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력의 ‘봉제 장인’과 한 땀 한 땀 만들어요”

입었을 때 ‘행복’한 옷, 지속 가능한 패션 …준호 윤상하 대표 

 

한때 봉제 기술자들로 활기가 넘쳐났던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지금은 골목마다 빌라들이 촘촘히 들어서며 소규모 공장들과 주거지역이 뒤섞여 독산동만의 정체성이 희석됐지만, 여전히 1990년대 한국 봉제산업을 이끌었던 흔적은 남아있다. 이곳 메인거리 한가운데에 브랜드 ‘도픈(DOUPWN)’의 옷을 생산하는 봉제공장이 그 증거다. 

준호의 윤상하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 앞서, 재봉틀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준호의 봉제공장을 소개하며 눈을 반짝였다. 봉제공장을 오래 운영했던 부모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봉제공장에서 미싱을 밟으며 놀았고, 실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 꼬마가 성장해 이제 회사를 설립하고,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가 됐다. 

윤 대표는 “이전에는 디자이너로서 기획, 생산, 판매의 단계까지 생각하는데 그쳤다면, 사업을 시작한 후부터 패션 디자인 프로세스 전반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근간인 봉제기술을 더 많은 세대에 알리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평범’한 건 싫다…유학 경험과 한국인 정체성 합쳐 브랜드 탄생 

윤상하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도로 건너가 10대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20대 초중반까지 보냈다. 그가 미국 같은 소위 공부하기 좋은 환경의 나라를 뿌리치고 인도를 선택한 데는 윤 대표의 성향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윤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걸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래 집단에서도 나는 항상 다른 친구들이 선호하지 않는 것을 골랐던 기억이 있다”며, “유학을 결정할 때도 명확하게 메리트가 있는 나라로 가고 싶었다. 인도만의 컬러풀하면서도 예쁜 색감, 독특한 옷에 끌렸고, 그들만의 다양한 문화를 접해보고 싶었다. 서치하면서도 앞으로 인도시장이 클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곳에서 인도의 장인들이 옷을 직접 짜고, 물건을 만드는 다양한 수작업을 보고 경험한 그는 이후 전문적으로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고, 현지에서 장인으로 이름을 떨친 교수에게 ‘한 땀 한 땀’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큰 패브릭에 섬세하게 손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했다. 그래서 전공도 맨즈웨어 수트를 했다”며, “면을 덧대서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안감 라이닝 작업을 하는 등 수트를 뜯어보면 그 안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윤 대표는 졸업생들에게 주어지는 특전인 구찌, 페라가모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인턴십 기회를 마다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2019년 브랜드 도픈을 론칭했다.    

윤상하 대표는 “대학을 마치면 무조건 한국으로 들어가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했다”며, “한국에 들어오기 전인 2017년도에 준호를 만들고, 이후에 메인 브랜드로 도픈을 오픈했다”고 말했다. 그러며, “도픈에는 이탈리아에서 배운 디테일적인 면과 섬세하게 옷의 핏을 잡는 포인트들, 그리고 인도에서 봤던 알록달록한 색감들과 손으로 작업하던 장인의 모습에서 느꼈던 부분들을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은 UP, 낭비는 DOWN…패스트 패션 아닌 ‘지속 가능한 옷’

메인 브랜드 라인인 도픈이라는 이름은 윤 대표의 이름인 상하(UP and DOWN)를 영문으로 재미있게 믹스(DOUPWN)해 만들었다. 네이밍의 또 다른 이유는 윤 대표의 관찰하는 버릇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는 “평소 사람들을 보는 걸 좋아한다. 패션을 전공했다 보니 좋은 의미에서 위, 아래로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옷을 입었는지 관찰하기를 즐긴다”며, “예쁜 옷을 입으면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듯이 도픈의 옷을 입었을 때도 고객이 그런 주목을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과 딱 맞는 착장을 했을 때, 마치 런웨이를 걷듯 사람들의 걸음걸이부터 달라지기 마련이다. 윤 대표 역시 사람들이 도픈의 옷을 입고 항상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표현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슬로건도 ‘꽃길만 걷자’로 지었다.

슬로건처럼 플라워 패턴을 디자인에 녹였는데, 트위드 옷감과 풀어내 고급스럽게 표현했다. 시그니처 제품 역시 오버사이즈 플라워패턴 재킷과 트위드 원피스다. 

실제로, 도픈의 옷을 입은 고객들은 ‘이 옷 예쁘다’, ‘이 옷 어디서 샀어?’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아 하루 종일 행복했다는 피드백이 많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홍대 거리를 걷던 윤 대표에게 한 외국인이 갑자기 다가와 ‘옷 어디서 샀어?’라고 물어 깜짝 놀랐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하지만, 윤 대표는 도픈이 예쁘고 특이한 디자인의 옷으로만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 장기적인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원단과 우수한 퀄리티가 기본이다. 

이를 위해 자체 공장에서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고, 디자인 역시 3in1 혹은 2in1 디자인을 추구한다. 재킷을 예로 들면, 밑단 부분을 떼어 버리면 숏 재킷이 되고, 허리를 스트링으로 묶으면 원피스 형태로도 입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 4월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로 뽑히기도 했다. 막강한 경쟁력을 뚫고 뽑힐 수 있었던 데는 ‘천연 염색’이라는 아이디어가 한몫했다. 

그는 “한국에 천연 염색하는 장인들이 참 많다. 그중 도픈의 방향과 잘 맞는 곳을 찾다가 제주도에서 천연 염색하는 젊은 여성 대표님과 협업했다”며, “홀치기 기법인 타이다이 기법을 젊게 풀어냈는데, 치자, 로그우드 등 꽃과 나뭇잎으로 꽃 모양을 내고, 핑크, 연노랑, 연보라 등 파스텔톤으로 색상을 구현했다”고 뿌듯해했다.

윤상하 대표는 “이를 계기로 도픈에서 지속 가능한 파트를 개설했다. 브랜드 이름이 내 이름인 상하에서 따온 것도 있지만, 낭비는 다운(DOWN), 디자인은 업(UP)이라는 뜻도 있다”며, “앞으로는 공장에서 나는 폐기물로 지속 가능한 패션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고객과 ‘꽃길’ 걸어요”…한국의 우수한 ‘봉제 기술’ 알리겠다

윤상하 대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봉제기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다. 

그는 “인도나 이탈리아에서는 메이킹(making)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직업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령의 사람들이 많이 한다. 이런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며, “봉제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스킬이라는 것을 젊은 친구들이 많이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상하 대표가 봉제기술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옷은 기계가 만들 수 없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작업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겠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탓이다. 그는 이런 사실을 알려 봉제공장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를 실현해 줄 아이디어 중 하나가 교육 프로그램과 커뮤니티다. ‘도픈 팩토리 커뮤니티 프로그램(가제)’을 만들어 고객과 함께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구상 중인데, 여기에는 독산동, 신림동의 공장과 재단실이 함께할 예정이다. 

윤 대표에 따르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보통 30~40년 이상의 봉제 경력을 지닌 전문가들로, 대기업에서 OEM 의뢰를 받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프리미엄 단계의 봉제 스킬을 가졌다. 

그는 “옷을 만드는 작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와서 기술자에게 팁을 얻어갈 수도 있고, 원단이 필요하다면 와서 가져가 함께 시너지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훗날에는 고객이 만든 옷으로 대회도 여는 등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봉제기술에 대해 알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윤 대표는 다양성에 대한 고민도 브랜드에 녹일 생각이다. 그가 타깃 분석을 한 결과, 주로 30~40대의 경제력이 있는 여성이 도픈의 옷을 구매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에 좀 더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다양성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10대부터 40대까지 각 한 명씩 고객을 모시고, 새롭게 디자인한 옷을 입어 봤는데 너무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행복해요’라며 활짝 웃는데 그 반응이 ‘찐’인거다. 그걸 보면서 10대부터 60대까지 누구나 우리 옷을 입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활짝 웃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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