임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1초면 위급상황 탈출…망치·커터·마스크·위치전송이 한 번에
응급 상황에서는 ‘골든타임’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기본 사항이지만, 막상 재난 상황에 놓이면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외부적인 영향으로 인해 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 사고 후, 문이 열리지 않거나 안전벨트에 락이 걸려 차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명원 대표는 “평소 안전사고에 대응을 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 중에 자동차 콘솔 박스나 트렁크에 망치를 넣어 다니는 경우가 있다”며, “이 경우 오히려 사고가 났을 때 망치가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로 전락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 기구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고층 건물이나 차량 내 갇힘 사고에서 손쉽게 탈출할 수 있고, 화재나 유독가스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제연 마스크, 망치와 커터, 신고 및 사고 현장 공유가 가능한 기능을 합친 다기능 구난 키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제품이 세이프티씰(SAFE T SYL)과 세이프티씰 드라이브(SAFE T SYL DRIVE)다. 세이프티실은 방독면, 망치, 커터, 신고 기능이 한 번에 있는 4 in 1 키트다. 세이프티실 드라이브는 차 사고에 특화한 제품으로 망치, 커터, 신고기능이 들어있다. 모두 6.50cm×4.5cm의 초소형 사이즈에 각각 100g, 70g의 경량으로 휴대성을 강화했다.
이 대표는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강화유리나 접합유리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특히 안전을 생각해 고급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고가 나면 접합유리를 깨지 못해 탈출이 힘든 경우가 있다”며, “세이프티씰은 이런 접합유리까지도 깰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
이어 “교통사고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이 안전벨트에 락이 걸리는 경우다. 특히 100km 대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안전벨트가 열리지 않아 못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때 커터로 재빨리 안전벨트를 끊고 차 밖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망치는 힘이 약한 사람도 손쉽게 유리를 깰 수 있도록 생체역학적으로 만들었다. 일반적인 망치로 타격을 하면 어깨와 팔꿈치, 손목의 각 분절에 에너지 손실이 있기 마련이고, 한 포인트에 집중적으로 타격하기 힘들다. 반면, 세이프티씰은 특수 열처리된 금속이 한 점에 집중적으로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충격량을 극대화한다. 이 대표에 따르면, 보통의 망치보다 3~4배 정도 타격률이 높다.
마스크의 경우 화재 상황에서 방독면 역할을 한다. 화재 시 5~10분이라는 골든타임 내 안전하게 탈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세이프티씰의 마스크는 특수 소재와 다층 구조 필터로 만들어져 코에 갖다 대기만 하면 일산화탄소와 유독가스를 90% 이상 막아준다.
SOS 신고 기능은 119 상황실과 사전에 등록한 지인에게 위치표시와 함께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기능이다. 스마트폰을 세이프티씰에 대기만 하면 신고·관리 창이 떠서 신속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 전송과 구조요청이 가능하다.
제품의 차별성과 우수성은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 2018년 11월 설립한 피노스토리의 세이프티씰은 2019년 5월 진행한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에서 한 달간 681%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이 기세를 몰아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19 대한민국 안전 기술 대상’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2022년 6월에는 한국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주관한 안전 신기술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23년 27g의 초경량 세이프티씰 플렉스를 출시하면서 진행한 와디즈 펀딩에서는 1489%의 목표 달성률을 올렸다.
이명원 대표는 “세이프티씰의 장점은 언제든 손만 뻗으면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점”이라며, “제품 색상은 세이프티 오렌지로, 우리가 개발한 색상이다. 또한 제품 본체를 잇는 끈은 라이트 리플렉터(light reflector)로 돼 있어 반짝이기 때문에 눈에 쉽게 띈다”고 자신했다.
가짜일까, 진짜일까…신고 필터링 기술로 공공성까지 높인다
세이프티씰 제품은 경기도청 및 교육청, 제주도청을 비롯해 지자체와 각종 공공기관 등 B2G 거래가 많다. 여기에 오픈마켓,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온라인과 서울역의 중소기업 명품 마루에서도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품 출시 한 달 만에 1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세이프티씰은 지금까지 약 3만5000개가 팔려나가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각각의 제품을 따로 들고 다닐 필요 없이 한데 모은 기술력과 휴대성을 강화한 제품력, 3만98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해 매년 30%씩 매출 신장하고 있다.
피노스토리의 다음 스텝은 SOS 신고 기능을 좀 더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을 좀 더 확장하는 것이다.
이명원 대표는 “119나 112의 큰 골칫거리는 장난 전화다. 그래서 119에 신고하더라도 거짓 유무를 판별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있다. 또, 같은 위급 상황이라 하더라도 한정된 인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서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며,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해 전화나 이미지의 가짜 유무를 필터링하는 등 소프트웨어를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사고가 날 경우 뒷자리가 앞자리보다 7% 정도 사상률이 더 높다”며,이를 대비하기 위해 택시업체와도 협업하기를 희망했다. 글로벌 시장망도 더 넓힐 예정이다. 현재 일본, 방콕, 미국에 특허도 등록해 놓은 상태다.
자동차 앞좌석과 뒷좌석에 5개씩 세이프티씰을 붙여놓고 다닌다는 이명원 대표는 자동차 제조사에서 사고 후 안전까지 보장해주지 않는 만큼 자신과 가족, 친구를 위해 ‘안전을 선물하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내 인생의 모토가 ‘꿈을 꾼 만큼 노력하라’다. 28년 동안 대기업 연구원으로 직장인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앞으로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싶다”며, “아파트 완강기 주변, 자동차의 선바이저, 헤드레스트, 유리창에 부착하거나 가방에 매달고 다니면 최소한 위급상황 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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