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만 의존하던 제조업 기술에 ‘혁신’ 부르다

1세대 그릭픽 디자이너에서 제조업 CEO로…한일금속㈜ 최하연 대표  

 

“왜 이 기술은 손의 감각에만 의존하는가?”

 

최하연 대표가 50년 역사의 알루미늄 제조업체인 한일금속㈜ CEO로 취임하자마자 들었던 의문이라고 한다. 조달청 지정 강소기업, 뿌리기술 전문기업 지정, 경기도 수출프론티어 기업 선정 등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제조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업환경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던 것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최하연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제조업은 남성의 영역이었고, 그들 사이에는 공장만 잘 돌아가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비철금속이 굉장히 거칠고, 웅장한 분야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여성만의 섬세함과 세밀함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이런 리더십은 작업환경뿐만 아니라 공정 과정 모두 포함해 이뤄져야 한다”며 여성 리더로서의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픽사에서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꿈을 꿨지만

 

한일금속은 1969년 설립한 ‘한일알미늄’이 전신으로, 서울시 을지로와 성수동에서 샤시로 시작해 압출, 아노다이징, 임가공 등을 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이후, 1979년 중소기업 전문단지를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목적에 따라 세워진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으로 이전하면서 한일금속 주식회사로 법인을 등록했다. 그때부터 알루미늄 피막 관련 기술에 집중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그 시절, 한일금속 최명규 창업자의 딸이었던 최하연 대표는 남동생과 둘이 혈혈단신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그래픽 디자이너의 꿈을 꾸던 학생이었다. 최 대표가 고등학생이었던 1985년도는 우리나라에 해외여행 자율화가 이뤄지기 전이어서 미국에 F1 비자를 받은 사람이 한 해에 5명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사람을 보기 힘들 때였다고 한다. 

 

17년 동안 미국에서 권총 사건, 컴퓨터 강도 사건 등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다는 최 대표는 현지의 데일리뉴스에도 나올 정도의 고속도로 교통사고까지 죽을 고비만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동부 미술학교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프랫 미술학교(Pratt Institute)에 진학해 1기 컴퓨터 그래픽스 전공자로서 픽사 인턴을 했다. 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 컴퓨터 소프트웨어실 환경, 낮과 밤이 바뀐 애니메이션 작업 환경의 여파가 심장에 무리를 줘 160cm의 키에 36kg일 정도로 삐쩍 마르는 등 건강이 안 좋아져 2003년도에 귀국했다.

 

이후, 몸을 추스르고 결혼과 육아를 거치면서 소위 경단녀로 살아온 최하연 대표는 코로나19 시기에 창업자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본인의 의지와 주주의 동의에 따라 2023년 3월 대표로 취임했다. 

 

‘여자 대표라고?’…제조업계 ‘유리 장벽’ 능력으로 깨다

 

최하연 대표는 비철금속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성 CEO다. 여자가 단독으로 CEO로 있는 회사는 대구광역시에 한 곳만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물론이고, 은행조차 회사를 팔라고 압박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작년 말 ‘계엄 사태’가 벌어진 이후, 근처의 700개 업체가 문을 다 닫을 정도로 경기가 안 좋아지자 은행의 압박은 더 심했다고 한다. 

 

내부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환경 개선을 위해 작업장 내 금연을 선포하자 고성이 오가는 등 변화에 대한 반대가 극심했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원자재 살 돈만 대세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발이 긍정적인 조화로 변화되고, 외부에서도 최하연 대표를 CEO로 인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우선, 최 대표는 작업 환경부터 변화를 줬다. 알루미늄은 인체에 무해하지만, 작업환경에서 생길 수 있는 작은 분진으로 인해 직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쾌적한 환경 조성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회사의 벽지부터 바꾸고, 페인트칠을 다시 하며 분위기에 변화를 줬고, 화장실도 현대식으로 싹 바꿨다. 

 

또한, 회사 재정에도 신경을 썼다. 결제를 제때 하지 않는 회사와의 거래는 줄여 나가고, 합리적인 경영 마인드를 가진 기업체와의 거래는 늘려 나갔다. 작업 효율화를 위해 노후화된 기계를 바꾸고, 불량률을 잡아내는 작업도 시작했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기술혁신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한일금속만의 노하우를 극대화하기 위해 특허 준비에 매진했다. 그것이 피막 공정과 압출 공정에 혁신을 불러왔다. 

 

알루미늄 가공 기술의 차별화…사람이 중심에 선 혁신

 

알루미늄은 대기 중에서 산화가 되기 쉬운 금속이다. 따라서, 알루미늄 금속을 사용하려면 더 두꺼운 산화피막을 입혀야만 한다. 이때 필요한 작업이 표면처리다. 이 공정을 아노다이징이라고 하는데, 전해액에 알루미늄을 담그고 전류를 흘리면 표면에 고르게 산화막이 형성되고, 이전보다 훨씬 우수한 내식성을 갖게 된다. 

 

문제는 그동안 장인의 노하우에만 의존하고 있다 보니, 불량이 나는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한일금속은 안정된 생산성 확보와 정밀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시간 기반 피막 균일화 기술’과 ‘수평 이동 방식 피막 형성 기술’ 등 산화피막 공정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 공정별 정확한 타이밍 체크와 수평 이동방식을 통해 알루미늄의 양극산화 피막을 균일한 두께로 형성할 수 있는데, 이 공정으로 인해 도료의 부착력이 더 향상된다. 이는 나이, 성별, 학력 등의 제한 없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될 뿐만 아니라, 자동화 공정의 문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불량률도 현저히 떨어졌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불량으로 인한 피해액만 일 년에 4000만원~1억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한 해에 80만원~100만원으로 확 줄었다고 한다. 

 

최하연 대표는 여전히 제조업계가 지닌 여러 관행과 편견이 미래의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예를 들면, 어음 결제 방식으로 인해 60~90일 동안 자금 순환이 힘든 점, 바이오나 AI 등 미래산업에만 투자가 집중되는 상황, 전기요금의 지속적인 인상 문제가 그렇다. 조금씩 오르던 산업용 전기료가 지난 정부 때 1.8배나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산업생태계 조율에 힘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탄소배출 저감 같은 환경개선을 도모하면 오히려 전기료가 배로 훌쩍 뛴다”며,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절전과 전기효율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정부에서도 설비 현황에 따른 과금, 매출을 고려한 할인, 분납, 연기 등의 고려를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하연 대표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아직도 탄소배출이 명확하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ESG 연구를 시작하려고 발을 뗐기 때문이다. 

 

최하연 대표의 꿈은 100년 이상 오래된 ‘명품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한 사업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먼저, AI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정상의 변수를 최적화하고, 예측유지보수, 위험요소 사전 감지 및 방지 시스템 등을 구축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모든 혁신의 중심은 ‘인간’이라고 최 대표는 강조했다. AI와 인간을 융합한 구조일 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이주민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다문화 위탁모 시설을 건립하는 게 목표다. 한일금속만 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50%로, 국적도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등 다양하다. 

 

최하연 대표는 “한 달에 두 번식 지역 학습방에 간식 배달을 2년째 하고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는 다문화 복지시설을 운영함으로써 지역의 아이들이 사랑이 충만하고, 바른 인성의 아이로 자라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