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책을 빌리는 곳’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서관과 책방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본 거죠. 하지만, 도서관과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니즈는 달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의 취지를 살리고, 도서관 고유의 문화를 되찾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리버트리(LIBERTREE) 유제승 대표가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번 강조한 말이다. 리버트리는 도서 관련 데이터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서비스를 통해 책 분류에 상당한 시간을 쏟아야 했던 사서의 업무를 효율화시켰다. 또한,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신간, 간행물, 논문 등을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어 도서관 이용자는 방대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유제승 대표는 “요즘에는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신뢰하지 못하는 정보가 혼재돼 있다는 게 문제”라며, “사람들이 신뢰성 있는 지식을 도서관에서 손쉽게 검색하고,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이를 통해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 도서관으로 가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도서 관리업무를 하던 유제승 대표는 일찌감치 도서시스템의 문제점을 인지했다고 한다. 유 대표는 “해외 도서를 수입해 대학도서관에 판매하는 일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며, “갈 때마다 느꼈던 건데 사서 선생님들이 항상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는 거다. 우리가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책마다 청구기호를 붙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도서관마다 MARC(마크, 도서정리목록)라는 국제표준이 있는데, 책마다 이 표준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이 마크 안에는 60여가지의 정보를 넣어야 하고, 표준에 따라 001부터 999까지 태그를 나누고, 소수점 9자리까지 세세하게 구분된다. 각 국가의 중앙도서관마다 마크를 제작하는 팀이 있고, 마크 생성 후에는 전 세계의 도서관에 공유하게 된다.
문제는 매일 쏟아지는 모든 책을 중앙도서관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인도 출판하는 시대인 만큼 책의 양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마크를 생성할 때 유명하거나 베스트셀러, 수상작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전국의 도서관은 마크가 생성된 유명한 책 위주로 꽂아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도서관마다 같은 책을 갖고 있는 이유다. 유 대표는 이런 문제가 도서관의 독서율을 낮추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E-CIP, 리얼 타임 마크…도서관 문화를 기술로 변화시키다
유제승 대표는 사람들이 도서관의 근본적인 취지를 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역, 동네마다 도서관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정부가 지역 도서관을 만들 때 그 지역의 특성, 산업적, 직업적 특성에 맞는 도서관을 세우게끔 했다. 예를 들어, 이천이라면 ‘쌀에 대한 지식서들이 많은 곳’인 식이다”라며, “퇴색됐던 도서관의 취지를 되살리는 게 우리의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이에 리버트리가 개발한 서비스가 E-CIP(CATALOGING IN PUBLICATION)와 리얼 타임 마크(Real-time MARC)다.
E-CIP는 사서 업무지원 기능과 함께 도서관에서 소장한 도서의 책 이미지, 목차, 작가, 역자, 서평 등 상세정보와 더불어 책의 내용을 40페이지의 일체형으로 제공한다.
유 대표는 “책에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념의 ISBN이라는 전 세계 공통으로 적용되는 고유번호가 있다”며, “그동안 사서가 마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체크하고, 책을 자로 재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일일이 타이핑으로 쳐야 했다. 한 권당 30분 이상 걸렸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리버트리의 시스템을 이용하면 ISBN만 바코드로 찍으면 컴퓨터에 자동으로 입력된다. 따라서 기증도서나 추천도서 목록 등 긴 시간이 걸렸던 일들이 체크, 클릭, 결과보기 누르기만 하면 업로드된다”고 뿌듯해했다.
또한, 7개국 2200만종의 도서에 대한 정보를 카테고리화해서 공유하고, 국내외 방대한 서지정보를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도서관 이용자들은 희망도서를 신청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를 검색하면 한 개의 출판사, 특정 서점의 베스트셀러만 한정적으로 검색되던 것에서 확장된 것이다.
현재 E-CIP는 국회도서관·서울도서관 등 공공도서관 50군데, 군포시·금산군 등 자지체 5군데, 카이스트 등 대학교 도서관 125군데에서 사용하고 있다. 기술력도 인정받아 국내와 일본 특허를 비롯해 TTA GS 인증 1등급을 받았고, 지난 1월에는 CES에 참가해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우리 시스템을 이용하는 도서관 이용자라면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전국의 대학교 도서관 점유율이 66%에 이른다”며, “동네 도서관에서 논문을 찾기 힘든데, 우리는 1억1500만종의 논문을 무료로 검색하고, 다운로드 받아서 집에서 PDF로 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리얼 타임 마크는 E-CIP와 연동돼 사용되는 솔루션이다. 수동으로 만들었던 마크를 자동으로 생성해 주고, 마크가 존재하지 않는 최신간 도서에 대한 마크를 도서관별로 실시간 제공해 준다.
현재 리얼 타임 마크 솔루션은 한국·일본·미국·인도네시아에 특허 등록됐고, 유럽·인도·중국·러시아는 출원 중이다. 지난 9월에는 리버트리의 시스템에 관심을 보인 옥스포드 신학대학교 도서관(Library, Wycliffe Hall, University of Oxford)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유 대표는 내년 하반기에는 옥스포드에서 리버트리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개도국 도서관 디지털화…전세계 도서정보 격차 ‘ZERO’ 위해
리버트리의 꿈은 도서관의 취지를 되살려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도록 돕고, 더 나아가 개발도상국의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유제승 대표는 “제대로 완독하고, 책을 본 후 뭔가 느꼈다는 감정을 일깨워준 책은 누가 사준 책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책”이라며, “사람들이 도서관에 가서 스스로 책을 읽고 정보와 지식을 찾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뿐만 아니라 연구보고서, 논문, 국가 간행물 등 전문기관에서 나오는 정보들이 공공데이터에서 쉽게 검색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도서관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개발도상국 도서관의 디지털화에 힘써 세계인의 정보 격차를 줄이고 싶다는 꿈도 내비쳤다.
그는 “몇몇 국가에서는 디지털화가 안 돼 있어 아직도 카드 목록으로 책을 찾는다”며, “의약품을 나눠주듯 우리가 갖고 있는 시스템을 통해 디지털화시키고 E-CIP 서비스를 제공해 노트북 하나로 전 세계의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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