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에 디자인·감성 녹여 지속 가능한 생명을

업사이클 디자인 브랜드…㈜하이사이클 김미경 대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을 통해 별것도 아닌 사물, 너무 가까이에 있어 차마 몰라봤던 사물의 존재에 대해 상기시키고자 했다. ㈜하이사이클(H!cycle) 김미경 대표는 일찌감치 이런 ‘풀꽃’의 소중함을 알아차렸다. 서양화와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중국 미술이 한창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시기에 상하이에서 예술경영 석사를 취득했고, 이후 현지에서 전시회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값 비싸고 화려한 현대미술을 다루는 미술 경매시장을 몸소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 미술품이 오고 갔던 현장에서 오히려 그의 마음을 움직인 분야는 ‘공공미술’이었다고 한다. 기성 사물이 가지고 있던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오브제 아트에 관심이 많았는데, 공공미술 현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스토리가 다르게 해석되며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지점이 꽤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공공미술은 공간 업사이클’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며 본격적으로 업사이클 관련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2013년 소셜벤처로 시작해 오늘의 하이사이클을 이끌고 있다.  

 

책임이 따르는 소비…커피 자루·호텔 린넨에 숨결 불어넣다

 

김미경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술에서도 사회적인 기능, 치유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제까지 내가 해 온 모든 활동을 통합해 더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버려지는 소재를 발견해 각자의 특성에 맞는 디자인을 담아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 윤리적인 소비문화와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확산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처음 관심을 가진 소재는 커피 자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는 만큼 세계 평균치를 웃돌 정도로 많은 커피가 소비되고 있고, 로스팅 기술은 수출할 정도로 발전해 국민이 소비하는 이상의 커피를 공장에서 로스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엄청난 양의 커피 자루가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산지별로 스토리가 담겨있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디자인적으로 매력적이라는 점도 그의 관심을 끄는 데 한 몫 했다. 

 

김 대표는 “커피 자루의 원단은 황마 줄기라는 식물성 섬유로 만들어져 친환경적일뿐 아니라, 통풍성과 내구성, 항균성, 내수성이 우수하다. 천연의 색감 자체도 인간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며, “패턴 역시 유니크한데, 어떤 농장에서, 어떤 농부가, 어떤 방식으로 수확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이력이 담겨 있다. 이런 패턴이 커피 산지별로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생두가 담겨있던 자루는 대부분 폐기돼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재활용할 수 없는 자루도 많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운송 과정에서 갈고리로 찍은 다음 찢어서 생두를 쏟거나, 대각선으로 찢어놓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하이사이클은 이런 자루를 제외한 뒤 1차 분류된 자루만 로스팅 공장에서 받았는데도, 월평균 두세 팔레트(Pallet)를 받는다고 한다. 한 팔레트에는 커피 자루 800장 정도가 들어간다. 

 

커피 자루를 만드는 과정 역시 녹록지 않았다. 자루마다 조직이 다르고, 색상도 여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재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상품의 퀄리티와 작업성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특히 자루에 남아있는 커피콩을 모두 털어낸 뒤, 해체 후 1차 세척을 하고, 건조를 해야 한다. 이후 디자인에 따라 가공과 건조 과정을 달리해야 한다. 이에 하이사이클은 커피 자루를 분류해 원단화 과정을 개발했고, 특허까지 받았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하이사이클은 커피 자루 원단으로 제품을 만들 때 아이템과 수량에 따라 협력 공장에서 OEM으로 생산하기도 하고, 지역 시니어클럽의 어르신들과 수제로 제작하기도 하는 등 유연한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김미경 대표는 “처음에는 사업체를 서울시 관악구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관악구 시니어클럽의 어르신들과 협업했는데, 함께 손발을 맞추다 보니 어르신들과 관련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해당 시니어클럽에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창출함으로써 상생의 의미도 다질 수 있었다. 지금 20여분의 어르신이 일하고 있는데, 이 중 2013년도부터 계속 일하고 있는 어르신만 다섯분”이라고 뿌듯해했다.

 

이후 하이사이클은 호텔 린넨을 소재로 한 제품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업사이클 기업으로 업계에 입소문이 빠르게 나면서 재고 의류에 대한 캠페인 활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교육활동도 펼쳐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양의 호텔 린넨 역시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김미경 대표는 “호텔의 수많은 고급 소재들은 리뉴얼 과정을 거치면서 폐기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소재가 침구류였다. 특히 5성급 호텔의 침구는 고밀도 순면 원단이나 고급 자카드 원단도 많이 사용된다”며, “이전에 사용됐던 원단이지만, 화학 섬유나 새 옷에 민감한 사람 혹은 아이들의 피부질환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고급 소재가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호텔 린넨 소재로 제품을 만들면서 ‘다시 호텔로 돌려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이에 브랜드 콘셉트를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지속 가능한 생활’로 잡고 반려동물 동반 출입이 가능한 호텔을 타깃으로 했다. 이 중에서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세트로 입는 나이트가운, 드라이 타월, 쿠션 베드 등이 인기가 좋다고 한다. 

 

시간의 흔적은 역사이자 삶의 스토리…문화유산을 담아내다

 

김 대표는 제품을 가공 및 생산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공간 확보를 위해 2021년도부터 약 1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충남 부여에 하이사이클 원단 공장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사실은 아름다운 백제 문화의 도시로 알려진 이곳이 수해와 폭설, 산불 등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환경 재해로 인해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며, “문화유산을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하고 볼 수 있도록 상품으로 만들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마음에 백제 문화유산 이야기가 담긴 제품을 작년에 선보였다”고 말했다.

 

일례로, 무령왕릉의 벽돌 무늬 패턴과 백제 왕실을 상징하는 봉황을 디자인에 입히거나, 무령왕릉을 지켜낸 상상의 동물로 왕릉의 마스코트 같은 역할을 하는 진묘수를 미니백에 입혔다. 김 대표는 ‘가방 안의 소품을 지켜주는 존재’로서의 의미와 함께 ‘백제 무령왕릉’의 스토리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 장치라고 부연 설명했다.

 

생활 소품에 환경적인 가치를 입힌 하이사이클의 제품은 나이를 불문하고 소비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김미경 대표는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20~30대 연령층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40~50대의 구매율이 엄청 높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층의 유입도 확 늘었다”며, “4050은 황마 소재의 자연적인 느낌을, 2030은 미니백과 같은 귀여운 소품을 좋아한다. 이 외에 B2B 거래도 늘었는데, 커피 브랜드에서 굿즈 상품으로 판매하거나 회사 판촉물, 공방 등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온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아시아 넘버원 업사이클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어려운 시기도 오기 마련이라 현실적인 문제로 움츠러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 자루 소재로 가장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온 기업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았다”며, “작년까지 업사이클 디자인 협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있으면서 업사이클 활동을 하다가 폐업하는 곳을 많이 봤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소재와 아이템을 개발해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는 기업으로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