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기차역에서 이별하는 장면을 시나리오 형식으로 써달라”고 요청해보았다. 놀랍게도 챗GPT는 몇 초만에 다음처럼 시작하는 대본을 만들어냈다.
기차가 도착하자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
[남자] 정말 떠나는 거야? 우리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야?
[여자] 미안해. 그 약속은 이미 끝났어. 우리가 함께한 추억은 영원할 거야….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의 대답에 틀린 사실이 많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지어내는 영역에선 그건 별 문제가 안 된다. AI는 정보 제공이나 비서 역할을 넘어 예술 창작자까지 넘보고 있다. 이런 챗GPT가 사회에 준 충격은 2016년 ‘알파고’ 등장 때보다 훨씬 크다.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시합은 그저 지켜봤을 뿐이지만, 챗GPT는 수억 명이 직접 사용해봤기 때문이다.
AI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확실한 건, 그것이 인간 노동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리란 것이다. 따라서 ‘알파고 충격’ 당시 제기된 질문을 우리는 다시 진지하게 꺼내게 된다. AI가 인간 노동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얼 해야 하나? ‘일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AI가 발달한다고 인간 일자리가 대번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의 양이 유지되더라도 열악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로 채워질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극단적으로, AI의 작동을 떠받치는 노동과 AI에 의해 철저히 통제당하는 노동만 남을 수 있다.
이미 고스트 워크(ghost work)라고 불리는 ‘숨은 노동’이 AI 작동을 떠받치고 있다. 챗GPT가 윤리적으로 적절한 대답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윤리적으로 해로운 데이터를 따로 레이블링해서 AI에게 학습시켜야 하는데, 그 레이블링 작업은 저임금으로 고용된 케냐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그들은 매일같이 살인, 폭행, 범죄에 관련한 정보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한편 세계 최대 유통업체 아마존의 노동자들이 하는 상품 분류작업은 AI에 의해 작업 속도와 강도가 완벽히 통제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일자리라도 얻으려 경쟁하는 것이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라면 끔찍하다. 우리가 진짜 바라는 건 AI의 도움을 받으며 더 창의적인 노동에 종사할 기회, 또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일’을 찾을 자유다.
AI 시대, 더 나은 ‘일의 미래’에는 기본소득이 필수
의미 있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 19세기 말 사회주의자이자 예술가적 장인인 윌리엄 모리스는 ‘모든 노동이 예술이 되는 사회’를 꿈꿨다. 일은 즐겁고 예술적인 행위가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과도하게 힘들거나 불안한 작업 조건은 사라져야 한다. 그는 인간이 일을 예술 행위처럼 할 수 있을 때, 삶도 아름답고 이성적으로 변하리라고 보았다. 이에 더해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의 요소에 작업의 자율적 통제 가능성, 사회적 인정과 존중, 공동체에 기여하는 효능감 등을 추가할 수 있다.
AI의 통제 아래 대다수 사람이 열악하고 소외된 노동을 반복하고 AI가 창출한 이익은 극소수가 차지하는 미래와, AI를 인간에게 봉사하게 만들고 인간은 초생산성의 혜택을 누리며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미래. 두 미래 가운데 당연히 더 나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주목한다. 후자의 미래로 가는 핵심수단이라서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소득은 노동과 단단히 연결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상식에 도전한다. 충분한 기본소득이 제공되면, 사람들은 열악하고 보람 없고 자존감 떨어뜨리는 노동은 거부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이라면, 기업과 정부는 노동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더 넉넉한 보상과 작업환경 개선을 약속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시간자본’을 얻게 되고, 이를 활용해 적성에 맞는 일을 탐색하고 역량을 계발해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로 이동할 것이다. 기본소득 이론가 파레이스(Parijs)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자신에게 좋은 일인지 알고 있으며,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금전보다 ‘자체의 매력’ 때문에 일을 선택할 수 있어 ‘좋은 일’이 사회에 늘어나리라고 본다.
그렇지만 기본소득 보장에는 막대한 재정이 든다. 이 재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런데 우선 AI가 만들어내는 수익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부터 질문해야 한다. 시중에 이미 챗GPT가 저자가 돼 지은 책들이 팔린다. 이 책의 인세는 누구에게 지급해야 하는가?(이런 종류의 책을 낸 출판사 한 곳은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AI의 성능은 인터넷에 공개된 대규모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 결과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조성해낸 원천 데이터를 가지고 수익을 발생시켰다면, 그 수익 전체를 인공지능 소유주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업이 다 차지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 그렇다고 방대한 데이터에 포함된 개별 데이터에 일일이 보상할 수는 없다. 원천 데이터를 ‘공유부’로 보고, 이를 활용해 얻은 이익 일부는 ‘모두의 몫’이니 사회적으로 환원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
지난 대선에 필자는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해 ‘데이터배당 기본소득’을 공약했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빅테크기업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얻은 초과이익 일부를 ‘데이터세’로 거둬들여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주자는 것이다. AI를 똑똑하게 만드는 재료인 데이터를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제공했다면, 그들은 AI가 창출한 수익에도 몫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어떤 방식이든, AI가 만든 수익의 정당한 사회적 분배 방식을 서둘러 합의해야 한다.
1960년대에 제작돼 몇 번이나 리메이크된 SF 드라마 ‘스타트렉’에서, 인류는 물질적 궁핍과 생계노동에서 해방되자 우주로 모험을 떠난다. AI의 놀라운 발달에 더해 국가의 혁신적 역할과 기본소득이라는 과감한 분배 제도가 만난다면, 우리의 미래에도 위대한 모험의 시대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중기이코노미 객원=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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