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 경쟁력의 핵심인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국내 법제에 한계가 있어 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AI 대전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과감하고 전향적인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방성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회 유니콘팜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최근 공동 개최한 ‘AI 대전환의 동력 데이터 활용 입법개선 과제’ 토론회에서 ‘AI 데이터 활용의 국내 법적 한계와 개선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AI 모델 성능을 좌우하는 데이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저작권 및 개인정보 분야의 근본적인 법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 규제, AI 학습단계부터 불확실성 증폭”
AI 기술의 성능은 곧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결정된다. 이 과정의 핵심이 바로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 Text and Data Mining)이다. 방 변호사는 국내 현행 저작권법이 TDM 행위의 저작권 침해 면책 여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AI 개발자들의 법적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AI 학습을 위한 저작물 복제·이용은 현행 저작권법상 ‘공정한 이용(제35조의5)’이나 ‘일시적 복제(제35조의2)’ 조항을 통해 해석될 여지가 있으나, 이 조항들만으로는 상업적 목적의 TDM이 면책되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AI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키고 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얘기다.

방 변호사는 해외 주요국의 유연한 입법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럽연합은 비상업적 TDM을 강행 규정으로 허용하고, 상업적 목적도 저작권자가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경우 허용하는 이원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2018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저작물에 표현된 사상이나 감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 즉 데이터 분석 목적으로는 주체와 목적에 제한 없이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AI 산업 진흥을 위해 법의 해석을 넓힌 대표적인 사례다.
“저작권자 보호하면서 AI산업 저해하지 않도록”
방 변호사는 국내 TDM 면책 방안으로 세 가지 입법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첫째, 비상업적·공익적 목적에 한해 면책을 인정하는 방안이다. 주체를 대학, 연구기관, 비영리법인 등에 한정하고, 교육, 연구 등 비상업적인 목적 또는 공익 목적을 위해 정보분석을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 방안은 AI 개발의 대다수가 영리 목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에 비춰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둘째, 상업적 이용을 포함하되 저작권자가 명시적으로 이용 거부를 표시(옵트아웃)하면 면책을 인정하지 않는 방안이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지만, 학습 데이터의 범위를 크게 제한해 AI 모델의 편향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셋째, ‘적법한 접근’을 조건으로 상업적 이용을 포함해 TDM 면책을 폭넓게 인정하고, 옵트아웃(Opt-Out)과 무관하게 면책을 판단하는 방안이다. 옵트아웃은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물이 AI의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 명시적인 의사 표시(표지 부착, 공지 등)를 통해 그 이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방안은 AI 산업 진흥에 가장 도움이 되지만 저작권자 보호에 소홀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방 변호사는 “저작권자의 권리를 합리적으로 보호하면서도 AI 산업 진흥을 저해하지 않도록, 실증적 검토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통해 유연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정보 규제, ‘동의’ 대신 ‘합리적 예상’으로”
AI 기술 및 서비스 개발에 있어 또 다른 난관은 개인정보 활용 규제다. 방 변호사는 특히 두 가지 쟁점을 언급했다.
첫째, AI 개발 과정에서 공개된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할 때 ‘정당한 이익’의 법적 근거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둘째, 사업자가 기존에 적법하게 수집한 개인정보를 새로운 AI 개발 목적으로 이용할 때마다 정보주체의 별도 동의를 다시 받아야 하는지 여부다. 이는 AI 개발의 속도를 크게 저하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3년 3월 ‘동의’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정보주체가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 수집·이용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규를 정비했다고 방 변호사는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상호 계약 이행이나 공중위생 등 안전과 관련된 경우 등이 합리적 예상 범위에 포함되며, 이는 AI 개발에 필수적인 기존 데이터를 새로운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일부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방 변호사는 이처럼 ‘동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데이터의 합리적인 활용을 지원하는 정책 변화의 방향성은 맞지만,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속도에 발맞춰 법적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한 후속적인 법 정비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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