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명품 셀러가 될 수 있는 생태계 구축할 것”

‘명품’ 유통시장의 디지털화…㈜서플라이디 이응천 대표 

 

전 세계에서 한 해 500조원 이상의 매출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명품시장은 역사와 전통, 희소성을 가치로 내세우며 세계 패션 트랜드를 주도해 왔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유통구조로 인해 접근성과 소싱의 난이도가 높다는 단점이 항상 제기돼 왔고, 이는 ‘거래사기’, ‘가품’과 같은 어두운 이면이 공존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서울시 강남구의 오피스에서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서플라이디(SUPPLY’D) 이응천 대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몇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아날로그 방식의 유통구조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바꿀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는 소비자에게는 명품 유통의 신뢰성을, 바이어에는 시장 접근성과 적합성을 높여 안정적인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은 대중화되고 있는데, 왜 유통구조 그대로일까”

섬유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이 대표는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이 디자인에 대한 재능보다는 패션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에 더 많은 관심과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에 대학 졸업 후 독일, 미국, 한국에서 바잉MD로 12년간 활동하며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특히 그가 눈여겨 본 곳은 소규모 부티크(Boutique)와 바이어다. 

부티크의 역사는 16C 파리 패션의 태동과 함께 탄생했는데, 전 세계 명품 유통의 53%는 병행 유통으로, 전부 1차 벤더인 부티크를 통해 이뤄진다. 문제는 부티크가 16~18C 오트 쿠튀르(맞춤 의복)를 제공하던 곳이다 보니 대부분 전통적인 영업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나마 최근 생겨나고 있는 기업형 부티크는 전문 CEO를 영입하고 IT팀을 운영하며 시스템화하고 있는 초기 단계에 있지만, 1차 벤더인 부티크의 경우에는 가업을 잇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조부모가 하던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 방식의 문제점은 폐쇄적인 거래 환경으로 정보의 비대칭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명품 중개 에이전트에 의존하는 구조이다 보니 소진율과 마진율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이어는 에이전트 거래 성사에 따라 소싱력이 결정되기 때문에 주문 조건이 제한되고, 재고에 대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이응천 대표는 시장의 디지털 전환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상품 데이터베이스(DB)를 디지털화하면, 부티크는 신규 바이어 확보에 유리하고, 바이어는 디지털 바잉을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어 구매와 판매에 적합한 환경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 DB를 시장에 유통하면 셀러를 통해 구매가 일어난 상품만 유통할 수 있어 재고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이응천 대표는 “명품을 유통하는 부티크가 전 세계적으로 2000개 정도 있는데, 한 곳의 부티크에서 적게는 50개의 브랜드에서, 많게는 600개의 브랜드를 유통한다”며, “이탈리아만 놓고 봤을 때도 데이터베이스를 제대로 구성하고 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20%도 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상품 DB 차별성으로 명품 유통 효율화를 구축하다

이 대표는 부티크와 셀러를 디지털로 연결해 주는 ‘디지털 에이전트’가 되겠다는 목표로 2018년 3월 서플라이디를 설립했다. 각 부티크의 데이터를 모아 디지털화하고 판매에 적합하게 만들어 상품과 함께 바이어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엔드유저인 고객에게 배송하는 역할까지 한다. 즉, B2B2C(Business to Business to Consumer)의 사업 형태인 셈이다.

이를 위해 ‘SKU 머징 기술’을 개발해 2021년 11월 특허등록을 완료했다. SKU는 제품을 구별하는 품번인데, 머징 기술을 도입하면 여러 부티크마다 흩어져 있던 동일 상품의 품번을 합칠 수 있다. 

이응천 대표는 “기존에는 단순히 엑셀이나 사이트에 있는 리스트를 바이어에게 전달해 주문을 받는 형태에서 그쳤었다. 하지만, A 브랜드의 a 상품은 한 곳의 부티크에서만 파는 게 아니고, 여러 부티크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바이어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가중됐었다”며, “우리는 중복 데이터를 하나로 합쳐 유통에 적합한 형태의 데이터를 바이어에게 공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바이어가 몰린 동시주문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의 경우 부티크마다 5% 정도씩 원가가 차이 나는데, 주문 수량이 들어오면 가장 저렴한 것부터 출고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며, “바이어들이 브랜드명, 수량 많은 순, 최근 상품, 카테고리별로 볼 수 있고, 마진율도 쉽게 계산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바이어들이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n잡러 ‘셀러’ 환영…“글로벌 디지털 유통기업 될 것”

서플라이디의 주요 타깃은 소규모 온라인 셀러다. SNS 채널을 통해 소규모 셀러들의 시장이 커지면서 투잡, 쓰리잡을 하는 개인 셀러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시장에 대해 도전적으로 진입하고, 의사결정도 빠르다. 이는 해외의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국내에 빠르게 소개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이 대표는 “셀러들이 물건을 소량 수입할 때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물류비용이다.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사가 허브 역할을 하고 있어 그런 걱정을 덜었다”며, “1~2월부터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셀러 80명을 우선 모집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셀러로부터 평균 하루에 하나씩 주문을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매출 147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소규모 부티크도 서플라이디의 주요 고객이다. 부티크는 서플라이디 시스템을 통해 제품과 재고를 좀 더 편하게 관리할 수 있고, 서플라이디는 이를 통해 부티크의 재고 현황을 100% 파악할 수 있어 서로 윈윈 관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수과정도 꼼꼼히 거친다. 유독 제품 퀄리티에 대한 눈높이가 높은 한국인의 니즈에 맞춰 배송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육안으로 검수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이응천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오더가 발생하면 24시간 이내에 제품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지사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검수하면서 고화질 사진으로 남겨둔다”며, “이는 셀러 보호차원에서도 거쳐야 하는 절차다. 일부 고객의 경우 단순 변심의 이유로 반품하고 싶을 때, 반품 비용을 내기 싫어 일부러 훼손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응천 대표는 전문가들만 접근했던 유통산업이 지금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시장으로 바뀌었고, 명품 시장 역시 이런 형태로 바뀔 거라고 했다. 이에 초기 시장을 선점해 해외로 진출하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그는 “명품 유통의 좋은 예시를 보여주는 기업이 되고 싶다. 이를 통해 글로벌 유통 수익을 만들어 내는 유통 브랜드로서 나아갈 것”이라며, “각국의 셀러들이 우리 시스템을 잘 이용하면 좋겠다. 그래서 판매자가 명품을 판매할 때 ‘서플라이디가 유통한 상품’이라는 자부심이 생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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