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사과 부산물로 가죽을 만들고 싶어요.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한번 같이 해볼 수 없을까요?”
3년 전 ‘사과 가죽’을 만들기 위해 제조업체를 찾아간 ㈜에뜨모아 정혜승 대표가 공장의 대표에게 처음 건넸던 말이다. 제조공정도, 데이터도 없이 기존의 가죽 제품을 대체할 ‘사과 가죽’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찾아갔던 것이다.
당황스러움을 넘어 쌩뚱맞아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해당 공장은 기꺼이 ‘도전’에 동참해 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외부인에게 사과주스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서 전달하려면 은근히 번거롭고 불편한 상황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쿨하게 넘기며 함께 한 농장주 모두 에뜨모아의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사과 가죽업체인 ㈜에뜨모아코리아(ETMOA INC)는 개인의 의구심과 궁금함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청년의 집념과 도전 의식, 노련한 업계 사람들과의 협업 속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서울에서 경상북도까지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하며, 사과 농장과 공장을 다닌 수고의 결과물이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도움을 주신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더 잘돼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을 통해 이분들과 더 많은 상생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분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물성 ‘가죽’의 허와 실…‘사과’에서 해답을 찾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정혜승 대표는 가방과 신발 등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MD로 10년간 근무했다. 그러다 문득 가죽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았다고 한다.
정 대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됐는데, 예쁘고 실용성이 높은 가죽에 비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혀 예쁘지 않았다”며, “동물성 가죽이든 합성피혁이든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뿐만 아니라 가공 과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심각했다. 이뿐만 아니라 소가죽 영상을 보면서 동물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까지 폭넓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당시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정 대표는 ‘가죽을 대체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으로 관련 회사나 제품이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며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로 만든 가죽, 옥수수 비건 가죽 등에 대해 알게 됐고, 이탈리아의 한 업체가 사과로 가죽을 만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사계절 내내 먹는 사과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할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 중 하나다. 게다가 사과 안에는 섬유질이 많고 특히 셀룰로스(cellulose)가 풍부해 섬유화하기 최적의 재료라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이에 국내에도 사과로 만든 가죽업체가 있지 않을까 찾아봤지만 없었다고 한다. 해외 사례에서 희망을 본 정 대표는 가죽 대체 소재를 꼭 만들겠다는 생각에 창업을 준비했다고 한다.
해마다 버려지는 양만 7000톤…농가와 상생도 더해
일단 버려지는 사과 부산물이 필요했다. 정혜승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서 버려지는 사과 부산물만 1년에 7000톤이 넘는데, 현재 에뜨모아가 거래하고 있는 농장만 하더라도 업체당 1년에 몇톤씩 나올 정도니 통계보다 더 많은 양이 버려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혜승 대표는 “사과 농장에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과주스 등 사과로 뭔가를 만들고 난 후 남은 찌꺼기를 모아서 가져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공장을 오픈해야 하는 등 업체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불편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다 아이디어가 괜찮다며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업체가 있었고, 해당 업체에 수고비를 전달한 후, 사과 부산물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업체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실 사과 부산물은 퇴비나 소거름 등으로 쓰이지만, 워낙 양이 방대해 업체에서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농장과의 거래를 통해 정 대표는 부산물을 획득할 수 있고, 농장에서는 비용을 절약하며 쓰레기를 해결할 수 있어 상생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현재 에뜨모아가 거래하고 있는 농장은 두 군데이지만, 내년에는 다섯 군데로 늘어날 예정이다.
사과 부산물은 받았지만, 이를 가죽으로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국내 사례는 전무하고, 해외의 업체는 정보를 전혀 오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사과라는 과일이 달고 맛있지만, 다루기에는 까다로운 과일”이라며, “부드러운 부분만 있는 게 아니고 실, 씨앗, 꼭지 부분을 고려해 분쇄해야 하므로 분쇄 과정 자체가 무척 까다롭다”고 했다. 이어 “일단 분쇄한 사과로 가죽을 제조할 공장을 찾아야 하는데, 내 전공이 화학도, 섬유도 아니어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기조차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때마침 아이디어 하나로 중소벤처기업부의 경상북도 내 청년창업사관학교에 뽑혔던 정 대표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섬유 관련 사업을 하던 대표들과 만나며 조언을 듣고, 추천을 받아 공장을 찾을 수 있었다.
정 대표는 “처음에는 공장에서 너무 어렵다며 안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매일 찾아가다 보니 결국 공장의 사장님도 ‘도전’을 감내해 주시기로 했다”며, “만드는 과정을 아무도 몰랐으니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이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끝까지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주셨고 레시피도 다 만들어 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여기에 섬유개발원 등과 협업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사과가 변해가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고, 만들어가며 희망과 재미를 발견한 정 대표는 2023년 6월에 정식으로 법인명을 ECO TEXTILE MADE OF APPLE의 약자를 따 ‘에뜨모아’라 짓고, 회사를 세웠다.
‘애플 가죽’을 내놨더니 소비자부터 기업까지 ‘관심’
3년의 노력이 결실을 맺자 정혜승 대표는 ‘사과 가죽’의 시장성을 테스트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스마트스토어와 와디즈 펀딩을 통해 소비자의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정혜승 대표는 “사실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광고는 어떻게 하는지 방법조차 몰랐다. 그냥 시장성을 보고 싶어 무작정 완성된 가죽 원단만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올렸는데 가죽공방이나 사은품 개발에 목말라 있던 대기업에서 연락을 주기 시작했다”며,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거다. 검색어를 봤더니 비건 가죽, 친환경 가죽, 사과 가죽으로 검색해 타고 들어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2023년 초, 국내에 비건 가죽에 대한 붐이 한창 일어나던 시기와 맞닿았고, 이탈리아에서 비싸게 사과 가죽을 수입해 쓰던 업체에서 국내업체를 알아보던 중 에뜨모아를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원단보다 2~3배 더 저렴한 가격에 배송시간도 단축되다 보니 기업체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현재 사과 가죽으로 유명한 해외업체로 이탈리아와 중국의 업체를 꼽을 수 있는데, 에뜨모아는 해외업체와의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제품 내 사과 함유량과 제품 내구성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일례로, 에뜨모아의 경우 사과 함유량은 아이템별로 30~75%이지만, 중국의 업체는 35~6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을 살펴보면, 에뜨모아의 가죽은 이탈리아의 것보다 저렴하고, 중국보다 15% 정도 더 높다. 하지만, 제품 내구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원단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업체의 원단과 비교해도 내구성에서 절대 뒤지지 않았고, 중국 업체는 이미 시장에서 내구성에 대한 이슈가 있어 국내업체인 에뜨모아로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에뜨모아의 경우 내구성 테스트를 완료하고, 미국 농무부(USDA)의 인증서까지 받았다.
주문 제작으로 색상부터 텍스처, 가죽 두께, 유광·무광 등 세세한 부분까지 샘플링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에뜨모아의 강점이다. 그러다 보니 가방회사, 자동차 관련 업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현재 B2B 판매가 월등히 높은 편이지만, 일반 소비자의 반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반 소비자의 반응을 보고 싶어 무작정 노트북 가방을 만들어 와디즈에 내놨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구입해 주는 걸 보면서 정 대표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테스트용으로 만든 컵 받침대, 다이어리, 가방 등을 SNS에서 본 사람들이 ‘애플 가죽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신선하다’ 등의 피드백을 남겼고, 나이대도 MZ 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사과와 다른 친환경 소재와 엮어 제품 출시할 계획
작년 11월에는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WKBC)에 나가 해외기업의 높은 관심도 받았다. 에뜨모아는 이를 계기로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작년 하반기에 미국 법인을 설립했다.
정혜승 대표는 “국내보다 반응이 더 뜨거웠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LA에 있는 가방 및 의류업체, 소품 관련 회사, 도소매 업체들이 끊임없이 문의를 줬다”며, “이들이 하나같이 ‘이런 게 정말 필요했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미국의 소비자와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들은 것이 우리에게 큰 자산이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 대표는 사과로 할 수 있는 게 매우 많다며 기대감을 나타났다. 사과 부산물과 다른 친환경 소재와 엮어 좀 더 고도화된 상품들을 출시할 계획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 대표는 내년에는 새로운 제품을 제안할 수 있을 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나는 새 차를 못 탄다’, ‘새 집에 못 들어간다’, ‘새로운 가방 같은 걸 잘 못 든다’ 등 소비자의 목소리에서 친환경 제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한다. 이에 지금보다 더 고도화된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와 업체에 제공하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정혜승 대표는 “사과 가죽이 다른 가죽 제품보다 친환경적이지만, 사과 가죽 뒷면인 백업지는 아이템에 따라 재료를 달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이럴 땐 100% 리사이클 플라스틱 섬유를 활용한다”며, “앞으로는 제품을 더 고도화시켜 백업지까지도 생분해 소재를 써서 더 친환경적인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이를 통해 ‘에뜨모아는 진짜 친환경적인 가죽’을 만드는 회사로 인식되고 싶다. 또, 우리 직원 모두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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