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가 인터뷰이를 폭행해 전치 3주라는 상해를 입혔어. 우리는 지금 피고인을 변론해야 돼. 변론 초안을 어떻게 짜면 좋을까?”
쓰리블록스닷에이아이(3blocks.ai) 안광섭 대표가 짤막하게 물은 질문에, 사건발생 배경부터 폭행 경위, 법리 적용 및 논거 제시 등 몇 페이지 분량의 초안이 단 몇 초 만에 깔끔하게 정리돼 쓰였다. 인터넷마저 끊긴 환경인데도 초안은 완벽에 가까웠다. 여기에 디테일한 내용을 더 추가하면, 완전한 송사가 완성된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안광섭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많은 법무법인에서 챗GPT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활용해 판결문이나 송사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고객정보 유출 문제로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이처럼 강력한 보안이 요구되는 환경에서도 AI를 원활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게 되면, 송사 글에 매달렸던 사무관이 동시에 여러 사건을 더 볼 수 있게 되는 등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개발자와 일하며, AI의 미래 가능성에 눈을 뜨다
경영학을 전공한 안 대표는 생활용품업체의 디지털 마케팅팀의 일원으로 근무하다 국내의 굵직굵직한 IT 기업에서 일하며 AI 전문가로 발전해 나갔다. 그 시작은 온라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넥슨의 스카우트였다.
안광섭 대표는 “평소에 머릿속의 일들을 정리해 SNS에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를 필드에서 좋게 봤는지 함께 일해볼 생각이 없냐는 연락을 메일로 받았다. 91년생이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넥슨의 게임들을 하며 자랐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안 대표는 그곳에서 전에 보지 못한 뛰어난 개발자들과 일하며 업무부터 업계 동향까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때마침 개발 프로젝트 매니저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신규개발본부의 개발 프로젝트 매니저로 4년간 일했다. 프로젝트가 제 시간에 끝낼 수 있도록 운용하는 개발PM은 201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낯설었던 직군이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콘퍼런스에 초청되면서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고 안 대표는 떠올렸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커리어에 대한 허기짐을 느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에서 산업공학과 석사학위를 따고, 개발자들이 자리를 비울 때면 그들의 일을 대신 해나갈 정도로 실력도 키웠지만, 좀 더 점프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강해졌다고 한다. 이후, 국내 한 보험회사의 신사업 브랜드 전략실의 셀(CELL)장으로 일하던 시절, 넥슨에 있던 개발자들이 모두 인공지능업계로 옮겨 가는 것을 보면서 ‘AI가 우리의 미래’라는 걸 확신했다고 한다.
안 대표는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제대로 인공지능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았다. 때마침 카카오브레인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SNS에 올려놨길래 ‘현재 AI 연구원들만 있던데, 이걸 사업화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보냈고, 당시 CTO로부터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를 계기로 언어모델사업실의 PM으로 약 3년간 일했다”고 했다.
AI 업계에서는 수많은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어 창업으로 연결할 기회가 흔하다. 카카오브레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CEO를 비롯해 모든 직원이 창업에 도전했는데도, 안 대표는 창업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AI 관련 대화를 하면서 ‘아!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식이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 깨달았고, 자기가 가진 지식을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는 “아내의 소개로 무역 관련업을 하는 지인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고마워하면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라고 진지하게 묻는 거다. 내 입장에서는 의아했다. 장모님의 김장을 도와주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는 그분께 드린 AI 관련 조언이 그런 일과 마찬가지였다”며, “그때 무릎을 탁 쳤다. 기술의 최앞단에 있는 동료들과 계속 소통하다 보니 모두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창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인터넷 한계를 뛰어넘어 기술-인간-산업을 잇다
어떤 산업군이든지 AI 모델을 쓰기 쉽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안 대표는 2024년 2월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하거나 보안을 요하는 폐쇄망(인트라넷) 등에서 언어모델을 로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회사의 방향이다. 별도의 인터넷 연결 없이 보안이 강화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법률, 금융, 의료, 공공기관 등 보안을 중시하는 업계의 관심이 크다. 무엇보다도 전문용어를 많이 쓰는 분야이다 보니 독해력 이슈가 자주 생긴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AI가 이런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우선, AI가 공공기관에 적용되면 행정력 낭비 방지는 물론, 쓸데없는 오해의 소지까지 없앨 수 있다. 입찰 단계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전문가 심사인데, 이때 부득이하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의심 상황이나 편향성을 예방해 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AI가 심사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터널 전문가가 심사위원으로 필요한데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준전문가에게 심사를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AI에 초벌 심사를 맡기면 이런 불상사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
직원의 업무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부서 이동이 잦은 공공기관에서는 가이드북을 참고할 일이 많은데, 워낙 내용이 방대해 찾고 싶은 내용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디지털화가 돼 있다고는 하지만, 내용이 파일로 저장돼 있을 뿐, 검색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럴 때, AI가 업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심지어, 표준어가 아닌 말까지 AI가 해석해 준다. 일례로, 건설현장에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내려오던 용어가 여전히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AI에 물어보면 일목요연하게 알려준다.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기계를 감시할 때 ‘5 이하로 내려가면 빨간 버튼을 눌러’ 등 수치상으로 명령어를 내리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들이 계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스마트 팩토리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지만, 스마트 팩토리는 규칙 기반의 자동화 시스템이어서 결국에는 사람이 관리·감독해야 한다. 이럴 때 스스로 생각해 판단까지 내려주는 AI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안광섭 대표는 “사람들의 착각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대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인공지능은 인간이 잘 매니지먼트할 때 그 능력이 빛을 발한다. 즉, 옛날에는 사람이 한 번에 하나의 작업밖에 못 했다면, 이제는 한 번에 여러 개의 작업을 AI에 명령해 결과에 따라 ‘음, 좋아’ 혹은 ‘더 열심히 해야겠어’ 등 판단과 감독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모델이건 인공지능 랭귀지 모델의 작동원리는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리를 파악하기면 하면 된다. 칼 대신 가위로 삼겹살을 자르고, 고기를 구울 때 집게가 없으면 젓가락으로 대신할 수 있듯이, 도구보다 주도성이 인간에게는 가장 중요한 역량인 시대가 왔다”며, “내 꿈은 기술을 통해 ‘모든 사람의 시작을 쉽게’ 해주는 것이다. 지식에 닿고 싶어도 닿지 못했던 사람들, 뭔가를 도전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했던 사람들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 명품 포크든, 황금으로 만든 포크든, 플라스틱 포크든 우리가 고기를 먹는 데는 지장 없다. 그렇듯이 AI의 범용화를 통해 누구나 포크를 쓸 수 있는 날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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