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이나 임금수준이 우리나라처럼 차이가 많은 나라는 없다. 중소기업은 낮은 영업이익률로 인해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거나 기술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악순환에 빠진다.”
김남주 민변 민생경제위원장(변호사)은 최근 열린 중소기업 현안 국회 전문가 토론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상 지위에 ‘차이’가 발생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소기업의 취약한 협상력으로 대등한 협의가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여 공정하고 안정적인 거래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수직적인 거래관계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불균형을 해소하자는 얘기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협의요청권 부여=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현상은 사회 전체의 일자리를 줄이고,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총 영업이익의 57.3%를 전체 기업의 0.3%에 해당하는 대기업이 가져가고 있고, 99%의 중소기업은 25%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 또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대기업의 47.6%인 245만원, 중소기업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0%에 불과하다. R&D 격차 역시 벌어져, 중소기업 근로자 1인당 연구개발 투자는 대기업의 26.9%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이익률이 낮은 중소기업은 임금 지불여력이 약화되고,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또한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원인이고,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원인 중 하나인 수직적·계속적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거래상 지위를 대등하게 만드는 것은 개개의 중소기업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보면 중소기업 10곳 중 5곳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수급 구조”라며, “개별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하거나 관련 조건을 요청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협동조합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중소기업계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구조적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협동조합에 협의 요청권을 부여해 협상력을 제고하고 협동조합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행법은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신해 단체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협의 요청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와 권한이 부족해 실제로 협상으로 이어지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우월한 지위에 의해 불리한 거래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토로다.
◇호주·일본, 협동조합에 협의요청권 부여=중소기업협동조합의 거래조건 협의요청권을 부여한 사례는 호주를 참고할 수 있다.
호주는 경쟁소비자법에 따라 기업들의 단체교섭을 허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쟁 및 소비자위원회(ACCC)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2021년 관련법 개정을 통해 매출액 1000만 호주달러 이하의 중소기업은 ACCC의 사전 승인 없이도 단체교섭을 진행할 수 있다.
이와같은 법 개선은 2018년 PaintRight 협동조합이 도매업체와 단체교섭을 진행해 거래비용 절감과 더 나은 조건 확보 등의 성과를 거둔 이후 이뤄졌다. 57개 페인트 소매업체로 구성된 PaintRight는 2018년 8월 ACCC에 페인트 도매업체 등 30개사를 상대로 가격 및 기타 조건을 협상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교섭 통지서를 제출했고, ACCC는 단체교섭을 허용했다.
ACCC는 이 단체교섭을 통해 ▲공익으로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고, ▲교섭 상대방과의 계약과 관련해 더 나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개별적인 협상으로 얻어내기 어려운 유리한 가격을 기대할 수 있고, ▲다른 페인트 소매업체와의 경쟁도 활발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협동조합도 이와 유사한 제도로 단체협약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등협동조합법에서는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신해 거래상대방과 가격, 물량, 시기 등 거래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동조합에 의한 단체협약은 독점금지법 적용에서 제외해, 실질적인 협상력을 보장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안 발의=국내에서는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 오세희 의원이 중소기업협동조합에 거래조건을 협의할 수 있는 협의요청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신해 대기업 등 거래상대방과 단체계약 조건에 대해 협의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거래상대방이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하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협의요청 행위에 대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실질적인 협상력을 높이도록 했다.
오세희 의원은 개정안 발의 후 “협동조합이 대기업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상생형 경제구조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남주 민변 민생경제위원장(변호사)은 납품대금 연동제로 인해 과거보다 진전되기는 했지만, 납품대금을 깎는 것을 덜하게는 해도, 납품대금을 올릴 수 있는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해외에서도 중소기업의 단체협약을 허용한 사례들을 참고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힘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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