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야, 이 사진을 지브리 풍 이미지로 그려줘.”
오픈 AI의 대화형 챗봇 챗GPT가 이미지 생성 기능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유행을 이끌고 있다. 사진을 그림으로 변환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기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개성있는 화풍을 반영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브리뿐만 아니라 디즈니나 심슨 가족 등 유명 그림체를 따라 만든 이미지를 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유행이 크게 번지면서, 챗GPT의 월간 사용자가 3월말 기준으로 한달 전보다 122만명 증가했다는 통계가 나오구 있다.
그러나 마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직접 제작한 듯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생성형 AI의 학습데이터 공개 관련 논의와 입법과제’ 보고서는, 생성형 AI를 둘러싼 저작권 논란을 두가지 논점으로 요약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된 결과물이 다른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는가”와, ▲“생성형 AI의 학습 과정에서 다른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는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저작권법은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만을 보호하는데, 특정 화풍은 구체적 표현이 아닌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특정 화풍을 반영한 결과물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 논점의 경우에는 결론이 다르다.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생성형 AI가 특정 화풍으로 대표되는 저작물을 학습해 유사한 화풍의 이미지를 생성했다면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저작물의 전송과 복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학습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데이터세트에 포함된 개별 저작물의 저작자로부터 이용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문제는 생성형 AI가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공개되지 않아, 저작물을 정당하게 이용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학습 과정에서의 저작물 무단 이용에 관한 여러 저작권 침해 소송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분쟁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AI의 학습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하는 입법시도가 각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분쟁을 예방하고 생성형 AI 시대에 맞는 저작물 이용 규범과 이익배분의 원칙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미·EU, AI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화 입법 시도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은 이 사안을 저작권 관련 법보다 AI와 관련된 별도 법을 통해 규율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생성형 AI 학습에 이용된 저작물에 관한 통지 의무를 신설하고, 관련 정보를 포함한 공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또 AI의 저작물 학습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본 또는 기록의 제출을 연방법원이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연방 차원의 입법시도가 아직 발의 수준에 머무른 가운데,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해 9월 생성형 AI의 훈련데이터에 관한 법을 만들며 앞서 나갔다. 생성형 AI 개발자에게 모델 훈련에 사용된 데이터의 출처, 소유자, 데이터가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되는지 여부, 구매·이용허락 여부 등을 웹사이트에 공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EU 역시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를 인공지능 관련 별도 법제를 통해 규정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법을 만들어, 챗봇 등 범용 AI 모델의 훈련에 사용된 데이터 출처 공개를 의무화한 것이다.
세계적 추세를 보면 생성형 AI에 관한 입법은 불가피해 보인다. 보고서는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화가 사업자에게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 규정에 대한 단계별 입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적으로는, “인공지능 기본법에 사업자가 권리자의 요청에 따라 저작물 학습 여부를 개별적으로 공개하는 제한적 공개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미 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의무가 기본법에 명시돼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학습데이터의 제한적 공개 의무를 사업자에게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 과제로는 “학습데이터 전체 공개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인공지능 기본법에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제한적 공개 규정 도입 이후의 효과와 AI 산업 발전 동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법의 경우는 “관련 입법 동향과 국내 산업 실무를 반영해 저작물 이용에 관한 저작권 면책 규정의 도입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에 대한 보상체계 마련 역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사업자와 권리자 간 이익 균형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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