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주는 강력한 힘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 이날치, BTS 등 한국만이 가진 문화의 힘으로 국위 선양하는 이들이 늘고 있죠. 특히 국악에 대한 관심은 지대합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국악에 대해 열광하는지 몰라요.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악을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국악기를 다뤄온 잰이펙트(JENNIEFFECT) 김재은 대표가 가장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음악’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외국인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은 국악에 대해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갖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김재은 대표는 사람들의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한 방법은 ‘경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결국 ‘전통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전통악기를 한 번이라도 즐겼던 사람은 자기가 다뤘던 악기의 매력에 대해 알게 되고, 국악에 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된다”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악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우리는 전통 악기의 가공 방식은 살리면서 현대에 맞는 형태와 기능을 더하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전파하면서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통악기, 전공자 전유물 아냐…‘미니 가야금’으로 접근성 높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아쟁을 전공한 김재은 대표는 졸업 후, 공연기획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아무리 공연 기획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관련자 이외에는 공연에 관심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재은 대표는 “사람들에게 3년 내 국악 공연을 관람해 본 적 있는지 물었는데,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에 국악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전공자들에게 국악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물은 결과, 우연히 국악 공연을 보거나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소리가 너무 좋아 배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처럼 대중화된 악기로 친근함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2020년 6월 공연기획자에서 방향을 바꿔 잰이펙트를 설립한 김재은 대표는 사람들이 쉽게 전통악기에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그래서 그가 맨 처음 선택한 악기는 가야금이다.
우선, 소형화·경량화에 힘썼다. 12개의 줄을 8줄로 줄이고, 145cm, 22cm, 3cm 크기와 4kg에 달하는 전통 가야금을 50cm, 15cm, 4cm 크기에 무게 680g으로 확 줄였다. 기존 대비 67%의 콤팩트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조율 및 관리가 어려웠던 가야금을 쉽고, 간편한 악기로 인식해 연주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 대표는 “가야금은 그 자체가 통나무이기 때문에 집에 놔두면 짐짝 같은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다. 취미로 가야금을 연주했던 사람들이 1년 이상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좀 더 가볍게 들고 다니고, 집에서는 인테리어 소품처럼 놔뒀다가 누워서 혹은 앉아서 연주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개량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비싸고 민감해 연주하기 어려웠던 명주실 대신, 저렴하고 유지하기 쉬운 현악기 철줄을 사용했다. 그럼으로써 가야금 울림은 더욱 풍성해졌고, 줄 교체는 간편해졌다.
김 대표는 “전 세계에 있는 실이란 실은 모두 시도해 본 것 같다. 심지어 기타줄, 장난감줄, 낚싯줄까지 해봤다. 그러다 철줄이 소리가 가장 풍부하면서 지속음이 가장 길었다”고 소개했다.
이뿐만 아니라, 국악기 장인이 직접 오동나무와 밤나무로 만드는 등 전통 방식은 고수하면서도 코팅을 전혀 하지 않는 전통 가야금과 달리, 코팅을 4~5번 함으로써 수분에 취약하지 않도록 제작했다.
가야금에 코딩 접목해 재미 부여…‘숫자 악보’로 초보자도 쉽게
가야금을 활용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코딩 키트를 통해 수만 가지 전자음을 직접 조합해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전자 피아노, 신시사이저와 같은 기능을 가야금을 통해 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악보도 숫자로 제작해 직관적인 연주가 가능하게 했다. 아리랑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한번 듣고,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가야금 다루기가 쉬워진 것이다. 여기에 약 100개의 콘텐츠를 제공해 초보자도 쉽게 독학으로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가야금 이름도 ‘귀명창’이라는 뜻을 담아 ‘이어(EARS)’에 가야금의 약자인 ‘G’를 따서 ‘이어가(EAR:GA)’라고 지었다. 모두가 쉽게 가야금을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에서다.
이런 변화는 MZ 세대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2022년 11월 2주간 진행한 와디즈 펀딩에서 18분 만에 완판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당시 한대에 28만원~35만원의 가격대로 팔았는데, 2376만원을 달성했고, 이어 15대를 추가로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김재은 대표는 “구입한 소비자들에게 전화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가야금에 대한 소비 욕구는 있었지만, 어디서 배워야 하는지 모르거나, 주변에 학원이 있더라도 굳이 거기까지 가서 배우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미니멀한 사이즈와 유튜브, 줌 수업 등 온라인 클래스로 접근성을 높이고, 저렴하게 책정한 가격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니 가야금은 120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나무로 만드는 공법은 그 안에 매우 많은 공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에 김 대표는 가격을 내릴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몇억을 들여 여러 시제품을 시도한 결과, 소리에 대한 울림도 좋으면서 떨어뜨리거나 던져도 괜찮을 정도의 견고함을 자랑하는 PC(Polycarbonate,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만든 가야금을 개발했고, 곧 출시할 예정이다.
그는 “PC 소재로 만들면 현재 미니 가야금의 1/5 정도의 가격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다이소에 리코더, 탬버린 등을 팔듯이 우리 전통악기도 가볍게 소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써봤는데 좋으면 나무 가야금으로 넘어오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업과 팝업 공연으로 일상에 스며들도록…K-전통 알리기도
잰이펙트는 미니 가야금으로 원데이클래스를 비롯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우리동네키움센터와 도서관 등에서 수업하며 전통 악기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요즘에는 학생 한 사람당 한 악기는 무조건 배우도록 지원을 해주는 학교가 느는 추세여서 우리가 올린 유튜브 영상이나 레슨을 통해 학교에서 꾸준히 연락이 오는 편”이라며, “전통음악과 IT가 경합한 융합형 예술 체험교육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좋다. 특히 K-팝과 교과서 속 민요 등을 함께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재미있어한다”고 뿌듯해했다.
‘가야금 구독 서비스’도 선보였다. 120만원을 투자해 한 번에 몇십 대의 미니 가야금을 구입하기 힘든 학교의 상황을 배려한 것이다.
이런 교육 프로그램은 졸업 후 공연을 기다리는 전공자들에게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특히, 예술가 중에서 출산 등의 이유로 경력이 단절된 경우, 외부에서는 감각이 무뎌질 거라고 오인해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고, 본인도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런 경력 단절자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작년 이맘때는 약과 브랜드와 함께 ‘더현대 서울’에서 전시와 공연을 한데 묶은 팝업 공연을 진행해 일반인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했던 은평구에서 앙코르 제의가 들어오는 등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김재은 대표의 다음 목표는 해외에 잰이펙트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한국어교원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그는 “악기를 테마로 한국어를 가르치면 언어와 우리 문화를 동시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해외의 한국문화원에서 잰이펙트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 배경에는 외국인들이 국악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것을 김 대표가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성균관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을 때 K-한류 동호회를 만들어 해외에서 활동하거나, 두바이 등 여러 K-한류 행사에서 외국인들이 가야금을 보고 하프 느낌이 난다며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은 ‘에어비앤비 트립’같은 체험 중심 여행 플랫폼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등 K-국악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데도 국악을 엄청나게 사랑해 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국악은 재미없다’는 편견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루한 부분에 퉁소, 단소의 삐리리~ 소리가 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국악에 대해 편향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라며, “최근 국악진흥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는데, 이를 통해 조금 더 폭넓게 국악을 알릴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런 뜻에서 김재은 대표는 국악에 뜻있는 친구들과 함께 ‘국악 돕기 서포터즈’라는 펀딩을 만들 계획이다.
김 대표는 “졸업 연주를 비롯해 국악 공연이 많이 열리고 있는데 다들 초대권으로만 돌리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입장권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서포터즈 친구들에게 초대권을 나눠줄 예정”이라며, “공연 후에는 전공생들과의 대화 등 프로그램을 기획해 많은 사람이 국악을 즐길 수 있도록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악 캐릭터 등 IP도 만들어 티셔츠나 공연 티켓 다이어리 등을 제작할 것”이라며, “이런 활동을 통해 잰이펙트가 국악의 대중화와 인식 개선에 많은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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