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유학이나 취업을 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일례로, 2021년도부터 외국인 유학생의 숫자가 해외로 나가는 우리나라 유학생의 수를 앞지르기 시작했거든요. 2024년도에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숫자가 70% 정도 더 많았습니다. 3년 전부터 역전되기 시작한 격차가 확 벌어진 거죠.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겁니다.”
외국인 유학생과 취업자를 대상으로 TOPIK(한국어능력시험) 모의고사와 합격을 위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메이든보이지(maiden voyage) 이원희 대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국내 교육시장이 성인 취업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고, 내국인 근로자 구인난 역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유학생 및 취업자’ 시장 선점은 학원계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이 됐다.
이원희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수능 특화시장과 고시 전문시장 등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사교육 시장은 거대한 과점 시장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시험 분야에서 국내 시장을 선점하고, 더 나아가 해외 진출도 도모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림동 고시촌 정보서비스 앱’의 성공적 엑시트…“다음은 외국인”
한때 우리나라에 공무원 바람이 불던 시기, 이원희 대표 역시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눈’과 ‘촉’만은 평범하지 않았다. 2년6개월 동안 고시촌에 있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개선할 방법을 고심하다 한 앱을 개발했고, 고시생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엑시트(Exit)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신림동 고시촌 내의 중고 거래 앱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고시생 중고 거래, 중고 헌책방의 책값 정보, 식권 거래 및 해당 식당의 일일 메뉴 등 각종 정보는 물론, 수다방 등의 기능을 제공했다”며, “이미 신림동에서는 우리 앱이 입소문이 났고, 메이저 고시 전문학원 경영진의 눈에도 띄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이원희 대표는 해당 고시 전문학원에서 마케팅총괄팀장으로 4년간 근무하며 언택트 전국 모의고사 서비스 론칭 및 온라인 논술 첨삭반 등을 운영하며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이후 지역적 기반의 전통적인 고시학원의 생존 경쟁력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외국인 대상의 서비스를 기획했지만, 실행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그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데는 이유가 있다. 외국인들의 유학과 취업에 대한 니즈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한국의 대학교와 기업의 니즈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시험이 토픽이다.
토픽은 토픽Ⅰ, Ⅱ로 나뉘는데, 한국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시험은 중급시험에 해당하는 토픽Ⅱ이고, 이 중에서 사실상 효력이 있는 등급은 3급 이상이다. 보통 대학교 입학 과정에서는 3급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4급이 필요하고, 대학원은 5급, 기업체에서는 6급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3급을 맞기 위해서는 300점 만점에 120점 이상을 맞춰야 하는데, 이는 제로 베이스에서 약 6개월~1년은 공부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6급은 한국에 거주하는 유명 외국인 중 ‘타일러’ 씨처럼 말하고, 쓰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취업비자에서도 토픽은 필수적이다. 공장, 건설 현장, 조선소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E9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비숙련 노동자들의 비자 기한은 4년10개월로,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토픽 시험을 쳐서 3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토픽은 한국인조차도 낯설어할 수 있는 소재의 문제가 출제되기때문에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다. 기출문제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집필한 임원경제지에 관한 내용 혹은 조선 후기 정조가 안경을 썼을 때의 유교 예법에 대한 이야기 등이 나온다. 시험 유형은 듣기, 읽기, 쓰기로 구성돼 있고, 각 100점이 만점이다. 쓰기 시험 중 논술 두 문제가 80점을 차지하는데, 각각 원고지 1000자 분량을 손으로 써서 제출해야 한다.
스펙이 된 ‘한국어’…정확도와 실전 유사성으로 시험 ‘오차’ 없애
2022년 7월 메이든보이지를 설립한 이원희 대표는 2024년 1월에 본격적으로 모의고사와 모의고사 파생상품으로 이뤄진 서비스를 론칭했다. 특히, 이 대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은 막강한 ‘콘텐츠’다.
이 대표는 “실전과 얼마나 유사하게 문제를 만들어내는지가 관건이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인 논술에서 막강한 파워가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논술은 문제를 잘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채점의 정확도가 중요하다. 채점에는 정량 채점과 정성 채점이 있는데, 실전에서는 사람이 채점하기 때문에 소위 ‘인정머리 점수’라는 게 존재한다. 이 인정머리 점수를 얼마나 잘 반영해 주느냐가 채점에 대한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토픽 시장이 커지면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다들 좌절하는 이유가 논술평가에 대한 정확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개발자 출신은 인정머리 점수를 둬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원희 대표는 현재 채점을 휴먼터치로 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인공지능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개발 기획은 끝내놓은 상태이고, 지금은 모수 확보를 해나가고 있는 단계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스킬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시험을 치는 것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메이든보이지는 전직 토픽 출제위원들이 참여해 문제를 만들고, 논술 채점도 전직 토픽 논술 채점 위원들이 진행한다. 듣기 평가는 현직 토픽 성우들을 섭외해 실제 시험과 같은 목소리, 억양의 조건에서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했다.
모의고사에 기반한 파생상품도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가 ‘토픽 중급 합격 보장반’ 등 인텐시브(intensive) 교육과정이다. 신림동과 노량진 고시촌의 ‘합격 보장 스파르타’ 방식을 차용한 시스템으로 한 달 코스, 두 달 코스, 6개월 코스 등으로 운영하며 합격 100%를 위한 하드 트레이닝을 시킨다. 또, 모든 문제에 한국어 해설을 비롯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러시아어 등의 다국어 번역 해설을 제공한다.
현장감을 위해 OMR 카드와 컴퓨터용 사인펜까지 동봉해 보낸다. 외국인 학생 중에 OMR 카드를 작성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익숙해지도록 해야 하고, 이에 따른 시간 분배 연습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B2C 서비스 개시…“글로벌 ‘취업 스펙 서비스’로 확장할 것”
메이든보이지는 현재 국내의 유수 대학들과 B2B 계약을 맺고, 토픽 모의고사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교육부가 외국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토픽을 통해 평가를 하는데, 일정 지표에 달성하지 못하면 비자 발급 제한 대학으로 지정돼 외국인 유치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세워 B2C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토픽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의 대다수가 아시아 국적자로 중국, 베트남, 일본, 대만 순으로 많은데, 이에 착안해 2024년 초, 중국 상하이에 법인 설립을 완료했고, 같은 해 9월부터 합격 보장반 등 B2C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중국의 국유기업인 CIIC와 사전 어학연수 온라인 서비스 제공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 강의 납품시기 등을 의논 중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종이로 푸는 모의고사를 현지에서 실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즉, 모의고사 응시는 현장에서 종이 시험지로 치고, 해설 및 복습은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중국 이외에 베트남에도 동영상 강의를 납품하고 있다.
이원희 대표는 향후에는 토픽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공인 언어 시험에도 대응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보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메이든보이지가 회사에 ‘K’, ‘한류’를 붙이지 않는 이유다. 그는 ‘한류’의 영향 없이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노동인구의 감소는 비단 한국만 겪는 일은 아니다. 인구 감소에 직면한 모든 선진국이 겪는 문제다. 이는 인구 폭증에 직면한 개발도상국들은 인구의 이동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며, “이런 노동 전이 과정에서 진입 장벽이 되는 것은 언어이고, 각 나라는 공인 어학 시험의 형태로 외국인에게 자격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며 “굳이 한국어에만 국한 지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토픽 서비스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해외 현지에 저변을 닦고, 외국 청년층에서 인기가 좋은 한국, 일본, 영어권 국가 중 그들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대비할 수 있는 서비스로 나아갈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오는 모든 외국인이 메이든보이지를 알게 하고, 우리를 거쳐야만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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