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업계는 느리다.’ 물류라는 단어만 놓고 봤을 때 참 아이러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물류업계는 타 산업계에 비해 ‘뒤처졌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심지어, 요즘에도 오더 정보를 종이로 찾는 물류센터가 많을 정도다.
물류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는 자동화, 디지털화는 필수이지만, 대기업조차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외국산 장비에 기대어 물류설비를 운용하던 시절이었다. 니어솔루션(Near Solution)은 물류업계가 지니고 있던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솔루션을 개발함으로써 물류업계에 ‘혁신’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영교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솔루션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 중소 물류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AI 기반 아키텍처를 통해 작업 흐름을 좀 더 원활하게 하고, 물류센터 운영계획 예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경영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소프트웨어가 세상 바꾼다”…자동차 엔지니어 시절 겪은 ‘충격’
산업공학을 전공한 정영교 대표는 대우자동차의 엔지니어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입사했던 1992년만 하더라도 대우그룹은 재계 순위 2~3위를 다퉜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었고, 공대생으로서 국내 탑 레벨의 자동차 기업에서 생산기술과 기획을 맡는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상당한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가 하드웨어 만드는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업계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외국계 컨설팅 기업으로부터 솔루션을 받은 뒤, 업무 효율화가 높아짐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영교 대표는 “내가 입사했을 때만 하더라도 60~70명이 쓰는 부서가 있는 사무실에 공용 개념의 컴퓨터가 6~7대 있었을 뿐이었다”며, “당시에 업무 생산성 개선을 위한 소프트웨어들이 막 출시되던 때였는데, 네트워크나 서버 같은 개념도 그때 도입됐다”고 회상했다.
문제는 제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도면’ 관련 업무였다. 엔진부, 프런트, 의장부, 차체부 등 부위별, 시스템별로 수천장의 도면이 문서함에 보관됐는데, 10자리 번호만 보고 신입사원이 찾기도 힘들뿐더러, 같은 모델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도면 수령 담당자가 매번 받아와야만 했다. 설계부서 역시 고충은 있었는데, 똑같은 도면을 생산부서, 품질부서 등 각 부서에 전달하기 위해 여러장씩 그려야 했다. 또한, 각 부서의 신입사원은 연식이 바뀔 때마다 차량의 조각별로 나오는 10~20장의 도면을 펼쳐 놓고, 기존의 도면을 폐기하는 일을 하곤 했다.
획기적인 변화는 1994년 외국계 컨설팅 기업에 도면 관리를 의뢰한 이후부터 일어났다. 종이 도면을 ‘스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도면을 스캔해서 서버에 보관한다는 것은 매우 시대를 앞선 일이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그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또 하나 충격을 받은 게 뭐였냐면, 컨설팅을 위해 온 컨설턴트들의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도메인 지식에 컨설턴트의 프로세스 분석 역량을 소프트웨어로 개발해서 서비스하면 앞으로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회사 다니면서 소프트웨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IMF가 터지면서 M&A 되고, 원가절감 이슈 등으로 수만명이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함께했던 동기부터 선후배들이 계속 회사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나만의 ‘핵심역량’이 필요하겠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2003년도에 회사를 나와 내 경험과 IT 솔루션을 접목해 솔루션할 수 있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대우, 현대 자동차 등에 납품하는 국내의 수만개 부품 업체에 컨설팅을 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은 혁신을 거듭하는데…최적의 ‘물류 솔루션’을 찾아서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답게, 개발자와의 소통이 원활했던 정 대표는 2017년 10월, 니어솔루션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조, 반도체, 자동차 업계 등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가 물류업계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국내 대기업인 C사의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C사에서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일본 기업의 자동화 설비를 설치해 이용하고 있었는데, 내부적으로 일본기업이 만든 프로그램이 불편하다는 고충이 제기됐던 것이다. 예를 들면,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화면 디자인과 기능을 더 얹고 싶어도 일본에서 잘 해주지 않았고, 한번 일본의 엔지니어가 방문이라도 하면 높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프로그램만은 내재화하고 싶었고, 이를 위한 운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지던 때였다.
정영교 대표는 “당시 나는 물류설비나 물류업계 동향은 몰랐지만,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들, 생산공정과 작업장의 자동화를 위한 설비 설치와 이를 운영하는 데 드는 어려움은 이전에 이미 경험해 본 거였다. 이에 물류회사에도 똑같은 콘셉트로 접근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제조업에서 쓰는 설비 종류가 훨씬 많고, 오래된 장비가 많았음에도 최신 장비와 연결해서 잘 쓰고 있던 시기라 정 대표는 ‘내 경험치가 도움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총 3개 회사가 진행했던 경쟁 PT에서 PT 평가위원들은 ‘물류회사가 자동화를 진행할 때 안고 있는 고민을 잘 캐치하고 있고, 우리가 고민하고 있던 포인트를 정확하게 말했다. 이 점이 우리의 비전과 맥이 닿아 있다’며 니어솔루션과의 협업을 원했다.
니어솔루션 직원들 역시 ‘너무도 당연하게 소프트웨어로 개발이 가능한 그런 기능들까지도 놀라워하더라. 물류현장은 앞으로 할 일이 매우 많을 것 같다’는 미팅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니어솔루션의 제안은 당시 물류업계를 이끌어가던 C사에도 획기적이었다. 그동안 컨베이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컨베이어 옆에 설치된 PC를 통해야만 했고, 내용을 보기 위해서는 PC에 들어가거나 PC와 서버를 통신으로 연결해야만 했다. 하지만, 니어솔루션은 서버 구조가 아닌, 인터넷·웹으로 볼 수 있게 구성한 것이다.
웹 기반이기 때문에 휴대전화, 태블릿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편의성, 여기에 화면의 색감과 디자인도 더 세련됐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더 나아가 물류센터에 돌아다니는 로봇, 자동 포장기, 박스를 자동으로 접어주는 기기 등 최첨단 설비들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했다.
물류업계에 불어닥친 자동화 바람…‘전체 최적화’로 편의성 강화
어느새 물류업계에도 자동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이 시기 정 대표는 더 이상 타 회사와 기술적으로 차별성이 없겠다는 위기감이 퍼뜩 들었다. 그때부터 생산성에 주목했다고 한다. 같은 설비를 도입하더라도 어떤 회사는 생산성이 50% 오르고, 어떤 회사는 100% 개선되는데, 어떤 회사는 20%밖에 증대되지 않는다. 즉, 퍼포먼스가 잘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 숙련도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일례로, 시간당 1000개를 생산하던 것에서 2000개로 늘리면 100%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지만, 이게 100% 회사의 생산성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공정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즉, 부분 최적화가 아닌 전체 최적화에 대한 발상의 시작이었다.
정영교 대표는 “AI 최적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사람, 상품명 등 주문을 받으면 알고리즘을 통해 어느 공정에 어떤 식으로 작업 지시를 내려야 전체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지 풀어냈다”며, “3~4년 전만 하더라도 AI 기반의 주문 분석을 하는 기능을 하는 업체는 없었다”고 뿌듯해했다.
2년 전 니어솔로몬이라는 브랜드명으로 내보인 WES(Warehouse Execution System)가 대표적이다. AI 머신러닝 기반의 알고리즘을 탑재해 물류센터 내 자동화 설비를 제어하고, 운영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를 월 구독 서비스 형태로 내놓기 위해 클라우드 형태로 전환했다. 전산관리자가 없는 회사라도 접속만 하면 프로그램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회사의 사정과 환경에 따라 사용하고 싶은 범위를 정할 수 있어 현재 대기업부터 코스피 20위권의 물류회사, 중소 물류회사까지 다양한 곳에서 니어솔루션의 WES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디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과제에 선정됐고, 예산을 지원받아 2년 전에 모든 작업을 다 끝냈다.
이 중, 니어고(NearGO), 니어뷰(Near View)는 중견, 중소 물류기업의 디지털 전환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대기업은 최신 로봇을 연구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고, 시범적용해보는 조직도 있지만, 중소 물류센터는 IT 인력조차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니어고는 분류나 피킹에 특화된 지능형 솔루션이다.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2000~3000평(약 6611~9917㎡) 규모의 물류센터에서는 로봇을 도입할 여력이 없어 사람이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 피킹하는 곳이 꽤 많다고 한다.
정 대표는 “주차장 빈 곳에 초록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작업자들은 불이 반짝이는 곳에 가서 물건을 집어 온다. 그때 불빛에 몇개를 집어야 하는지 숫자가 나온다”며, “니어고는 프로세스를 분류하는 데 쓰면 좋을지, 피킹하는데 쓰면 좋을지를 하이브리드로 판단해 준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A라는 아이템을 구로구에서 10개, 강남구에서 5개 주문했다면 작업자에게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 게 용이할지 알려주는 것이다.
니어뷰는 작업현황을 대시보드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솔루션이다. 예를 들어, 회사 내 경영진, 센터 관리자, 작업자들이 보고 싶은 정보를 파워포인트 쓰듯이 툴 안에 있는 프로그램의 도구로 원하는 대시보드를 만들 수 있다. 코딩 없이 진행하기 때문에 타 업체에서는 3일 걸리던 작업이 니어솔루션에서는 1~2시간이면 된다. 업그레이드 시에도 사용자가 쉽게 수정할 수 있어 개발자 없는 회사도 편하게 쓸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자연어’ 기반 ‘AI 물류비서’로 발전…‘가상 예측’ 서비스도 구현
니어솔루션은 최근 3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이를 통해 소프트웨어 제품을 표준화하고, 안정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핵심 인재를 확보할 계획이다. 또, AI 기술과 LLM 모델을 연계한 AI 에이전트, MCP(Model Context Protocol) 등을 접목한 기술 서비스 출시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정영교 대표는 AI 기반 아키텍처를 위해 오는 하반기 ‘AI 비전 선포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는 이번 달 입고 금액이 얼마인지, 출고된 주문이 몇 건이나 처리됐는지 알고 싶을 때 프로그램에 접속해 로그인해서 메뉴를 찾아갈 필요 없이 말이나 키보드로 물어보면 해당 정보를 띄어주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AI가 누적된 검색 결과를 분석해 매일 자동으로 요약된 정보를 보내주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트윈을 통한 가상 예측 기반 서비스도 니어솔루션이 가고자 하는 길이다. 물류센터가 가장 바쁜 요일은 월요일이고, 작업자도 이때 가장 많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결정을 경험에 따라 처리해 왔지만, 앞으로는 일주일, 한 달 단위로 물류센터 운영계획을 예측함으로써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또한, 구독 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최신 기술을 재빨리 접목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로 멈췄던 해외 진출도 다시 가속화하겠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만 하더라도 니어뷰 솔루션을 중국의 20여개 업체에서 구매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고,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의 기업과 파트너를 맺고 라이센스를 판매하던 차에 코로나로 인해 해외 진출을 잠시 보류했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이번에 투자금 유치를 계기로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영교 대표는 “니어솔루션은 말 그대로 고객 가까이에서 그들이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우리의 마음을 회사명에 표현한 것”이라며, “대기업에는 생산성 향상을, 중소·중견기업에는 우수한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임으로써 국내 20만개 이상의 물류센터 발전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환히 웃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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