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최근에 문화강국이다, K-팝이다 떠들지만, 유명 아이돌 밴드가 빌보트 차트에서 1위 하는 것이 내 삶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나의 삶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국위선양만이 문화강국의 길은 아니거든요. 문화생활은 내 삶이어야 합니다. 문화가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진짜 문화강국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광명시 시민회관을 찾은 중기이코노미 기자에게 (사)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김승복 단장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문화생활이라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닌, 각자의 삶에 스며드는 생활이고, 그 안에서 개개인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때, 진정한 문화강국이 된다는 말이다.
연주자와 시민 모두에게 ‘역할’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는 경기도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된 오케스트라이면서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수행하고 있다. 2002년에 창단해 사단법인으로서 23년간 안정적으로 활동하기까지는 김승복 단장과 단원들의 무던한 노력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튜바(tuba)를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KBS교향악단과 대만성 국립교향악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오케스트라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그는 키예프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 오케스트라 지휘과를 수료하며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지휘자로서 역량을 닦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경기도 광명시 주민에게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넓힐 기회를 열어주고,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연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를 설립했다.
김승복 단장은 “매년 5000명 이상씩 음대 졸업생들이 배출되지만, 사실 이 친구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 유학을 가거나 교직에 몸담는 경우가 많다”며, “오케스트라에 취직하는 전공자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실력이 출중한 몇몇뿐이다. 그마저도 정원이 나야 갈 수 있기 때문에 거의 운에 맡기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스스로 삶을 개척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음대 재학생, 경력 단절 연주자들과 함께 힘을 모았다.
이후, 중앙정부의 여러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서 정기공연이 잦아지자 유학을 마친 연주자들과 타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단원들이 합류하면서 조직도 좀 더 탄탄해졌다. 지금은 정규 단원 28명, 고정 객원 단원까지 합치면 50~60명 규모로 성장했다.
마을 음악회…오케스트라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공헌
김승복 단장은 사회적 기업이 경제적으로 뭔가를 사회에 기여하는 곳만이 아닌,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돕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0년에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았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심사 시, 공무원들이 오케스트라가 사회적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비웃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김 단장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공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굳이 소외계층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사회적 공헌을 다 한 거라는 말이다.
이런 활동은 지역 오케스트라가 응당 지역에서 해야 할 기본 역할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찾아가는 클래식 음악회, 마을 음악회, 직장인 콘서트, 교과서 음악회 등이 대표적이다.
김 단장은 “오케스트라는 꼭 우아한 옷을 입고, 공연장에 가서 봐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문턱이 높다. 나는 그 문턱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자’라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은 10대 청소년들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떼창을 연발했을 때라고 한다.
그는 “일단, 아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10대가 즐기는 음악을 함께 넣었다. 작년에는 뉴진스 음악을 연주했는데, 아이들이 떼창을 하는 거다. 그 순간, 나를 비롯해 우리 단원들도 마음이 벅찼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줬다고 생각하니 보람도 컸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악기들이 눈앞에서 움직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진짜 현장학습”이라며 뿌듯해했다.
이어 “클래식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를 함양시킨다는 둥의 얘기는 교과서적인 얘기일 뿐”이라며, “아이들의 이런 경험들은 평생 간다. 클래식 음악을 많이 접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 준다면 이들은 음악에 대한 편식을 줄이게 될 것이고, 우리로서는 미래의 고객에게 투자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전날에도 광명시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서 마을 음악회를 진행했는데, 중장년층을 비롯한 다양한 나이대의 수백명의 시민들이 가족 단위로 감상했다고 한다. 이후, ‘이렇게 고급진 음악을 동네에서 반바지 차림에 즐길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는 후기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갖고 있는 ‘사회적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전했다.
그는 “마을 음악회에 나갈 때마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우리의 음악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꼭 남긴다.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는 지역기업과의 상생 구조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5년 16곳의 지역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과 함께 네트워크를 맺었는데, 이곳에서 김 단장은 대표직을 맡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서로 구매자 역할을 했던 것에서 공동구매 쪽으로 확장하면서 교육프로그램 업체, 도시락 업체, 리모델링 업체, 청소업체 등 30여곳의 업체가 함께 하는 광명사회적경제사회적협동조합으로 몸집이 커졌고, 현재는 이사장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축구팀 서포터즈처럼…시민 관심이 오케스트라 자생력 원천
김승복 단장은 오케스트라의 작은 몸짓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음악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따라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단장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김승복 단장의 광명시에 대한 애정은 깊을 수밖에 없다.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광명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있다. 유럽의 경우 마을마다 좋은 환경의 야외 공연장이 잘 형성돼 있고, 마을 공원에서 연주하는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러운 것은 마을 단위로 활동하는 아마추어 합주단이라고 한다.
김 단장은 “아들이 현재 독일에서 공부 중인데, 아르바이트로 마칭 밴드(Marching Band)에서 연주 중이다. 그런데, 함께 단원으로 있는 사람들이 의사, 서점 주인 등 모두 아마추어이고, 전공자들보다 연주를 더 기가 막히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며, “밴드 자체적으로 캠프 같은 걸 열면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와서 레슨도 해주는 등 시스템도 잘 돼 있다”고 부러워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오케스트라조차 자생적으로 힘을 가져가면서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이에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는 시의 예산 지원과는 별도로, 독자적으로 공연 사업을 펼치기 위해 2013년도에 서포터즈를 창립했다. 현재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은 약 150명인데, 3000명이 넘어가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며 광명 시민의 관심을 촉구했다.
무료로 시민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는 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이지만, 시민회관에서 개최하는 정기 연주회 때는 유료 공연으로 진행한다. 물론, 청소년 5000원, 어른 1만원으로 영화 값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지만, 유료 공연을 보러 오는 시민의 마음은 좀 더 진지해지므로 그 값어치는 기대 이상이라고 한다.
김승복 단장의 다음 꿈은 타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정규 연주회 때 어떤 곡을 할까가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영역과의 협업을 통해 좀 더 확장하고픈 마음이 있다”며, “내 힘만이 아닌, 숟가락도 살짝 얹어 보기도 하고, 같이 고민도 해보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음악이 중요한 창작뮤지컬과 협업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음악에는 클래식, 비 클랙식이라는 게 없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든 자기가 행복하고 즐거우면 된다”며, “단지,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과 달리 음악의 사이클이 엄청 천천히 돌아간다는 것이 장점이다. 우리가 몇백년 전의 곡을 연주해도 다들 들어본 음악 아닌가. 그만큼 어느 세대에나 통용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식상하지 않고 가치가 있다”고 애정을 나타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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