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출신 아버지와 ‘소방 기술·문화’ 혁신 이끌다

스키핑 현상 없앤 스프링클러…㈜파이어버스터 김승연 대표 

 

“독일이나 미국 등 외국의 안전 박람회 등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안전에 대한 업계와 일반인의 인식이 우리나라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박람회만 보더라도 캠페인과 퍼레이드가 합쳐진 축제 같은 분위기여서 일단 재미있고, 소방 관련 기술이 멋있다는 이미지를 주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반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하고, 관심도 많습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파이어버스터(FIREBUSTER)의 공장을 찾은 중기이코노미 기자에게 김승연 대표가 한 말이다. 소방관들과 한 공간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부스부터 각종 이벤트가 풍성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너무 정적이라는 것이다. 소방 관계자 외의 일반인들이 안전 박람회를 굳이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터쇼는 차를 사진 않더라도 볼거리가 있다고 생각해 많이 찾지만, 상대적으로 소방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묻어났다.

김승연 대표는 “기존 소방 설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고, 여기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해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도 이끌고 싶다”며,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개선하려 하지 않았던 사소한 불편함부터 차근차근 개선해 소방 기술과 시스템의 혁신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존 소방설비의 문제점 찾아 소방관 출신 아버지와 ‘발명’ 

김승연 대표가 소방과 안전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높고, 잘 아는 이유는 30년 이상 소방관으로 활동하다 정년퇴임한 그의 아버지 덕분이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은퇴 후에는 소방 감리 자격증을 따서 15년 이상 소방 감리 일을 했다. 몇십년간 아버지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기초 소방설비를 혁신하지 않고는 기존의 소방 문제가 안 바뀐다는 점”이었다며, “좋은 제품을 개발해 특허까지 받는 것을 목표로 10년 전, 아버지와 집 창고에 작은 개발실을 만들어 개발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직무 발명을 오래 한 그의 아버지인 김진태 개발자와 어린이 발명가 출신인 김승연 대표가 만나 언제 완성될지 모르고, 시장에서 받아들여질지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사실, 소방 관련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대략 10년을 내다봐야 한다고 한다. 안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보수적인 업계 분위기가 맞물려 새로운 기술은 잘 받아들이지 않고, 규제도 강한 탓이다. 소방기술이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수많은 기업체에서 관련 기술개발을 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전에 있던 라인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슷한 제품으로 시장을 나눠 갖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기술이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승연 대표는 스프링클러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건축은 해가 갈수록 빨리 변하지만, 스프링클러의 경우에는 100년 이상 된 기술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채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첨단기술이 적용된 건축과의 갭만 커지게 만드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승연 대표와 김진태 개발자는 건물 초기 화재 진압의 기본인 스프링클러가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고 한다. 

스키핑 현상 해결한 스프링클러로 미국에서 먼저 인정받아

파이어버스터가 자체 개발한 스프링클러인 ‘제트 버스터(JET BUSTER)’가 올해 시장에 나오기까지도 10년이 걸렸다. 사실 이 제품은 상용화되기 전에 아이디어와 시제품만으로 2018년 미국 실리콘밸리 국제 발명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능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은 제품이다. 

제트 엔진처럼 강력하게 쏟아낸다는 뜻에서 제트 버스터라고 이름 붙인 이 스프링클러는 세계 최초로 폐쇄형 헤드와 개방형 헤드를 같이 쓰도록 구성돼 있다. 

김승연 대표에 따르면, 기존 스프링클러의 문제는 먼저 개방된 헤드에서 방사된 물방울이 주변 공기를 식힘으로써 인접 헤드의 개방을 방해하는 스키핑(Skipping) 현상이다. 화재 사고에서 스프링클러 미작동으로 인해 화재가 더 커지기도 하는데, 스프링클러 미작동 원인 중 79%가 스키핑 현상으로 인해 생긴다. 

김 대표는 “위, 아래로 돼 있는 스프링클러는 화재 시 위로 올라온 뜨거운 공기로 인해 위쪽의 헤드를 먼저 터뜨리게 된다. 사람들은 당연히 아래쪽 헤드도 터지겠거니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먼저 터진 헤드로 인한 온도차 때문에 터지지 않는다”며, “아버지가 소방관으로 일할 때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풀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파이어버스터의 제트 버스터는 위쪽 헤드가 터지면 아래쪽 헤드도 강제로 함께 터지도록 설계돼 있다. 대개 소방에서는 폐쇄형 헤드만 쓰거나 개방형 헤드만 쓰는데, 제트 버스터는 이 둘을 같이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자체 개발한 유압 감지 배관 기술을 적용해 스키핑 현상까지 해결했다. 화재 열에 의해서만 작동했던 기존의 스프링클러 대신, 주 스프링클러 헤드가 화재 열을 감지해 작동하면 종속된 모든 개방형 스프링클러에서 동시에 살수 되도록 한 것이다. 즉, 국소 부위의 헤드까지도 일제 개방이 가능하다.

설치가 쉽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한다. 기존의 스프링클러는 배관 및 케이블 트레이 등 여러 건축 자재로 인해 설치가 어려웠고,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살수에 방해가 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제트 버스터는 모든 방향으로 배관을 설치할 수 있어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장소에서도 변형 설계가 가능하다. 또한, 장애물을 우회해 설치가 가능하므로 살수 사각지대까지 해결했다. 

 

2018년 당시, 이런 아이디어만으로 실리콘밸리 국제 발명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으며 많은 곳에서 구매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당시에는 이 기술에 대한 국내 인증제도가 없어 미국 진출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재 국내 특허 1개와 미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4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이 제품은 조달청 혁신제품 인증, 소방청 소방 신제품 인정, 행안부 재난안전 인증, NET 신기술 인증 등을 받았고, 최근에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인증(KFI)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환경에서 응용 기대…기술·디자인 만나면 시너지

본격적인 세일즈를 위해 2023년 경기도 파주시에 공장을 설립했고, 작년 12월 법인으로 전환한 김승연 대표는 제트 버스터가 스프링클러가 완벽하게 설치되지 못하는 환경에서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제트 버스터는 지하 주차장, 전기차존, 에어컨 실외기실, 소형 창고, 대형 물류창고를 비롯해 특수 소방시설 등 다양한 산업 환경에 두루 응용돼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테크와 디자인의 결합’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소방 안전제품들도 더 좋은 디자인을 만나면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두고,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애플의 경우 처음에 디자인으로 먼저 세계를 휘어잡지 않았나. 제품 디자인은 물론, UI 디자인도 눈길을 끌며 스마트폰의 혁신을 끌어냈다. 그만큼 기술과 디자인이 만나면 더 엄청난 부가가치를 안겨준다”고 피력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문제는 안전에 대한 물품은 최저가만 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며, “이런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제품이 멋지든지 기능이 정말 뛰어나든지 뭔가 베네핏이 있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디자인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했다.

김승연 대표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는 그가 디자인을 공부했고, 디자인 회사에서 10년간 일하며, 포장 디자인, 산업 디자인, 시각 디자인 등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제트 버스터에 집중하고 있다는 김 대표는 해외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했기 때문에 올해에는 해외 박람회 위주로 다니며 세일즈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며 앞으로도 화재 진압 시 불을 완벽하게 끄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보고, 분석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승연 대표는 “기능적인 솔루션을 통해 화재 진압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를 위해 많이 연구하고, 디자인적으로도 개선할 점을 찾을 것”이라며, “AI 시대에 발맞춰 AI 감지나 IoT 작동 등 여러 가지로 기술 실험을 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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