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BEYOU) 윤여진 대표의 공식 직함은 ‘광명의 공정여행(지속가능관광)’을 기획하고 이끄는 사회적경제 기업의 대표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교육’과 ‘관광’을 매개로 지역에 있는 사업체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모두가 잘 사는 구조’를 만들도록 하는 ‘스토리텔러’라 할 수 있다.
봄날의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날, 광명시창업지원센터를 찾은 중기이코노미 기자에게 윤여진 대표는 “교육과 관광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 대항하는 삶, ‘비교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본연의 나’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며, “사회 문제를 비즈니스로 풀어가고자 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의 목표라면, 비유의 목표이자 역할은 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지역 기업과의 연대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에선 엘리트, 아이에겐 소홀…마음의 빚 덜고자 ‘공동 돌봄’
윤 대표는 원래 창업가가 꿈은 아니었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업 컨설팅·교육 기관에서 근무했던 그는 당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커리어를 과감하게 그만 둔 케이스다. 이를 계기로, 공정한 사회,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한다.
윤여진 대표는 “별 보면서 출·퇴근하는 삶을 지속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 아이가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엄마, 나도 다른 친구랑 짝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거다. 알고 보니, 다른 엄마들에게는 뒷말이 나오니까 상대적으로 학교 일에 무관심했던 엄마의 아이였던 우리 아이만 발달 장애인 친구와 일 년 내내 짝을 시키고, 바꿔주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발달 장애인 아이와 짝을 했다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커리어 쌓기에 바쁜 엄마 때문에 아이가 ‘다른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속상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발달 장애인 친구와도 짝궁을 하고, 또 다른 친구와도 짝꿍을 하면서 사회성을 길러야 할 시기에, 소위 엄마의 치맛바람에 따라 아이의 학교 생활이 불공평해질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이에 아이가 2학년이 될 때쯤, 회사를 그만뒀고, 그 무렵 회사를 나온 또래 동료들과 함께 아이를 위한 보상 차원에서 공동 돌봄을 시작했다고 한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지만, 교육학을 복수전공해 정교사 자격증이 있던 데다, 아동복지학을 부전공했기 때문에 교육에는 일가견이 있던 윤 대표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살려 ‘생각 학교’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읽어주고, 학교 다니면서 필요한 독서 습관을 길러주면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등 ‘대안학교’를 표방한 무료 교육을 했다.
하지만, 워낙 고급인력이 모여 공동 돌봄을 하다 보니 점차 옆 동네, 옆 옆 동네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의도치 않게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윤여진 대표는 “여기 아이들이 글을 잘 쓴다는 소문이 인근에 나기 시작했다. 그때 신도림 쪽에 살고 있었는데, 목동, 평촌에서 소문을 들은 엄마들이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며, “특성화중학교, 영재교육원 출신의 아이들이 너무 좋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소문이 더 커졌고, 다른 동네의 엄마들이 ‘돈을 낼 테니 우리 아이도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로 돼버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평촌 엄마들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더라. 거기로 가서 독서 논술 학원을 차리자’라는 의견과 ‘우리의 원래 취지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질 좋은 교육을 하자는 거였다. 계속 우리의 취지를 지켜 나가자’라는 의견이 내부에서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윤여진 대표의 고민도 커졌다. 다른 지역에 학원을 차리면, 그 지역에서 돌봤던 한 부모 자녀의 교육은 이어지기 힘들고, 설사 그 아이를 데려간다 해도 해당 지역의 엄마들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윤여진 대표의 눈에 띈 한 현수막이 그를 사로잡았다.
윤 대표는 “친정이 광명이어서 종종 왔다 갔다 했는데, 그날 내 눈에 ‘사회적 경제 창업 아카데미’라는 글귀가 콕 박혔다. 경제라는 단어에 사회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게 마음에 들었었다”며, “서울에 살아도 등록해서 들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마냥 사회적 경제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아카데미를 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도, 사회도 함께 성장하자…‘사회적경제’에 꽂혀 광명으로 이사
“여보! 우리 광명으로 이사 가야겠어!” 아이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오색 빛의 텔레비전 불빛과 오버랩된 영롱한 눈빛의 윤여진 대표가 남편을 향해 레이저를 발사하며 던진 말이다. 윤 대표에 따르면, 남편은 그 말에 얼어붙었다고 한다. 윤 대표의 눈빛에서 사회적 경제에 이미 빠질대로 빠져 절대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윤 대표의 결심에 광명시 창업지원센터 근처로 가족은 이사를 왔고, 신도림의 아파트를 팔자마자 집값이 2배로 뛰었다는 말에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로 풀어가는 것’에 맞춰져 있었고, 다시 일을 한다면 이런 방식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견고한 상태였다.
윤여진 대표는 ‘공교육과 사교육 사이에 빈틈을 채우겠다’는 아이템으로 경기도가 주최한 창업 오디션을 시작으로 사회적기업가육성과정 등에 선정되며 2020년 9월 비유 법인을 설립했다. 이맘때쯤, 광명시장 추천으로 방문한 평생학습원을 통해 장애인부모연대와 연을 맺게 됐고, 기업 컨설턴트 시절 배웠던 조직관리 비법을 발달 장애인 교육에 적용하며 남다른 교육법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들을 만나본 결과 열이면 열명의 성향이 다 달랐다. 하지만, 그동안 발달 장애 아이들을 나누는 기준은 중증, 경증 이런 식으로만 단순하게 나뉘어 있었다”며, “발달 장애인 아이들이 이미지를 따라 설명하면서 자연스레 자기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툴을 만들었다”고 했다.
정형화되고, 규칙과 틀에 얽매여 있던 것으로부터 개인화, 개별화에 초점을 맞춘 결과, ‘나는 성취라는 걸 갖고 있어서, 체크리스트에 따라서 체크하며 일하는 걸 되게 잘해요’와 같은 식으로 사고의 범위가 확장되는 결과를 얻었다. ‘한글 쓸 줄 알아요’, ‘컴퓨터 할 줄 알아요’ 등 기능 위주로 능력을 갈랐던 이전과 전혀 다른 결과였다.
부모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아이가 표현력이 많아졌다’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학생들 역시 ‘선생님이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비장애 청년과 다름없이 ‘공정’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큰 신뢰를 얻었다.
이처럼 ‘공정한 교육’을 표방하던 비유는 사업분야를 넓혀 ‘공정여행(지속가능관광)’으로까지 확장을 도모했다. 옆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박미정 광명시사회적경제센터장의 제안이었다. 윤여진 대표는 “광명에 살고 있고, 교육을 할 수 있는 데다, 지역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 우리였던 것”이라며, “2022년 6~7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해 같은 해 9월 1000만원 규모의 시범사업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역기업 함께 ‘스토리텔링’…지역의 의미를 생각하는 ‘감성 여행’
비유가 진행하는 공정여행(지속가능관광) 역시 남다르다. 사실 경기도 광명시는 인구소멸 지역도 아니고, 천혜의 자연을 갖고 있는 생태지역도 아닌 애매한 동네다. 이에 일단,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 봤더니, 지역의 사회적 경제조직이 영세하거나 경쟁력이 낮다는 것이 문제였다. 윤여진 대표는 ‘지역의 사업체들이 모두 잘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먼저, 한 프로그램 당 사회적기업을 비롯해 청년 기업, 지역의 영세 사업체 등 10개 이상의 조직과 함께하도록 구조를 짰다. 여기서 비유의 강점인 스토리텔링이 빛을 발했다.
윤 대표는 “지역의 스토리와 여행자의 편의성이 조화를 이뤄야 여행자도 얻어가는 바가 있다. 그래서 장소마다 특별하면서도, 유기성을 찾기 위해 각 대표님을 인터뷰해서 키워드를 뽑아냈다”며, “이를 기반으로 리더십에 얹을지, 인문학에 얹을지 주제별로 정한 후, 교육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트레이닝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일례로, 도덕산의 출렁다리를 숲 해설을 들으며 걷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때 모인 여행자 집단에 따라 해설의 성격이 달라진다. 만약, 엄마들이 모였다면 ‘비교하지 않는 삶’, ‘속도가 다른 삶’ 등에 초점을 두고 숲해설을 하는 식이다.
어느 정도 숲의 절정에 올랐을 땐, 스태프가 미리 세팅해 놓은 간식 상을 받는다. ‘부자 되세요’라는 의미가 담긴 피낭시에(financier)를 맛보고, 찻받침으로 변신한 나뭇잎에 사기로 된 찻잔을 받치며 마시는 고객들은 하나같이 ‘신선이 된 느낌’이라는 기쁨을 전한다고 한다. 이후,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예술협동조합을 방문해 ‘점’이라는 그림책을 빔프로젝터로 보며 ‘작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되듯이, 누구나 처음은 있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의 손을 잡아줬듯이, 당신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은 인문학 수업도 진행한다.
이후, 식사를 하면서 ‘밥은?’이라는 별것 아닌 질문에 담긴 따뜻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진 후, 식사를 마친 고객들을 위해 주인장이 춤을 한 바퀴 추며 자기소개를 한 뒤, 식재료 소개와 그날 먹은 음식에 대한 의미를 얘기한다. 다음은 ‘낯선 책과 만나는 비밀스러운 선물’의 시간이다. 서점을 운영하는 청년 대표가 여행자와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을 준비해 두는데, 대다수의 여행자가 랜덤으로 받는 선물에 깊은 울림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평소에 안 읽던 종류의 책을 편견 없이 읽을 기회에 감동한다고 한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3시30분쯤에 끝나는 비유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운영진의 만족도는 99%, 여행자의 만족도는 97% 이상일 정도로 긍정적이다. 특히 ‘광명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광명이 자랑스럽다’, ‘광명이 부럽다’는 리뷰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윤여진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리뷰 중 하나는 ‘여행이 끝난 후,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마치 색 보정 필터를 쓴 것처럼 세상의 색이 보정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고, 감사한지 모른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윤 대표가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감사해했다.
비유의 프로그램은 첫 모집 때부터 높은 인기를 보였다. 프로그램당 20여명의 정원으로 4회차로 기획하는데, 4시간도 안 돼 100명 정원이 마감됐고, 대기 인원이 넘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난 이후에도 입소문이 끊이지 않으면서 줄줄이 마감 사태를 겪었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는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오는 여행자도 많았다고 한다.
연결, 연계, 연대…“지역기업의 발전을 위해 함께하는 기업될 것”
현재 비유는 발달 장애인 교육과 공정여행을 함께 진행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작년에만 340명의 발달 장애인 청년들을 교육했고, 이와 별개로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
공정여행은 ‘여행의 비용이 여행지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방향성 아래, 로컬 메이트(공정관광 활동가)를 양성하면서, 광명지속가능관광연대(G-STA)를 출범해 지역사업체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공정여행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활동은 2024년 5월 사회적기업 인증이라는 결실을 맺는데 큰 공헌을 했다. 현재, 윤여진 대표는 비유의 대표이자, 광명사회적경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윤 대표는 “우리는 스토리를 잘 만들고, 사람들이 잘 모이게 하고, 이를 통해 함께 연결돼 있다는 느낌까지 부여하는 일을 특히 잘한다고 자부한다. 이런 강점을 살려 작년에는 지역의 흩어진 소중한 상품들에 힘을 부여하기 위해 GM(Good Morning GwangMyeong)이라는 로컬브랜드를 개발해 선보였다”며, 각 기업이 잘 되는 게 비유가 잘 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기업과 그들의 스토리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 ‘아!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추가 소비가 일어나는 곳, 카메라의 색 보정 기능처럼 우리를 통해 사회가 좀 더 따뜻해 보이고, 착한 사람들과 연계돼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를 바란다”며, “이를 통해 ‘BE YOU’의 의미를 지닌 회사명처럼 우리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워지는 삶, 진정한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길 바란다”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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