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에서 조건부 사직서를 요구하거나 제출하는 사례가 종종 존재한다. 예컨대, 일정한 의무 위반이 재차 발생하면 제출된 사직서를 처리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와 함께 사직서를 제출하는 경우다. 동일한 비위행위가 다시 발생했을 때, 해당 각서의 내용을 근거로 자진퇴사로 해석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동일한 비위행위가 발생할 경우 사직하겠다는 의사표시는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의 발생에 대해 효력 발생 여부가 결정되는 ‘정지 조건부 법률행위’에 해당한다. 근로자의 사직의 의사표시는 ‘불요식행위’이므로 법률행위의 특정한 방식을 요하지 않는다. 구두나 서면 등 방식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어도 근로자가 구두나 전화, 문자 등으로 사직의 의사표시를 명확하게 표시했다면 ‘근로계약의 해지통고’로 볼 수 있다. 이는 해고가 반드시 서면으로 시기와 사유를 명시해야 하는 요식행위인 것과 구별된다.
정지 조건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147조 제1항). 동일한 비위행위가 재발될 경우 사직하겠다고 기재한 각서가 사직의 의사표시로서 효력이 있기 위해서는 사직서가 시말서와 별개로 근로자의 진의에 의해 작성한 것이어야 하고, 사직서 수리요건이 되는 상당한 귀책사유가 발생해야 한다. 조건부 사직의 의사표시에 착오나 사기, 강박이 있었다면 취소할 수 있으며, 비진의표시로서 상대방이 진의가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다(민법 제107조, 제109조 내지 제110조). 다만, 사직서 제출 당시, 진정 바란 것은 아니어도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면 비진의표시라고 볼 수 없다.
법원이 조건부 사직의 효력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근로자가 회사에 징계해고결정의 철회를 요청하면서, 이후 사납금 미수금이 일정 금액 이상 발생할 경우 제출한 사직서를 회사가 임의로 수리하더라도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와 작성일자가 공란인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에 회사가 징계 결정을 철회했다. 이후 근로자가 택시영업 근무를 태만히 하거나 사납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아 회사에 상당한 재산상 손해를 입힌 경우, 회사가 별도의 징계해고 절차없이 제출된 사직서를 수리하는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는 일종의 해지권유보특약으로 보았으며, 해당 특약은 근로자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한 자발적인 것으로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1992.01.16. 선고 91가합4910 판결).
조건부 사직의 효력을 부정한 사례도 있다. 근로자는 무단결근 사유로 시말서를 제출하며, 차후 동일한 일이 발생할 경우 어떠한 조치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을 기재하고, 그 위에 ‘차후 결근 및 지각이 1회라도 발생하면 사직하겠다’는 내용을 추가로 서약했다. 또한, ‘시말서에 근거하여 이유없이 제출함’이라는 문구를 자필로 보충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해당 사직서는 회사에서 수리되지 않은 채 보관 중이었고, 일자와 서명·날인 부분이 백지상태에 있었으며, 사직서에도 언제 어떠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사직하겠다는 내용 등이 전혀 표시되지 않은 채 단지 시말서에 근거해 제출한다고만 돼 있어, 이는 단순한 무단결근에 대한 반성과 재발방지 약속의 의미를 넘어서는 진정한 사직의 의사가 표현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03.02.04. 선고 2002구합25874 판결).
즉, 반복적인 비위행위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진의에 의해 사직서를 작성한 경우에는 효력을 인정한 반면, 조건부 사직을 강요하거나 사직의 진의를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조건부 사직서가 기재된 내용대로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해당 사직서를 작성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정한 의사에 따른 것인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미제출 시 불이익을 예고하는 등 강압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사직서 작성의 진정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따라서 여러 차례 시정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마지막 수단으로 기회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작성해야 한다. 또한, 사직서에 기재된 조건에 따라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므로, 모호한 문구 없이 명확히 작성해야 하고, 해석 시에도 신중을 기해 불필요한 분쟁을 줄여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송담 노무사사무소 김현희 대표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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