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 팔찌, 단추, 지퍼, 휴대전화, 시계 등 우리가 몸에 지니며 24시간 항상 함께하고 있는 제품들이 다 표면처리를 한 것들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단 1분이라도 표면처리를 하지 않은 것을 접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인천시 서구에 자리한 인천표면처리협동조합을 찾은 중기이코노미 기자에게 장석복 전무이사가 표면처리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 기반의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했던 주역은 대기업과 함께 산업을 끌어나간 중소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표면처리업은 우리나라 기초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마지막 공정 데이터로서 핵심 뿌리산업이다. 하지만, 최근 제조업 전반이 겪고 있는 인력 부족 문제와 현실과 동떨어진 법 규제 등으로 인해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장석복 전무이사는 “사람들이 표면처리 업계를 3D 업종이다, 힘들다 등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우리 업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예전과 달리 청결한 환경과 스마트 팩토리를 통한 자동라인 구축 등을 통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8.8%가 인천 소재…상생 통해 업계가 마주한 고민 해결
인천표면처리협동조합은 표면처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린 문제를 하나로 모아 정부에 전달하고, 조율해 줄 대변자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2013년 12월 창립했다.
화공약품 판매업을 하면서 도금 공장들의 애로사항을 알게 된 장석복 이사는 법적인 제재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7년도에 인천도금협회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던 장석복 이사는 당시 협회 회장으로 있던 한설전 고려비철금속 대표와 함께 인천산업환경센터를 설립해 작업환경 측정사업을 진행하는 등 도금업체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하지만, 환경 총량제에 묶인 업체들의 고민은 쌓여만 갔고, 하루에도 수십만개씩 새로 태어나는 화학물질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인천시와 협의해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이렇게 2015년 5월 착공을 시작한 인천표면처리협동조합은 2017년 5월 입주를 시작했고, 현재 110여개 업체가 이곳에 터를 잡고 일하고 있다.
장 전무이사는 “환경문제에는 최첨단이라는 게 없다. 화학물질이라는 건 고정된 것이 아니고, 화학약품끼리 섞이다 보면 또 다른 화학물질이 탄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변경하고, 증설하고, 수리를 해나가야만 하는 문제”라며, “당시에 인천시에만 700개가 넘는 도금업체가 있었고, 이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줄 단체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인천표면처리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장석복 이사에 따르면, 제조공정의 마지막 단계는 제품에 광택을 나게 하고,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는 도금과 표면처리가 필수로 들어간다. 이 중 도금은 전기를 통해 표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고, 표면처리는 코팅, 도장, 열처리 등 전기를 통하지 않고 표면에 입히는 모든 공정을 뜻한다. 즉, 표면처리는 도금을 포함한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다.
현재 인천시에만 550개의 표면처리 기업이 소재하고 있는데, 이는 전국 표면처리 업체 수의 8.8% 규모다. 인천에 표면처리 기업이 밀집해 있는 이유는 수도권 쪽에 관련 업종이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장석복 이사는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에 가면 각종 액세서리부터 단추, 지퍼 등 의류 부자재 업체들이 몰려 있고, 을지로에는 수도꼭지, 손잡이 등 건축 자재업체들이, 종로에는 기념품, 배지, 메달 관련 업체가, 세운상가에는 전자부품들이 널렸다”며, “예전에는 서울 성수동 쪽에 도금업체들이 일부 있었지만, 지금은 환경 문제로 인해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도금할 수 없어 인천이나 안산 쪽에 도금 및 표면처리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표면처리협동조합은 탄소중립 기조에 맞는 환경을 구축하면서, 표면처리업도 함께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건물 옥상에 71대의 대기 자가측정 및 대기오염 방지 시설을 설치해 운영함으로써 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높은 경비를 낮추고, 조합 내 연구실을 개설해 폐수처리 방법부터 도금액 등에 대해 연구해 업체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불량이 없는 제품을 생산하고, 환경문제에 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도금액 관리가 중요한데, 인천표면협동조합은 자체 연구를 통해 도금액을 매일 분석하고 데이터를 만들어 업체에 전달한다. 업체는 일괄적으로 전달된 데이터대로 제작하면 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공정 처리를 할 수 있다.
또한, 업체들의 혼란을 일으켰던 환경법 관련해서도 중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 이사는 물컵을 가리키며 “이 컵 안의 물만 놓고 보더라도 화학물질관리법, 대기오염방지법, 수질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보는 시각들이 다 다르다. 이런 것을 하나의 법으로 묶어 통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화확물질관리법의 유해화학물질 기준의 경우에는 대기업과 소기업의 공장이 동등하게 적용받고 있었는데, 이를 소량기준법으로 별도로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표면처리업은 무궁무진한 산업…인재 양성에 집중할 것
장석복 이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표면처리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표면처리로 유명한 나라가 일본과 독일인데, 우리나라가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장 이사는 “지난 파리 올림픽의 메달이 변질된 것만 보더라도 해외 기술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팔찌의 소재가 황동인데, 금도금했고, 우리 조합의 업체에서 표면처리를 했다. 9개월 동안 24시간 차고 다니면서 물이나 땀에 닿고, 이리저리 부딪히기도 했는데도 변색 하나 되지 않았다”며, 차고 있던 금팔찌를 보여주면서 뿌듯해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뛰어난 표면처리 기술력을 계속 이어 나가려면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인천표면처리협동조합은 5060 중장년과 청년층을 한데 모아 친환경 표면처리 교육생이라는 이름으로 7년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로부터 3년간 지원을 받았고, 지금은 인천시의 지원 아래 교육하고 있다. 조합은 표면처리 중 화학물질 다루는 방법, 도금 처리하는법 등 가장 기초적인 것을 2개월간 240시간 동안 가르쳐서 취업까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뷰하는 동안 하얀색 가운을 입은 교육생들이 교육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퇴직자를 비롯해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이 교육을 통해 약 80명의 인력을 배출했다고 한다. 올해에는 17명의 교육생을 받았는데, 인천, 부천, 강화 등 각지에서 모인다고 한다.
인천표면처리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에 열심인 이유는 인력난이라는 제조업의 고질적인 문제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장석복 이사는 “매스컴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한다. 오죽하면 외국인 근로자들을 찾아서 쓰겠나. 업체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일을 맡기는 실정”이라며, “외국인 근로자들은 기술을 배우려고 온 게 아니라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맞지 않으면 나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같은 업종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지금 우리가 희망을 거는 부분은 2세들”이라며, “현재 우리 조합에만 30~40명의 오너 자녀가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고, 일부는 자녀들이 직접 운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친구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이사에 따르면, 최근의 제조업은 최첨단으로 변화하고 있고, 표면처리업계 역시 발전하고 있다. 그는 “솔직히 1980~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도금 공장들이 열악했던 건 맞다. 하지만, 지금은 공장 내 설비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 등 공장 환경 자체를 쾌적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을 통해 모든 공정을 전산화로 구축해 놓고 있다”며, “건강검진의 경우에도 신경써서 받게 하고, 특수건강검진 대상자는 매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표면처리 관련 학부가 별도로 있지 않고, 4년제 대학의 금속공학과에서 표면처리를 조금 배우는 정도다. 1987년도에 인천의 한 대학에 도금 관련 학과가 전국 최초로 신설됐지만 2000년대 후반에 폐교됐다. 이에 업계가 모여 노력한 끝에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 캠퍼스에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스마트표면처리학과를 만들어 4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복지에도 힘쓰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70%에 달할 정도로 업계에서는 이들이 중요한 인력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천표면처리협동조합은 뿌리산업 근로자 지원 센터와 손을 잡고 E-9 비자에서 숙련 인력에게 발급하는 E-7 비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글 교육을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매주 일요일에 시행하고 있다.
장석복 전무이사의 꿈은 젊은 인력의 유입을 통해 우수한 표면처리 기술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그는 “업계 사람들이 각종 법 조항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연구,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현재 입주해 있는 회원사의 2세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젊은 인재들이 많이 들어와서 표면처리 업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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