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걀 고르기가 힘들어요! 유정란, 유기농 달걀, 동물복지인증 달걀 도대체 뭐가 다른가요?’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각종 홍보문구에 사람들은 더 헷갈리기만 한다. 소위 ‘좋은 달걀’이라는 종류만 여러가지이고, 이를 취급하는 브랜드만도 수십 가지가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좋은 달걀의 시작은 제대로 된 ‘평가’에 있다. 그리고, 그런 달걀을 만들 수 있는 ‘양계농장’의 환경 구축은 이런 평가 환경의 시발점이다.
IT강국 대한민국인데…양계산업은 왜 ‘사람’에 의존할까
인터넷 벤처기업이 한창 붐을 이루던 시기, 소프트웨어 벤처회사를 이끌었던 정진해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양계산업 시스템 개발과 현장 유지보수를 하면서 우리나라 농축산 업계를 직시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눈으로 바라본 ‘양계농장’의 현실은 나날이 발전하던 IT 기술 강국 대한민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한밭아이오티((HANBAT IOT) 정진해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만 하더라도 양계산업 쪽에 적용된 기술이라는게 센서에 의해 온도, 환기를 제어하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70~80%는 미국,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었다”며, “최근에 국내에도 이런 기술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많이 생겼지만, 대부분이 작물 쪽에 치중돼 있고, 축산 쪽에는 거의 도입돼 있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생육 기반의 제어, 관리 기술은 농가의 각종 데이터까지 관리하는 토대가 되므로 농가 발전을 위해서라도 국내 기술의 보편화는 꼭 필요했다. 이에, 정진해 대표는 2009년 한밭아이오티를 창업해 2018년 법인 전환을 하면서 양계농장 혁신의 발판을 이뤘다.

한밭아이오티가 처음 선보인 기술은 이력 기반의 ‘양계농장 통합관리 솔루션’이다. 사실 양계장을 관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소, 돼지는 인식표로 가축의 생애 전반을 관리하기 때문에 객체 관리를 할 수 있지만, 닭·오리는 객체마다 인식표를 붙이기 힘들어 부화한 날짜를 기준으로 하나의 군을 형성해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A농장에서 10만마리의 닭이 태어났다면 그 날짜를 기준으로 이력 코드가 발급되고, 그 자체가 하나의 군이 되는 것이다.
한밭아이오티의 통합관리 플랫폼은 이런 관리의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AI 기반 시스템이다. 양계농장의 질병 예방과 방역 관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부화부터 출하까지의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제어해 준다.
정 대표는 “사육, 산란, HACCP, 경영관리에 이르는 모든 농장 정보를 한 플랫폼에서 통합 관리하고, 축산물 이력제 등 정부기관 시스템과의 연동으로 정부와의 데이터 공유도 쉽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시간 방역위험 지수 분석 및 예측으로 최적의 방역전략 수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AI 기반의 출입 방역관리시스템을 통해 질병의 위험은 물론, 유사시 역학조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달걀 판정 기술력…외국보다 깐깐한 ‘한국 기준’에 맞추다
한밭아이오티가 업계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깐깐한 ‘달걀’ 판정 기술력 덕분이다. 전세계적으로도 어렵다고 여겨졌던 ‘달걀 등급 판정’ 기술을 유일하게 보유한 회사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먼저, 달걀 품질 판정을 하기 위해서는 품질 검사가 우선돼야 한다. 품질 방식은 음파 검사 방식, 빛의 투과를 통한 방식, AI 카메라 활용 방식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한밭아이오티는 비전 AI 기술을 통해 달걀 품질을 진행하고 있다.

제품의 외부 형태, 색상, 표면, 질감, 미세한 결함, 오염 여부 등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미묘한 특징들을 비전 AI로 분석하고, 딥러닝 기반의 AI 모델이 대량의 시각 데이터를 학습해 제품별 신선도 저하 수준과 숙성 정도를 예측해 분류한다. 또한, 특정 파장 대역의 광원을 제품에 투과시키거나 반사시켜 내부 성분 변화를 비파괴 방식으로 측정함으로써 신선도와 숙성도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들을 수치화해 제공한다. 이는 기존에 ‘이물질 검사기’, ‘달걀 내부 혈관 검사기’, ‘달걀 깨짐 검사기’ 등 분산화돼 있던 검사기를 통합한 것으로 좀 더 효율적이고, 정확한 달걀 품질 검사를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품질을 검사한 달걀은 평가시스템을 거쳐 등급을 판정받게 된다. 특히, 사람의 개입 없이 유럽, 미국 등 타 농업 선진국보다 까다로운 우리나라 달걀 품질 검사기준을 맞췄다는 데 의의가 있다. 수출 국가별로 달걀을 판정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예를 들면, ‘이 달걀은 유럽으로 갈거니 점박이 달걀은 정상 범주다’라고 입력하면 알아서 맞춰주는 식이다.
정진해 대표는 “외국에서는 점이 박힌 달걀이라도 품질에 이상이 없으면 A등급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관상 좋지 않은 ‘점박이 달걀’이라며 B급 판정을 내린다”며, “이 때문에 외국 계란 선별기계에 딸려 들어오는 검사장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고, 사람이 다시 투입돼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가 이뤄지곤 한다”고 지적했다.
한밭아이오티가 구축한 AI 솔루션은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달걀을 평가하고자 하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작년에는 축평원과 함께 과학적인 데이터 기반의 달걀 품질기준을 만들고, 정량화된 평가방법을 고안했는데, 이렇게 개발된 달걀등급판정 자동화시스템인 ‘에그스캔(Egg Scan)’은 평택의 한 식품회사에서 현장 실증 중이다.
샘플 평가→전수 평가…‘고품질 달걀’ 기준, 농수산 전반으로

현재 달걀 품질평가는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다. 3만수 이상의 양계 농가에서만 의무적으로 이행하는 사항이고, 그마저도 전수 평가가 아닌, 샘플 평가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더 안전한’ 달걀을 공급하기 위해 전수 검사방식을 고려 중이다.
이에 대한 준비로 내년에는 몇몇 농가에서 한밭아이오티의 AI 솔루션을 통해 전수 검사하는 방식을 시범 사업할 예정이다. 이 시스템이 완비되면, 등급 평가가 완료된 달걀에는 ‘판정’이라는 글자가 찍히게 된다.
삶은 달걀, 구운 달걀의 품질 검사기술도 개발 중이다. 또한, 다른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어 앞으로 시장 확대가 주목된다.
정진해 대표는 “비전으로 이미지를 분석해 검사하는 기술 중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가 달걀이다. 그래서 많은 개발업체에서 기술개발에 실패했던 것”이라며, “앞으로 조개, 바지락 등 수산물부터 농산물, 과일 같은 농수산물 전반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쌓아온 기술을 다른 창업 기업들과 공유해 초기 기업의 실질적인 성장을 돕는 데 일조하고 싶고, 타 산업군으로의 확장도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진출도 진척되고 있다.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 중심으로 한밭아이오티 제품 도입에 대한 니즈가 강하고, 남미에서도 관심을 두고 컨택해오고 있다고 한다.
정진해 대표는 AI 기술을 통해 농수산 산업의 품질 관리 표준화를 이끌어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객관적인 평가 기술을 통해 농가에는 품질 균일화를, 소비자에게는 더욱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