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하는 거예요? 국악이에요? 배울 수 있나요?”
2021년 7월, 서울의 한 교육 박람회에 참가했던 ㈜아트라컴퍼니(ARTRA COMPANY) 김보은 대표가 행사장을 찾았던 어머니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가야금 체험존에서 ‘엄마도 한번 해볼까?’라며 아이만큼 엄마가 더 신나 하는 모습에, ‘아! 이거 되겠구나’라는 희망을 봤다고 한다. 동시에, 국악이 대중화되려면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고, 쉬운 콘텐츠로 노출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고 한다.
김보은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라이온킹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아이는 성인이 돼서도 라이온킹 뮤지컬을 보러 가는 등 소비문화를 확장해 나간다. 우리 국악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며, “훼손되지 않는 범주 안에서 국악도 상품화를 시킨다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악을 알리자”…홍대 버스킹으로 ‘퓨전 국악’ 퍼포먼스
국악 공연부터 교육 프로그램까지 ‘국악’을 소스로 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아트라컴퍼니의 김보은 대표는 처음부터 큰 꿈을 안고 사업을 시작했던 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김 대표는 “평소 공동창업자인 박종석 이사와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음악,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 등을 얘기하다가 ‘이참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팀을 만들어 보자’라는 결심을 하게 됐고, 팀을 구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악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던 김보은 대표는 아쟁 전공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다. 그런 그에게 비록 한때였지만, 국정교과서에 아쟁과 해금이 잘못 표기됐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랬던 그가 기획과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던 박종석 이사와 만나면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관객의 반응은 ‘퓨전 국악’에 대한 낯섦이었다. 이에 퓨전 국악을 알려야겠다는 절실함에 홍대 버스킹을 시작했다.
김보은 대표는 “가야금 연주자인 친구와 함께 가야금, 대아쟁, 중아쟁, 소아쟁 등의 악기를 ㄷ자 모양으로 깔고 서라운드 퍼포먼스를 했다. 당시 가수 박진영의 스윙베이비를 비롯해 다양한 곡을 연주했다”며, “보통의 버스킹에서는 노래와 춤이 시작돼야 사람들이 몰리지만, 우리는 악기를 펼치는 순간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며 흐뭇해했다.
교육·공연·웨딩 등 생애주기별 ‘국악 콘텐츠’로 서비스 확장
2016년 12월, ‘아트라’라는 이름으로 개인사업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김 대표는 힙합에 국악기를 매칭해 ‘모던한(恨) 파티’를 테마로 공연을 펼쳤다. 힙합 뮤지션처럼 옷을 입고, 비트박스에 밀양 아리랑과 같은 전통음악 선율을 입혀 관중들로부터 색다르다는 호평을 받았고, 이로 인해 행사와 팀원도 더 늘어나게 되면서 협업의 기회도 많아졌다고 한다.
공연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아트라는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문화예술 체험도 이어 나갔다.
그는 “초등학교 앞에서 전단을 돌리며 홍보하고, 아이들을 초청할 수 있는 공간을 빌리는 등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며, “처음에는 3명 정도만 왔을 정도로 참여율이 저조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토요일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찾아와 악기도 만져보고, 전통음악도 들어보는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고 뿌듯해했다.
입소문은 웨딩시장에도 퍼져, 메모리아토라는 결혼식 축주(祝奏) 브랜드의 주춧돌이 되기도 했다.
김보은 대표는 “메모리아토는 기억을 뜻하는 영단어인 메모리(memory)와 순 우리나라 말로 선물을 뜻하는 아토의 합성어인데, 전통 혼례를 하거나 국제결혼 하는 커플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며, “전문 연주자들로 꾸린 팀이 판소리 축가, 사물놀이 공연 등을 선보이는데, 현대인에게 익숙한 음악을 한국의 전통 음악 형식으로 바꾸기도 하고, 새롭게 음악적인 연출을 가미해 결혼식에 접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잘나가던 회사를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1톤 트럭이 뒤에서 박아 폐차에 이르는 큰 사고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며 새 국면을 맞는 계기로 삼았다.
김 대표는 “2019년 크리스마스였다. 다행히도 운이 좋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놀러 가는 차로 꽉 막힌 도로의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나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며, “그러다가 ‘우리가 너무 달려서 쉬라는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입원 병동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다시 의지를 다졌지만, 김보은 대표를 맞이한 것은 코로나19라는 복병이었다.
‘우린 대면으로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인데 어떡하지?’라는 절망감도 들었지만, 아트라의 정신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가져보자는 생각에 2020년 4월 법인으로 전환하고 온라인으로 방향을 틀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코로나를 기회로…보고 만지고 느끼며 온 가족이 즐기는 국악
첫 시도는 아쟁의 안족(줄 받침대) 자체를 마이크(Mic.)로 만드는 일이었다. 김보은 대표에 따르면, 국악 공연에서 항상 연주자의 걸림돌이 음향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타의 마이크 역할을 하는 픽업(Pickup)과 같은 장치를 떠올렸지만, 시장성이 떨어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 대표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하도록 하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국악기를 모티브로 한 18종의 캐릭터 IP를 제작한 일이었다. 장구, 가야금, 북, 소고, 북청사자, 모리장단 등에서 따온 만화 캐릭터를 개발했고, 스토리 탄생 비화 등 세계관도 만들었다. 2021년에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선정돼 약 1억원의 지원금을 받고 유튜브 영상과 음원, 한글 교육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며 콘텐츠를 확장해 나갔다.
그는 “우리가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역사를 배우고, 밥상머리 교육으로 어른 공경과 예절을 배우며 성장하듯이, 국악 역시 어린 시절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그래서 캐릭터를 통해 전통문화를 자연히 알 수 있도록 했다. 한옥 관련 노래를 듣다 보면 한옥의 형태에 대해 알게 되고, 가야금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야금이 12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각계에서 협업 요청도 이어졌다. 2021년에는 용인문화재단과 IP 라이선싱 계약을 통해 어린이 국악뮤지컬을 공동 제작했다. 소재는 비빔밥과 첫 심부름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할머니에게 전해야 하는 비빔밥 재료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기차 모리를 타고 하늘을 날며 버섯 마을, 장독대 마을, 채소 마을 등 비빔밥 재료를 찾으러 떠난다는 스토리다.
총 16회로 이뤄진 토요일 공연이었는데, 예매율 97%, 재관람 의사 94%로 공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자, 2023년 6월에는 국립국악원에서도 공연을 진행해 예매율 100%, 재관람 의사 98%로 성공리에 공연을 마쳤다. 2024년에도 강원랜드 사회공헌재단, 강남시어터 등에서 공연을 이어 나갔다.
공연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사업 확장의 계기가 됐다. 2023년 5월에는 어린이 동화책을 출간했는데, 책의 QR코드를 통해 음원을 들으며 비빔밥을 만드는 리뷰가 올라와 김 대표를 흐뭇하게 했다고 한다. 키즈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 대교어린이TV와 국악방송에도 방영됐다. 미취학 아동 대상의 콘텐츠 학습 앱인 비버스쿨과 IP 라이선싱 제휴를 맺고 김장, 비빔밥, 송편 등 우리 전통음식을 만드는 터치 게임 형식의 인터랙티브 전통문화 학습콘텐츠도 공동 개발했다.
무엇보다 실제로 만지고, 즐기는 감각이 중요한 만큼,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해 양동이 난타 공연이나 자진모리장단을 치며 달리는 체육대회 등의 오프라인 교육도 진행해, 아이들에게 국악 리듬을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성인을 위한 교양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인재개발원과 같은 공공기관을 비롯해 사기업, 최고경영자과정 등에서 2시간 분량의 국악 강의를 펼치는데, 도슨트가 특정 미술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해주듯이 다양한 인물과 음악을 소개한다. 일례로, 한글 창제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엄청난 기여를 한 세종대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궁증음악을 선사하기도 하고, 편곡을 통해 피아노 연주와 함께 들려주기도 한다.
더불어 국악은 좋은 취미가 될 수도 있다며, 한국걸스카우트연맹과 MOU를 맺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본 결과, 한산춤을 10분 이상 춘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릴 정도라고 김 대표는 귀띔했다.
김보은 대표의 목표는 이처럼 무궁무진한 국악에 날개를 다는 일이다. “국악도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고, 콘텐츠를 비즈니스화시켜 글로벌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만년 동안 꾸준히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있는 게 그 증거”라며, “정체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주 안에서 발전시킨다면 한국의 ‘명품’ 콘텐츠로서 미래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 미래를 향해 앞으로 계속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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