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은 ‘김치’처럼 잘 발효시킨 음식과 같다

전통주조 방식 그대로…가양주작㈜ 김은성 대표 

 

“방금 지은 밥은 그 자체로 맛있잖아요? 좋은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원칙을 고수해서 만들면 깔끔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술을 찾는다는 게 참 어렵더군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직접 좋은 술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가양주작㈜ 양조장에서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김은성 대표가 진지하게 술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인터뷰 내내 ‘좋은 술’의 가치에 대해 힘줘 말했다.

김 대표는 “진짜 전통주는 화학 첨가물과 화학적인 공정을 거치지 않고 숙성 시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전통 누룩에는 효모가 들어 있는데, 이 효모마다 뿜어내는 맛이나 향이 달라서 복잡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술의 향이나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똑같은 술이라도 다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며, 전통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폐교 위기 학교 구하려 시작한 마을 동아리가 기업으로

가양주작의 시작은 폐교 위기에 처한 동네의 초등학교를 구하기 위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 김은성 대표가 이사 오자마자 아이가 다니던 둔대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렸고, 이에 학부모들과 연합해 해당 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혁신학교로 지정받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마을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조합에 속했던 동아리 중 하나가 가양주작이었다.   

김은성 대표는 “혁신학교의 핵심 모토는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마을협동조합을 만들고, 조합 안에 보드게임 동아리, 청소년협동조합 유스쿱부터 성인을 위한 동아리까지 20개가 넘는 동아리들이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40명으로 시작한 전통주 동아리인 가양주작은 나중에는 150명이 넘게 인원이 늘어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김 대표는 “동아리 사람들과 주말마다 술을 만들다 보니 사업화하자는 의견들도 나오기 시작했다”며, “2016년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양조장에서 술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가 나오는 등 요건이 완화됐지만, 이 면허로는 소주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2016년에 출자자를 모집해 농업회사법인으로 출범하고, 탁주와 약주제조 면허 등 일반 면허를 땄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우연히 접한 ‘동네 술’ 때문에 ‘좋은 술’에 관심

의료기기 수입·유통업을 하던 김은성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해외 출장에서 우연히 마신 동네 와인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2000년대 초반, 호주 멜버른의 거래처 직원이 사 온 동네 와인을 먹고 깜짝 놀랐다. 그전만 하더라도 와인이 맛있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먹어본 와인은 잊을 수 없었다”며, “한동안 그런 와인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와인 공부도 하고, 모임도 나가봤지만, 그때 먹었던 술맛이 영 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일본 교토에 갔을 때는 식당 이름과 똑같은 사케가 나왔는데 그 술 역시 그동안 내가 알던 사케가 아니었다. 이후로 맛있는 사케를 먹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그때 그 맛은 찾을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여기서 그가 깨달은 점은 진짜 ‘좋은 술’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미 상품화가 돼서 대량으로 생산된 술이 아니라 별다른 가공 없이 만들어지는 ‘지역 술’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이에 2009년부터 인터넷을 뒤져가며 혼자 전통주에 관해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 취미로 시작하던 공부에 매료됐고, 지역 동아리 활동까지 하면서 2018년도부터는 의료기기 쪽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가양주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리 전통술의 진짜 가치는 제대로 우려내는 데서 나온다”

김은성 대표의 목표는 좋은 술을 만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좋은 술이란, 유명한 술이 아니라 지역 쌀과 누룩으로 오랜 발효과정을 거쳐 동네에서 직접 만들어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원래 우리나라는 주점 문화가 아닌, 아무 집이나 들어가 밥과 술을 얻어먹던 문화였다”며, “그래서 누구나 술을 김치처럼 담가 먹었다. 그래서 이름도 가양주(家釀酒) 문화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가양주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가양주작이라 지은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60평(약 198㎡)의 규모에 양조장과 주점으로 나눠 운영하는 가양주작은 지금은 어느 정도 체계화가 이뤄졌지만, 초기에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고 한다. 특히 술을 빚기 위해서는 산소에 대한 개념이 필수인데, 독학으로는 이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루트가 전혀 없었다.  

그는 “예전에는 소량으로 항아리만 놓고 만들던 것을 대량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항아리로 만들던 비율과 같은 비율로 양만 늘린다고 해서 술이 되는 게 아니었다”며, “효소는 많은 공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확 번식이 되면서 다당류를 분해해 당화제가 활성화된다. 효모는 그걸 먹고 알코올을 내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때 공기가 많으면 효모는 알코올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물을 내뱉게 된다. 이 때문에 당화가 어느 정도 적당히 되면 밀폐를 해줘야 한다. 이 타이밍을 맞추고, 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기후 변동에도 많은 영향을 받기에, 발효주 자체를 온도 조절이 되는 것으로 바꾸고, 숙성실도 365일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맞췄다. 

그런데도 살아있는 생물을 다루다 보니 매번 똑같은 결과물을 낼 수 없는 게 우리네 전통주라고 한다. 

김은성 대표는 “화학적인 것을 가미하면 결과물을 쉽게 내겠지만, 우리는 절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며, “자연 그대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제조하는데 6개월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양조장이 생산성 등을 고민하며 최대한 출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걸 가장 쉽게 하는 곳이 대기업이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라도 대기업의 물량 공세에는 당해낼 수 없다”며, “그래서 중소기업은 제대로 된 우량의 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칙을 제대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우리 전통술의 진짜 가치는 제대로 우려내는 데서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인주점으로 24시간 운영…‘주류자판기’에 동네사람 발길

가양주작의 주력 상품은 전통 청주인 약주다. 특히 향이 좋아 여성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풍부한 과일 향이 특징이지만, 전통주 특성상 다양한 맛을 품고 있어 마시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김은성 대표는 몸 상태에 따라 과일 향이 나기도 하고, 치즈 향이 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인기가 높은 만큼 가양주작 매출의 70% 이상도 약주가 차지한다. 

작년 10월에 출시한 리큐르 역시 인기다. 김 대표에 따르면, 상압 방식의 증류주는 특유의 센 맛이 있고, 목 넘김이 힘들 정도로 독하고, 향도 좋지 않다. 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외국에서는 오크통 숙성을 몇십 년씩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한약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작년에 가양주작에서 출시한 리큐르 역시 전통방식 그대로 한약재를 넣어 도수를 낮추고, 목 넘김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특히 원재료 중 하나인 사삼 뿌리로 술을 숙성하면 부드러워지고 향긋해진다고 한다.

가양주작의 보물창고라고도 할 수 있는 숙성실에 들어가 보니, 초가을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임에도 마치 겨울 속으로 들어온 듯한 싸늘함이 느껴졌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기 위해 저온에서 술을 숙성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방이 황토로 돼 있는데, 이는 겨울 땅속과 똑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시에 황토는 건물이나 벽에서 나오는 잡다한 냄새가 술에 녹아들지 않도록 차단해 주는 역할도 해준다. 

김 대표는 “조선시대에는 가을에 추수한 쌀로 술을 담가 술독에 넣어 땅에 묻은 후, 겨울을 난 술을 최고의 술로 쳤다”며, “바로 이게 저온 장기 숙성주”라고 소개했다.

이런 전통주를 24시간 동네 사람이 맛볼 수 있도록 가양주작은 무인주점으로 운영한다. 2021년 자판기를 통한 술 판매가 허용되면서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오가는 손님들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외에도 가양주작의 전통주는 자사몰에서 만나볼 수 있고, 오마카세나 전통 한정식 등 고급 식당에서도 맛볼 수 있다. 

김은성 대표는 전통술은 ‘김치’처럼 잘 발효해서 즐길 수 있는 좋은 음식과 같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지향하는 술의 모습은 음식으로서의 술,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입안에 잔 맛이 안 남고 깔끔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음식을 먹을 때 음식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이런 술들에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막걸리를 예로 들면, 아스파탐 넣은 술, 아스파탐은 넣지 않았지만 숙성기간이 짧은 술, 숙성기간도 길고 좋은 재료를 넣은 술 등 이런 식으로 등급을 나누고 품평회도 따로 해야 한다”며, “해외처럼 좋은 술이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 구축에 일조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