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었다. ‘전쟁을 잠시 멈춘다’는 정전협정 체제에서 전쟁 상태를 완전히 끝내는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누구나 바랄 것이다. 하지만 정전협정 70주년에 부산에는 미 핵잠수함이 입항하고, 평양에선 중국과 러시아 외교관을 불러 탄도미사일을 과시했다. 남북한은 각각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동맹 강화를 부르짖었다. 한반도는 냉전의 해빙은커녕 도리어 ‘신냉전’으로 들어서고 있다.
엄중한 안보 현실 때문에 ‘평화를 위해선 힘이 최우선’이란 주장으로 기울기 쉽다. 그러나 국방력은 전쟁을 잠시 미루는 조건일 수 있어도 평화를 앞당기는 수단은 아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를 통해 얻는 이익을 늘려야 한다. 남북한이 협력해 공동의 경제이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평화의 길이다. 이익 공유 시스템과 강한 안보는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일이 아니다.
특히 기후위기처럼 국경을 초월하는 문제에는 남북한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 대응이 남북한 협력의 좋은 물꼬가 될 수 있다.
개마고원 재생에너지 개발수익을 기본소득으로
한국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현 25기가와트 수준에서 500~600기가와트 수준으로 늘리고, 약 2800만 톤가량 그린수소(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좁은 국토에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려니 땅값도 땅값이거니와 어려움이 크다. 재생에너지로 겨우 전력을 충당하면 수소는 별도로 수입해야 하는데 비용이 막대하다.
북한 개마고원 일대를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로 개발하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개마고원은 총면적 4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곳은 태양광, 풍력 자원은 물론 수력 자원까지 풍부한 천혜의 보고이자 ‘한반도 공유부’다. 개마고원의 태양광 자원 잠재량은 1000기가와트로 2050년 한국에 필요한 500기가와트, 그 3분의 1인 북한의 필요량을 채우고 남는다. 또 개마고원에서 얻은 재생에너지로 2050년 남북한에 필요한 그린수소를 모두 생산할 수 있다. 초과 생산한 전력과 수소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판매하면 된다.
개마고원 재생에너지 공동개발에 드는 비용은 200조원으로 추산되며, 추후 경제적 효과는 최대 2000조원에 이른다(아시아개발은행 김대영 컨설턴트, 2022). 사업이 성사되면 2050 한국의 탄소중립과 에너지 자립은 물론, 남북한 공동번영의 기반을 탄탄히 닦을 수 있다.
물론 첫 삽을 뜨려 해도 현재의 남북한 긴장이 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이 사업 논의를 일단 시작한다면 긴장 감소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국제개발은행 등 국제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북한에 구체적 제안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또 하나 관건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도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협력 사업들이 중단된 데는 북한 정부의 폐쇄성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한국 정부가 사업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부족한 탓도 있었다. 한국 정부로서는 국내 여론이 남북협력을 강하게 지지하지 않는 한 적극 나서기 어렵고, 국민은 남북협력이 자신에게 상징적 차원을 넘어 실질적 이익이 된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를 반전시킬 방안이 필요하다.
그 방안은 남북협력개발의 이익을 한국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배당하는 것이다. 이를 ‘평화배당’이라고 부르자.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개발기금’을 조성해 그 기금으로 개마고원 재생에너지 공동개발에 투자한다. 기금의 원천이 국민 세금이므로 모든 국민에게 배당계좌를 주고, 국민이 원하면 개별적으로 또는 집합적으로 더 투자해서 추가 수익을 얻게 한다.
재생에너지를 본격 생산하면 개발이익은 바로 국민의 소득향상으로 돌아온다. 한국 국민들은 남북협력을 상징적 이유뿐만 아니라 실질적 이유로도 지지할 것이고, 한국 정부도 더 적극적으로 남북협력에 나설 것이다. 남북이 공동개발하는 만큼 북한 주민도 기본소득을 받아야 하겠지만, 북한 정부에게 개발이익의 사용방식을 강제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단, 무기 개발이 아닌 경제개발과 주민복지 향상에 쓸 것을 사업추진 조건으로 북한에 요구할 순 있을 것이다.
비무장지대엔 평화공원을, 접경지대엔 소득보장을
이번에는 비무장지대로 눈을 돌려보자. 비무장지대(DMZ)는 정전협정에 근거해 남북 군사충돌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설정한 구역이다. 이름과 달리 남북이 중무장한 채 서로 감시하는 지역이고, 손때 묻지 않은 자연이란 통념이 무색할 만큼 군부대의 지뢰 살포, 폐기물 투기, 불법적 수렵채취 등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비무장지대가 남북한 대치의 최전선이라 생기는 문제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하는 방안, 곧 남북이 비무장지대를 공동 활용하거나 개발하는 방안이 꾸준히 제안됐다. 비무장지대를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제안은 1971년에 처음 나왔다. 비슷한 제안이 많았지만 실행되지 못한 건 북한과 협의 없는 남한의 일방적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비무장지대 가까운 접경지대 주민이 논의에서 배제된 것도 문제다.
비무장지대를 유엔 등 국제사회의 협조 속에 세계적인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들고, 남북한 접경지대 주민들이 일정한 프로토콜 하에 공원을 공동 관리하면 어떨까. 생태평화공원 관광수입 등 이 구역의 평화적 이용에 따른 수익은 남북한 접경지대 주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제공하자. 현재 고령화와 소득감소로 불안정한 접경지대 주민들에게 평화공존의 관리자 임무를 맡기고, 그들의 소득안정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뽑고 평화를 심자.
기본소득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사명 지향적 해법’으로 제안됐다. 우리 앞에 놓인 도전 과제에 대해, 기본소득과 다른 해법들을 연결하면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인다.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이라는 과제를 달성하는 데도 기본소득은 큰 몫을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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