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임금’ 조례, 지자체장 인사권 침해 아니다

사용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자유 일부 제약한다 해도 무효 아냐

 

국가가 법률로 정하는 최저수준의 임금은 최저임금이다최저임금법에 따라 노사공익대표 각 9명씩 모여 최저임금위원회를 구성하고 매년 최저임금액을 결정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다. 

그런데 지난 2013년 경기도 부천시에서는 생활임금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조례를 통해 물가와 노동자의 생활을 반영해 최저생활비를 보장해 주자는 개념으로그 금액이 최저임금보다 높아 화제가 됐다생활임금의 탄생은 최저임금으로 실질적인 노동자의 생계보장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기인한다그러나 법률에 근거해 결정되는 제도가 아니다 보니 생활임금을 시행하는 지방자체단체에서는 법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생활임금을 처음 도입한 부천시의 경우당시 법제처에서는 법률에 근거해 시행되는 제도가 아닌 만큼 최저임금법에 따라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면 되는데 시장에게 추가적 법적 의무를 부여하여 고유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법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6년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60여 개가 넘는 지자체에서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위해 생활임금제를 확대 시행했다현재는 100여 개가 넘는 지자체의 대표적 저임금 노동자 보호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부산광역시가 지방의회의 생활임금 조례안에 대해 법원에 무효소송을 냈다앞서 논란이 된 생활임금 조례가 지자체장에게 강제하는 생활임금 지급 의무를 두고 인사권 침해 논란이 발생해 법정으로 간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 특별2부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내용의 근로조건의 기준을 조례로써 규정하고 그 내용이 사용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자유를 일부 제약한다 하더라도 조례가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대법 2022추 5156)

 

사건의 경위=부산광역시 의회는 지난 2022년 3월 부산광역시 생활임금 조례 개정안을 의결했다개정 조례안의 주요 내용은 시장이 생활임금 적용대상이 되는 소속 노동자의 호봉을 재산정해 생활임금을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시장은 해당 조례의 개정안이 시장 고유의 인사권을 침해한다며 재의를 요구했다그러나 시의회는 2022년 6월 조례안을 원안대로 재의결했고시장은 해당 조례안이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의 쟁점=부산광역시 의회는 2022년 3월 부산광역시 생활임금 조례 일부 개정조례안’(이하 부산시 생활임금 조례’)을 의결했다주요 개정 내용은 제11조의 생활임금의 장려’ 조항으로 이에 따르면시장에게 적용 대상 전직원을 대상으로 호봉 재산정을 통해 생활임금을 반영해야 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생활임금의 결정 구조는 부산시 생활임금 조례에 따라 시장이 위촉한 생활임금위원회가 생활임금의 적용대상과 생활임금액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

 

부산시는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을 통해 시장이 생활임금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된 적용대상을 상대로 호봉 재산정을 통해 생활임금을 반영하도록 정한 규정을 문제 삼았다.

 

생활임금의 적용대상에는 시와 공공계약 등을 체결해 사무를 수행하는 회사의 노동자 등 시 소속이 아닌 노동자도 포함되는데이는 시의 자치사무가 아니고 상위법령에서 시에 그 사항을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바 없으므로 조례의 제정대상이 아니라고 무효를 주장했다또한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부산시장의 인사권과 예산안 편성권을 침해한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는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근로조건을 결정하도록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하고 있는데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이를 침해한다고 문제를 삼았다.

 

 

대법원의 판단=대법원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국가사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인지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고유의 자치사무에 해당한다 판단했다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는 원칙적으로 상위 법령의 위임이 없는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넘어서서 조례를 제정할 수 없다.

 

부산시 소속 노동자를 넘어 부산시와 공공계약을 체결한 업체 소속 노동자에게도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사무가 국가사무라 주장하는 원고의 문제제기에 대해 재판부는 주민이 되는 근로자가 시에서의 기본적 생활여건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주민복지에 관한 사업이라 판단하며부산시 의회의 손을 들어 줬다.

 

이뿐만 아니라 생활임금의 적용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호봉을 재확정해 생활임금을 반영토록 정한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원고(부산시장)의 예산안 편성권과 고유의 인사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조례안 제3조 제1항에 따라 원고인 부산시장이 생활임금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적용대상을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는 만큼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에 의해 호봉이 재산정 되어야 하는 적용대상은 원고에게 이를 결정할 권한이 인정되어 해당 조례안이 지자체장의 예산안의 편성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여 위법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원고(부산시장)의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배척했다지방자치법 제118조에 따라 지자체장이 소속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전속적 권한인 인사권에 속한다그런데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원고에게 임금에 관해 생활임금 이상을 지급케 강제함으로 해서 일정한 의무를 부여해 원고의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원고의 주장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자체장이 소속 직원에 대해 가지는 채용 및 관리에 관한 권한이 사전개입이 허용되지 않는 고유권한임을 인정하면서도 지방의회가 집행기관의 인사권에 소극적·사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지방자치법이 정하는 지방의회의 집행기관에 대한 합법적 견제의 범위내의 적법 행위라는 취지로 판결(대법원 선고 96추 138)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러한 판례를 법리로 해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시 소속 직원의 임금 지급에 있어 호봉 재산정으로 생활임금 반영에 따른 임금상승 효과를 고르게 누리도록 하라는 지침을 제공해 원고의 권한을 일부 견제하려는 취지일뿐, (원고)소속 직원에 대해 특정한 임금 지급을 강제하는 등 원고의 임금 결정에 관한 고유권한에 대한 사전 관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마지막 쟁점인 이 사건 조례안 제11조 제3항이 근로기준법 제4조가 규정한 근로조건 결정에 있어 노사대등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관해서도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제4조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형식 및 실질에 있어 대응한 입장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근로조건을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한다이는 고용관계에서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제4조의 입법취지를 근로조건이 당사자 사이에 자유로운 합의에 따라 정해져야 하는 사항임을 강조해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판례(대법원 선고 2018다 200709)를 근거로 근로기준법 제4조가 근로자에게 유리한 내용의 근로조건의 기준을 지방의회의 의결로 정하는 것을 제한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근로자에게 유리한 내용의 근로조건의 기준을 조례로써 규정하고 그 내용이 사용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자유를 일부 제약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내용을 규정한 조례가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판결의 의의=이번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그 동안 민주당을 중심으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 노동행정의 일환으로 시행한 정책에 대해 국민의 힘 소속 지자체장이 문제를 제기해 정치적 공방으로 여겨졌다그러나 이 사건은 인사권을 비롯한 행정권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간 권한의 문제에 대한 본질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대법원이 생활임금으로 논란이 된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간 권한의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정교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