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3D 프린팅 기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캐즘(chasm) 현상에 갇혀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시작하기에는 시장 성장속도가 느리고, 영세기업이 하기에는 투자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주도적으로 산업을 이끄는 모멘텀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대정광역시에 위치한 ㈜랩에이엠24(LabAM24) 본사를 찾은 중기이코노미 기자에게 이현식 대표가 현재 우리나라 3D 프린팅 업계가 처한 현실에 대해 한 말이다.
실제로, 국내 3D 프린팅 업계의 입지는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에 비해 브랜딩 가치는 낮고, 중국과의 단가 경쟁에서 밀려나 해외 진출이 쉽지 않아서 투자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랩에이엠24는 3D 프린팅 기술로 글로벌 진출을 꾀하고 있다. 그것도 전 세계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우주항공 분야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현식 대표는 “우주항공산업에서 3D 프린팅 기술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방식 대비 개발기간이 단축될 뿐만 아니라, 소재 및 부자재 비용 절감, 설계 유연성 등에서 탁월한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화라는 여전히 풀지 못하는 숙제는 남아 있었다”며, “우리는 자체 개발한 금속프린터를 기반으로 이전 3D 프린팅이 갖고 있던 사이즈, 프린팅 시간, 낮은 편리성 등의 한계를 극복해 우주항공 산업 분야의 리딩업체로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조업에서 한 단계 나아가려면…샌드위치화 된 국내 ‘3D 프린팅’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삼성전자, GE, 필립스전자 등 글로벌 기업에서 자동차 엔지니어링, 엔진 부품, 아시아태평양 물류 총괄 등의 업무를 거치며 지구 한 바퀴를 몇 번이고 돌 정도로 전 세계를 다니며 글로벌 시야를 넓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미래 기술에 대한 우려도 컸다고 한다.
이현식 대표는 “이렇게 작은 나라가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데 자부심이 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이마저도 잃고 나면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단군 이래 이렇게 누리고 살았는데, 우리 후손들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들기 시작했다”며, “우리가 미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3D 프린팅이 답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3D 프린팅만 봤을 때, 미국, 유럽에는 쟁쟁한 기업이 많고, 중국은 내수시장에서 몸집을 부풀려 글로벌 대비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시장 규모가 작고, 원천기술이 없다 보니 마치 샌드위치처럼 낀 상태”라고 우려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한 그는, 14년간 근무한 글로벌 절삭공구 업체인 와이지-원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카이스트(KAIST) 교수 출신인 박세호 CTO와 의기투합해 2024년 3월 랩에이엠24를 설립했다. 이현식 대표와 박세호 CTO가 집중한 시장은 우주항공 분야다.
최근 우주항공 분야에서 3D 프린팅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데, 민간 주도의 우주항공 시대가 시작되면서 비용 절감, 경량화, 설계 유연성, 빠른 제작, 품질 등에서 기존 제작방식 대비 월등한 3D 프린팅 방식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현식 대표는 “우주항공 산업은 연평균 성장률이 15%로 고도성장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3D 프린팅은 오는 2033년까지 4.8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는 모든 산업군에서 절삭 시장이 3D 프린팅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장을 바라봤다.
민간 우주항공 시대 열리며, ‘3D 프린팅’ 급부상…기술 선점 나선다
이 대표에 따르면, 예전에는 우주선 등 항공산업이 나라의 이벤트성 사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제작방식 또한 금형이나 CNC 가공을 통하기 때문에 부품수도 10만가지가 넘고, 만들고 수정하는 과정이 최소 6년은 걸렸다. 하지만, 3D 프린팅으로 대체하면 부품수가 1/100로 확 줄어들고, 제작기간도 1년 아래로 떨어진다.
특히, 발사체의 연료를 기존의 케로신보다 추진체에 무리가 덜가고, 연소 후 찌꺼기가 적어 친환경적인 메탄을 사용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복잡한 구조에 대응이 가능하고, 경량 설계가 가능한 3D 프린팅 제작 방안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3D 프린팅 기술 중에서도 랩에이엠24는 대형 출력이 가능하면서 품질이 우수해 미래 성장성이 큰 와이어(Wire) DED(Direct Energy Deposition Printer) 프린팅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이전의 DED 방식의 문제점이었던 금속 산화 문제를 해결하고, 대기 중에서 1분 이내에 0ppm에 도달하는 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
이 대표는 “기존의 대형 DED 프린터로는 산화 방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산소 농도를 20ppm 이하로 유지하는 방식을 취하면 프린팅하는 대상물의 크기가 최대 60~80cm로 제한되는 문제가 있었다”며, “우리는 모핑 실드(Morphing Shield)에 의한 불활성(inert)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질소(N2), 아르곤(Ar) 등의 가스를 활용해 금속 가공 중에 산화가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프린팅 크기의 제한도 없다”고 자신했다.
랩에이엠24는 이 기술을 통해 로켓 발사체의 연료 탱크, 가스 발전기, 로켓 노즐, 연소 챔버, 노즐 익스텐션, 반동 추진 엔진 등 다양한 부품을 제작할 수 있다.
지금껏 유례없는 모핑 쉴드 테크놀로지(Morphing Shield Technology)를 통한 3D프린터 기술은 모핑 쉴드를 사용한 재료 R&D 및 기타 8가지 혁신 기술로 2024년 9월 특허를 획득했다.
특히, 이 기술을 통해 랩에이엠24는 국내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공군 연구소(AOARD)로부터 7만5000달러의 연구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이 대표는 1차연도 연구기간이 끝나는 올해 9월 이전, 미국의 공군과 유의미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소재 우주항공 전문 에이전트와도 손을 잡고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대표는 미국의 항공과 국방 쪽을 필두로, 미국과 유럽의 민간 우주 기업과 대학 등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랩에이엠24의 기술력에 관심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얼마 전에는 우주항공청에서 진행하는 KASA형 SBIR 1단계 기획 연구과제 수행사로 선정됐다.
이 대표는 “올해 말까지 1단계 사업으로 영역별로 선정된 4개의 회사와 함께 사전 기획을 진행한 뒤, 국가 미션에 활용할 수 있는 과제를 도출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대기업과 실증 사업을 진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2차 본 과제 수행도 차질없이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현식 대표의 단기 목표는 2029년 상장하는 것이고, 장기 목표는 우주항공 분야에서 세계 NO.1의 3D 프린팅 업체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연구기반의 개발회사다.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제대로 된 3D 프린팅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우리 제품으로 우주항공 제조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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