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승강장 틈새 ‘1cm’도 허락을 안 해요

전동차 안전발판 전문기업…㈜한국안전기술 김현정 대표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는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지하철역마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글씨로 붙어 있는 ‘발 빠짐 주의’ 문구다. 하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 중 승강장 틈새 사고까지 신경 쓰며 열차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은 드물다. 1분 1초 촌각을 다투는 현대인들에게 지하철은 ‘빠르게’, ‘정각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통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한국안전기술 김현정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승강장 틈새에 발이 빠져 넘어지거나,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이런 사고들은 안전 문제와도 직결되지만, 일상이 단절된다는 점에서 큰 불편함을 초래한다”며, “특히,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연락수단이 아닌, 개인 비서와 같은 존재다. 심지어 은행·주식거래는 물론 지갑의 역할까지 하고 있어 잃어버리면 생활 자체가 안 된다. 이에 유실물 낙하 방지와 발빠짐 사고를 방지하는 제품을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민의 눈으로 바라본 ‘지하철 안전’ 관리

 

한국안전기술은 김현정 대표가 일상에서 느꼈던 점을 아이디어화해 공모전에 내면서 창업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피아노를 전공한 후,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 평소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하루에 몇 번씩 승강장 틈새에 발을 헛디디거나 전자기기를 떨어뜨려 속상해하는 시민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에 2022년도에 서울교통공사 건축처에서 진행했던 안전발판 공모전인 ‘직원 및 시민 테마 제안’에 낸 아이디어가 1등으로 채택되면서, 그 가능성을 알아본 전문가들의 의견에 힘입어 2023년 1월에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당시 김 대표가 냈던 아이디어는 ‘승강장 연단 발빠짐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시설물 설치 방안’으로, 기존 제품보다 기술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전문가의 호평을 받았다. 

 

도시철도건설규칙에 따르면,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연단 간격이 100mm를 초과하면 안전발판을 설치해야 하는데, 기존 제품의 경우 실제 설치되는 안전발판의 길이가 25mm밖에 안 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에 ‘스크린도어의 구동력을 이용한 발빠짐 시설물’을 제안해 구조는 더 간단하면서 시공은 간편하고, 경제성까지 고려한 데다, 연단 간격에 설치되는 안전발판은 더욱 촘촘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유실물 방지망’부터 ‘초슬림 안전발판’까지

 

한국안전기술의 제품은 크게 연단 간격별로 나뉜다. 지하철역마다 연단 간격이 다르기 때문인데, 성신여대입구역의 경우 최대 280mm까지 벌어진 곳도 있다. 이런 승강장 틈은 갖은 사고의 원인이 된다. 일례로, 출퇴근 시간 인파에 밀려 발이 빠지기도 하고, 서로 부딪혀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가 제공한 유실물 표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선로 유실물만 1276건이다. 이런 선로 유실물 수는 매해 늘고 있는 상황으로, 조사를 진행했던 기간만 놓고 봤을 때, 전년 동월보다 14% 늘었다. 주목할 점은 유실물의 약 60%가 휴대전화, 이어폰 같은 전자기기라는 점이다. 

 

선로 유실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당일 회수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필요한 물건을 잃어버려 당황한 승객이 승강장의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등 각종 안전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먼저, 한국안전기술이 개발한 ‘유실물 방지망’은 연단 간격 50mm 이하의 직선 승강장에 설치하는 제품으로, 스프링 탄성을 활용했다. 따라서 귀중품을 떨어뜨리더라도 물건이 튕겨져 올라오게 함으로써 낙하뿐만 아니라 파손까지 방지해준다. 게다가 무채색의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설치되는 만큼, 샛노란색으로 디자인해 한눈에 잘 들어오도록 구현했다. 

 

당시 이 제품은 김포골드라인에서 가장 많은 유실물이 발생했던 김포공항역, 구래역, 고촌역에 2024년 4월부터 3개월간 시범설치했고, 그 효과가 입증돼 작년 8월에 양촌역까지 전 역사에 설치 완료했다. 

 

김현정 대표는 “우리 제품을 설치하기 전인 2022년부터 2024년까지 58건의 유실물이 발생했는데, 제품을 설치한 뒤, 3개월간 김포공항역에서 딱 한 번의 유실물 사고만 있었다. 이 사고도 제품이 설치되지 않은 방향에서 난 사고였다”고 자부했다. 

 

이어 “혹시 모를 다양한 유실물 사고 유형을 방지하기 위해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했다”며,“지장물 저촉 해소를 위해 30mm를 더 축소했고, 제품 길이는 150mm를 더 연장했다”고 덧붙였다. 

 

 

50mm~100mm의 연단 간격에 들어가는 ‘발빠짐 겸용 유실물 방지판’은 스테인리스로 제작해 넓은 틈새를 휠체어가 무리 없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피아노 건반같이 생긴 이 제품의 발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안정성을 고려했다. 사람이나 휠체어가 발판을 밟은 상태에서는 탄탄히 받쳐주도록 설계했지만, 열차가 발판을 스칠 경우를 대비해 발판 자체가 좌우로 이동해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이는 열차에 닿더라도 멈추지 않고 운행할 수 있고, 차체에도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이 제품은 9호선의 휠체어 칸에 시범 설치를 논의 중이다. 

 

100mm 이상 연단 간격과 곡선 승강장에 들어가는 ‘초슬림 안전발판’은 12mm의 국내 최소 폭을 구현한 제품으로, 서울교통공사와 오픈 이노베이션 과제로 진행하고 있다. 

 

당시 과제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연단 간격 10cm 이상의 공간에 설치해도 파손이 없고, 열차 지연이 없는 안전 기능이 확보된 승강장 시스템일 것 ▲승강장 연단 내에 매립해도 승강장 붕괴 우려가 없는 구조적 안전성이 확보될 것 ▲열차 움직임 감지 시 인입돼 열차와의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요구사항에는 배경이 있다. 기존에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역에 설치된 안전발판이 월 1회꼴로 탈락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차가 신호를 받고 정차해 있을 때, 통신 오류로 신호가 맞지 않을 때가 간혹 있는데, 이때 열차가 출발하면서 발판을 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한국안전기술이 개발한 100mm 이상 구간에 들어가는 제품은 자동복구 시스템을 통해, 열차가 치고 지나가더라도 스스로 정상 작동한다. 또한, 승강장 구조체를 일부 절단하거나 구조변경하지 않고도 설치할 수 있어 공사 기간이 단축돼 경제적이라고 김현정 대표는 자신했다. 현재 이 제품은 철도규격시험을 마쳤고, 11월 중 시범설치할 예정이다.  

 

 

‘아이디어 기술’로 시민 안전·관리 효율성↑

 

열차는 유동이 있고, 각기 간격도 다르기 때문에 ‘만약의 사항’에도 대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안전을 위한 최고의 방패막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안전발판 관련 회사만 존재할 뿐, 유실물 방지까지 해주는 제품을 개발하는 업체는 없다. 

 

그마저도 단가 문제와 공사 기간으로 인해 빠른 설치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데다 케이블로 연결을 해야 하므로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철도 공사 특성상 열차 운행을 하지 않는 새벽에 모든 공사를 끝마쳐야 하는데,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안전기술은 기존의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하루 만에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기술력은 공사 시간은 30~40%, 단가는 30%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현재 ‘스크린도어와 연동돼 작동할 수 있는 지하철 승강장용 입식 발빠짐 방지패드’, ‘승객의 발빠짐을 방지할 수 있는 지하철 승강장용 안전발판’, ‘초슬립 승강장 안전발판’ 등 총 12건의 특허를 획득했고, 2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김현정 대표는 안전발판 업체로서,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제품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김포골드라인에 이어 강남역 등 전국의 지하철 역사에 유실물 방지망부터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는 소지품 유실을 막아주고, 승무원들에게는 ‘소지품이 떨어졌다. 지금 필요한데 당장 꺼내달라’ 등 고객 컴플레인을 줄여 업무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승강장 틈새가 막혀 있으면 심적으로도 안전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해외에서는 일본만이 안전발판 설치가 돼 있을 뿐, 전체적으로 지하철 안전시설은 다소 미흡한 편”이라며, “앞으로 우리나라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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