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몇만건의 건물이 각종 리모델링으로 새로 지어지고, 철거를 반복하며 도시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건축물에 ‘그린’을 씌우는 일이다. 건설산업에서 배출되는 탄소 비율이 꽤 크기 때문이다. 건축물 전 과정 평가(life-cycle assessment)‘를 기준으로, 건물이 차지하는 탄소배출량은 약 38%다. 이 중 절반은 건물 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로부터, 나머지 절반은 건물을 지을 때 나온다. 즉, 전체 탄소배출량의 약 19%가 건물을 짓는 과정 그리고, 건축 재료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약 50년 후, 건축물을 철거할 때 나오는 탄소배출량도 고려해야 한다.
제스트(ZEST, Zero Emission Smart Technology)는 이런 건설산업의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4월 탄생했다. 이름 그대로 ‘IT 기술로 친환경 건설산업을 완성하겠다’는 미션을 내걸었다.
제스트 정호건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친환경 자재를 쉽게 고르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접근성을 개선하고, 녹색건축 전 과정 평가 프로그램을 통해 건설자재, 토목 구조물 등의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건설사들의 노동력과 업무 원가를 줄여주고자 한다”며, “최근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시장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고, 반대로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건설사들도 많은데, 이들을 위한 건설 자재 등의 정보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린’ 더하면 가치도 오를텐데…현장에서 마주한 어려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뒤, 건축공학 석사와 도시공학 박사과정을 거친 정호건 대표는 평생 ‘건축’ 관련업에 종사한 ‘건축쟁이’다. 단, 그의 초점은 처음부터 ‘그린’에 맞춰졌다. 석사 시절 개발한 부동산 서비스가 그 시작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 부동산 서비스로는 직방이 유일했던 때고, 네이버에도 관리비 정보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에 우리는 ‘녹색’을 메인 테마로 잡고, 크롤링으로 1000여개 아파트 단지의 10년치 관리비 상세내역을 분석했다. 이를 기반으로 관리비를 낮출 수 있는 인테리어 법을 컨설팅해 주고, 관련 업체를 연결해 주고자 했다”며. 당시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하지만, 사업으로는 연결이 안 됐다고 한다. 그때 모았던 아파트 매물과 인테리어 사업자들의 정보를 활용할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친구 신혼집의 리모델링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업에 발을 들이게 됐다. 단독주택 철거까지 관할하는 등 사업은 커졌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4년간 해오던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정 대표는 “근처에서 다른 업체가 진행하던 리모델링 철거 작업 중 건물이 무너지며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규제가 잘 정립돼 있지 않아 제도적으로 느슨했던 터라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잦았다”며, “당시 그 사고를 보면서 철거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시공일을 정리하게 됐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그가 깨달은 점은 ‘녹색 건축’에 대한 실질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2019년 ‘녹색 건축 컨설팅’을 통해 설계사무소와 시공사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오래된 집을 철거하다 보면 단열재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집에 단열 시공을 제대로 해주면 외풍은 없고 에너지는 절약할 수 있어 집의 부동산 가치까지 올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호건 대표가 컨설팅업을 하며 현장에서 깨달은 점은 ‘생각보다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컴퓨터보다는 경험에 의한 판단이 더 강했던 탓에 효율적인 결정이 부족했고, 그 과정에서 현장의 애로사항과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이에 정 대표는 이들을 위한 ‘IT 서비스’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제스트를 설립하게 된 배경이 됐다.
‘깜깜이’ 건설 자재 시장…“‘데이터’ 없이는 ‘녹색’도 없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의 시발점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진 정호건 대표는 ‘도대체 어디가 문제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해답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에 의존해 일을 하는 건설사를 위한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정호건 대표는 “건설사 30위만 되더라도 매출 규모 면에서 엄청 큰 회사인데, 30위부터는 IT 전환이 잘 안돼 있었다. 일례로 현장에서는 아직도 출력본으로 왔다 갔다하고, 자재 견적도 팩스로 받는다”며, “자재 유통구조도 꽤 복잡하고 투명하지 않아 중간에 떼먹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자재비 변동 폭이 커서 공사비는 자꾸만 오르는데 중소기업은 이런 상황에 잘 대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린 건축’의 실현은 건물을 지을 때부터 시작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건설 자재’의 효율적인 관리가 필수인데, 단가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파는지조차 제대로 공개가 잘 안돼 있었다. 자재 공장이나 대리점의 정보도 없을뿐더러, 힘들게 A라는 제품을 찾았다 하더라도 어떤 공장에 있다는 것까지만 알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정보가 막힌 일도 허다했다. 이런 상황은 건설사의 노동력과 시간을 과도하게 뺐을 뿐만 아니라, 건설업의 불신만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호건 대표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유럽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관련 스타트업이 등장해 유니콘이 됐을 정도로 초기 시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온라인으로 자재를 유통하기 위해 시도했던 스타트업들이 꽤 있었다. 국내 공사비 규모만 한 해 160조원이고, 자재만 80조원 정도 되는 시장인 만큼 매출 구조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스타트업이 1~2년 후에 접고 나갔는데 이유는 건설업의 특성인 복잡한 물류 변동 폭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에 제스트는 우선 ‘자재 데이터 정리’부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원래 해왔던 ‘친환경 자재’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나라에서 친환경 자재로 분류되는 것만 13만종이고, 매달 1000여개씩 업데이트될 정도로 변동성이 큰 부분이어서 애로사항이 많이 발생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제스트는 일단 13만종에 대한 데이터를 모두 업로드했다. 그리고, 각 자재를 클릭하면 세부 설명부터 친환경 관련 인증서류, 품질 관련 서류, 물질안전보건자료 등 관련 문서까지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가장 필요하고, 최적화된 자재로 주문, 발주를 넣고, 새로운 소싱처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 이와 함께 탄소배출량 관련 정보도 넣어 건물 단위로 환경영향평가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소 건설사들 ‘환영’…“국내외 건설회사로 확장할 것”
제스트의 솔루션은 특히 50~200위 사이의 건설사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 건설사는 규모가 큰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관련 규제는 많이 받지만, 제대로 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지 않고 IT 전환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과 공감대 형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술 커뮤니티의 공무 담당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제스트의 솔루션이 활용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제스트가 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환경부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일일이 찾아봐야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편리하기 때문에 노동력이 감소되는 효과가 탁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환경부도 제스트의 이런 솔루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의 시스템과 맞물려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의견이 있어 올 한해는 이런 부분도 적극적으로 반영해 공공의 기능성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제스트의 향후 발걸음은 세계 시장을 향해 있다. 정호건 대표는 “바닥면적 합계가 1000평(약 3305㎡) 이상인 신축 건물은 전 과정 평가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아직 선택사항이지만, 미국 캘리포니아는 작년부터 의무화됐다. 이것만 보더라도 앞으로 녹색건축 인증에 대한 사항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최근의 건설산업은 국내외를 따지지 않는다. 우리 건설회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가기도 하고, 외국의 건설사나 건축사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 자재와 관련해 언어에 대한 한계도 분명히 생길 것이고, 각 지역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 입수에 대한 애로사항도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런 기업들에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중소 건설사뿐만 아니라 대기업에도 큰 밸류를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처럼 자재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부터 미국처럼 소비하는 선진국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로벌한 자재 데이터를 소싱하고, 환경영향을 평가함으로써 실제로 발주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스트의 목표인데, 1차 타깃은 인도네시아다. 신수도 이전 프로젝트를 계획 중인 인도네시아의 건설산업 자체가 확장될 것은 자명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활동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도네시아의 자재 정보와 발주 정보를 제공해 주면서 해당 국가의 건축법과 관련된 부분까지도 해결해 줄 방침이다.
정호건 대표는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건물의 전 과정 관점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솔루션을 계속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 IT 전환이 필수적인 건설산업에 필요한 데이터를 잘 제공하고, 이를 지속해서 업데이트함으로써 건설산업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탤 것이다. 또, 훗날에는 AI 기반의 자동화 구현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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